지하로부터의 수기 현대지성 클래식 76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현대지성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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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올해 들어 두 번째 읽었다.

처음에는 민음사 버전을 밀리의 서재로 읽었는데 이 책은 꼭 줄을 치며 읽어야겠다 싶어 현대 지성 버전으로 다시 읽게 되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현대 실존주의 문학의 서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사형 선고와 시베리아 수용소 경험 이후 인간의 모순과 수치심, 자의식과 자기 파괴를 여실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1864년 발표된 작품으로 이 시기 아내와 친형의 죽음이 잇따랐던 시기로 이 작품에 드러난 자의식, 냉소, 죄책감, 모욕감, 자기분열은 이후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로 이어진 소재가 되었다.

현대지성의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책을 이해하기 전 참조할 수 있는 <명화로 읽는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있어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시간의 순서를 거스르는 소설이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래서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2부를 읽고 나서야 1부의 전체가 이해되었다.

1부는 마흔 살의 지하인이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지하에 홀로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의 분노와 수치심, 모순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스물네 살의 과거 에피소드로 당시 그는 그래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갈망하고 원했다. 하지만 그는 못나게도 매번 그 기회를 놓치고 어긋나게 만들었던 것이다. 결국 지금의 그는 지하인이 되어 버렸다.

"인간은 어떻게 자기 안에 갇히는가?"

"생각은 어떻게 삶을 잠식하는가?"

"관계를 원하면서도 왜 끝내 관계를 망가뜨리는가?"를 심도 있게 살펴볼 수 있다.


 

나는 병자다. 나는 못된 인간이다. 영 매력이라고는 없는 인간이다.

아마 간이 좋지 않은가 보다.

1부 지하실 첫 문장.

나는 2×2=4가 훌륭하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그렇게 모두 칭송할 것이라면 2×2=5라는 것도 이따금 사랑스럽다고 해야 한다.

73p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이다. 첫 문장은 지하인의 충격적인 자기 고민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2곱하기 2는 4와 같이 이성적인 계산에 따라 움직이기를 거부한다. 인간은 자기에게 손해가 있을지언정, 자신의 자유의지와 독립성을 증명하기 위해 일부러 파멸이나 비이성적 선택을 하는 모순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자유롭고 구속받지 않을 자기 의지, 비록 야만적일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변덕, 광기로 치닫는 자기만의 몽상...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가장 이로운 이익'이다."_59p

그는 지나친 의식이 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하지만 스스로가 비천함을 정확히 인식하는 데서 오히려 쾌락을 느낀다. 그는 마지막까지도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지하인으로서 남기를 희망한다.

2부에서는 지금 내리는 진눈깨비를 보고 떠오른 16년 전 젊은 시절의 일화를 들려준다.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꼈던 길에서 만난 군인에게 복수하기 위해 어깨를 부딪치는 사소한 복수를 한 일화,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학창 시절 동창들의 송별회에 억지로 찾아가 멸시를 받은 일화 등이 그것이다. 특히 동창들과의 일화는 그가 얼마나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었는지를,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후 아직 순수한 영혼을 가지고 있던 리자라는 여성을 만나게 되고 그녀에게 도덕적 구원의 이야기를 하며 감동을 준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지독한 허영심이었을 뿐.... 사실 그는 그녀를 구해줄 수가 없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초라함이 드러날까 전전긍긍하다 결국 리자에게 상처를 주고 쫓아내고 만다.

십수 년이 지난 지하인은 아직도 그 수간의 리자를 잊을 수 없다.

어쩌면 타인과 연결될 수 있을 마지막 기회였을 텐데... 지하인은 그걸 스스로 걷어찬 뒤 현재의 어두운 지하방에 숨어버린 것이다.

그는 이야기한다.

"난 사악하기는커녕 그 무엇도 될 수 없었다. 악인이나 선인도, 비열한 놈이나 정직한 인간도, 영웅도 벌레도 될 수 없었다. 나는 지금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다. 영리한 인간은 진정 무언가가 될 수 없으며 오직 바보만이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심술궂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위안으로 나를 달래며 남은 생을 보내고 있다."_24p

결국 그는 진짜 지하라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라 거대해진 자의식이란 지하 감옥에 갇힌 것이다.

타인과의 연결 없이 과연 인간은 홀로 설 수 있을까에 질문이 떠오른다. 그가 조금만 상처받을 용기를 지녔더라면 어떨까? 조금만 행동을 함께 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2×2=5라는 그의 절규가 더 와닿았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은 여러 번 읽을수록 더 와닿는 것 같아 앞으로도 옆에 두고 계속 재독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도스토옙스키의 사상적 철학을 엿볼 수 있었던 <지하로부터의 수기> 리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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