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를 읽은 이들은 아낙시만드로스 이름이 낯익을 거다. 번성했던 이오니아의 과학자 아낙시만드로스. 카를로 로벨리는 2026년 왜 다시 아낙시만드로스를 소환해 열렬한 전상서를 보내는 걸까?
"아낙시만드로스는 현대 물리학과 지리학, 기상학, 생물학의 토대를 닦은 인물이다. 그런데 이 모든 업적보다 크고 중요한 일은, 그가 기존의 세계관을 비판적으로 사고한 최초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성을 거부했고, 그런 태도를 지식 탐구의 기초로 삼았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과학적 사고의 기초가 되었다."_프롤로그 중,
아낙시만드로스의 뛰어난 과학적 업적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의 과학을 접근하는 태도에 감명을 받은 것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도 과학하는 인간의 태도인 듯한다.
그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아낙시만드로스 이전 대부분의 문명에서 이 세상이 하늘과 땅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로 지구가 허공에 떠 있고 하늘이 우리 발밑에도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아래쪽(지구 반대편)에 발을 딛고 선 사람에게는 위에 있는 물체가 아래에 있고, 아래에 있는 물체가 위에 있다... 이것은 지구의 어디에서나 똑같이 나타나는 현상이다."_100p
이오니아 밀레토스(수도)는 지형적으로 새로운 지식이 탄생할 수 있는 곳이었다.
"밀레토스의 거대한 문화 혁명은 지중해 문화의 풍부한 지식과 인도 유럽계 문명에 속하는 신생 그리스의 정치 문화가 융합하며 일어난다."_159p
사고의 다양성이 얼마나 창의성에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다. 현재는 국제적으로는 신냉전 시대고 내부적으로는 알고리즘의 강화에 따라 집단, 종교 간의 갈등이 높아지고 있다. 카를로 로벨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결국 우리가 다양한 문화에 마음을 열고 차이점을 받아들 수 있을 때 과학 발전으로 인류의 풍요로움과 높은 지성을 향해 나갈 수 있다는 메시지다.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근본 우너리를 깨닫고 구조를 연구해야 한다.
진실은 연구의 대상이며 자연의 일부분이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진리에 도달하는 수단은 인가의 관찰과 사고다.
과학자들이 대다수 그러하듯 카를로 로벨리도 무신론자인 거 같다.
"신은 그저 인간의 상상력에서 나온 존재가 아니라 인류의 인지적, 사회적, 심리적 경험을 체계화하는 어떤 본질의 상상인지도 모른다.", "신은 상상의 발명품이 아니라 초기 문명의 인류가 세상을 살아가는 의지 그 자체였다."
즉, 예상할 수 없는 자연현상,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서 살아남기 위해 창조된 '의지'라는 것이다. 결국 현대로 넘어오면서 인간의 자아가 강해지고 신들은 침묵하게 되었다.
불확실의 세계,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과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영원한 진리는 없다.
과학하는 자세란 이런 불확실성을 기꺼이 받아 들이고, 지속해서 탐구하는 자세다.
카를로 로벨리는 이오니아의 아낙시만드로스에게 전상서를 통해 이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호소하고 있다.
도서협찬 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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