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에 관하여 - 시몬 베유와의 대화 한병철 라이브러리
한병철 지음, 전대호 옮김 / 김영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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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관하여

한병철 작가, 전대호 옮김, 김영사


나는 시몬 베유에게 깊은 우정을, 정말이지 영혼의 우정을 느낀다.

그러므로 거의 100년이 지났지만, 나는 그녀의 사상을 사용할 수 있다.

생산과 소비의 내재 저편에, 정보와 소통의 내재 너머 저편에

더 높은 실재가 있음을, 의미를 깡그리 상실한 삶으로부터,

한낱 생존으로부터, 고통스러운 존재 결핍으로부터 건져내고

우리에게 행복한 존재 충만을 줄 수 있는 초월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서문에서


'와... 이 작가님, 뭐지? 작품을 다 찾아 읽어보고 싶다.'

이 책을 읽고 난 나의 한 줄 소감이다. 정말 팬이 되어버렸다.

아니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수 있을까? 얼마나 철학적 깊이가 깊은 걸까? 책을 읽으면서도 꼬꼬무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이렇게 풀어서 설명해 주는 철학서라니...

이 책은 한병철 작가가 프랑스 철학가 시몬 베유에게 쓰는 전상서다. 우리에겐 시몬 베유의 철학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안내서의 역할을 하고. 시몬 베유도 몰랐던 무식쟁이라 할 말은 없는데 얼마 전 오션 브엉의 소설을 읽으며 시몬 베유가 등장했던 터라 급 반가움을 느끼기도.

뭐 거의 전 페이지에 줄을 빡빡 그어대서 어디부터 소개하고 어디를 소개하는 게 의미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내게 와닿았던 백분의 1일라도 소개해 보는 거로.

주의, 탈창조, 빈자리, 고요, 아름다움, 아픔, 무위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의

종교가 몰락한 시대다. 그 이유의 첫 번째로 주의를 든다.

"신은 죽지 않았다. 과거에 신은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냈는데, 신의 드러남을 마주할 인간은 죽었다." 12p

현대인들의 소비지향이고 자극에 중독된 삶을 '지각은 더없이 게걸스러워졌다'라고 표현한다.

"오로지 영혼의 금식을 통한 자기 포식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단다."

관조적 주의는 영혼의 빈자리를 만든다. "바라볼 수 있는 자가 자기를 비워, 아무도 아닌 자가 된다." 14p

오늘날 중독사회는 주의가 없는 사회며 끊임없이 자극에서 자극을 따라 방향을 전환한다. 이렇게 극도로 짧게 유지되는 현재성은 주의를 토막 내고 지속하는 질서에 접근할 수 없다.

"주의는 선과 악을 분리하는 필터와도 같다. 선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선을 외면할 수 있다. 악은 거꾸로다. 사람이 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악이 사람을 포획한다."

"주의는 사회적 차원도 지닌다. 공감도 존중도 타인을 향한 주의에 기반을 둔다. 타인을 향한 주의가 없어지면, 사회는 거칠어진다."

하지만 주의는 의도적이지 않다. 무위가 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주의가 모든 의지를, 모든 의도를 내려놓고 나를 잃을 때, 주의는 최고로 응축된 강렬함에 도달한다. 나는 자기를 비워 아무도 아닌 자로, 순수한 매체로 된다. 내가 아니라 아무도 아닌 자가 바라본다."42p

탈창조

탈창조는 주의와 연결되는 개념이다.

"자기에게 죽음을 주는 자는 더 높은 존재로 깨어난다. 그런 자는 성장하여 자기를 벗어나 참된 생명에 이른다."

탈창조와 반대되는 개념은 자아다.

"종교가 처한 위기의 구조적 원인으로 주의의 쇠퇴와 더불어 대폭 강화된 자아를 꼽을 수 있다. 오늘날 우리의 주의는 오로지 자아 주위를 맴돈다. 우리는 충성스럽게 자아를 숭배하고 예배한다. 누구나 자기를 섬기는 사제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자기를 섬기는 사제란 자기를 부리는 사업가를 뜻한다. 누구나 자기를 생산하고 자기를 공연한다." 53p

결국 강화된 자아는 게걸스러워지고, 자아를 포기하고 영혼을 비워야만 신과 조우할 수 있다. 시몬 베유는 선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을 자주 언급했다고 하는데 해탈과 탈창조가 맞닿는 개념이다.

빈자리

"가만히 있기, 자제하기는 자기 안에 빈자리를 마련하기다."_시몬 베유

여기서 재미있었던 부분이 권력에 대한 부분이다. 결국 권력은 자아를 최대한 확장하는 것이고, 타인의 공간까지 자기를 확장한다. 이것은 인간으로 어쩌면 당연한 자연적 욕망이다.

이것을 거스르는 것은 자연을 초월한 자세다. 결국 자발적 자기 포기, 권력 포기로 빈자리를 만들 수 있다.

권력뿐 아니라 윤리, 정의도 같은 개념이다. 베푸는 자의 연민도 초자연적이다. 보답받고자 하는 당연한 욕구를 거스르고 만들어지는 빈자리는 숨구멍이 되어 바람이 흐른다. 복수와 증오도 갚아주고자 하는 것이 그대로의 모습이다. 이것을 거슬러 용서하는 자에게도 빈자리가 허용된다.

"빈자리란 궁극적으로 죽음 배우기, 자기를 죽음에 내주기다. 기도하기는 죽기라고 할 만하다."83p



고요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생산하고 공연한다고 했다. 자본주의는 고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고요는 생산하지 않기 때문이다.

"번아웃은 내적인 소음으로 인한 급성 청각장애라고 할만하다." 89p

"고요는 새로움의 산파다. 따라서 고요의 상실은 종교의 위기로 이어질 뿐 아니라 정신의 위기, 생산하기와 시 쓰기의 위기로도 이어진다." 91p

아름다움과 아픔

"아름다운 것-예컨대 바다, 하늘-에는 환원 불가한 무언가가 들어있다. 신체적 아픔에도 마찬가지. 내가 아닌 다른 것의 존재. 아름다움과 아픔의 근친성."

아름다움은 초월과 연계되어 있다. "순수하고 참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에 실제로 신이 깃들어 있다."

아름다움은 의도와 맞선다. 하염없이 머무르는 관조적 주의만이 아름다움에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 즉 바라보기와 기다리기가 중요하다.

상상력이란 이러한 아름다움, 바라보기와 맞서는 개념이다.

"상상력은 사물을 평가하고 써먹음으로써, 바꿔 말해 가치와 효용으로 환원함으로써 흡수통일하려 애쓴다. 상상력은 초월적 위다. 즉 '먹기'에 종사하는 기관이며, 바라보기를 어렵게 만든다."107p

이러한 아름다움은 자연과 예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자연의 아름다움 곧 자연미는 순종으로, 침묵으로 표출된다."114p

"시간에서 영원에 도달하려면 반드시 아픔이 필요하다."_시몬 베유

아픔은 몸과 내밀한 관계를 이어 실재하게 한다. 여기서 아픔이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세계 존재에 대한 증언으로서의 아픔도 포함된다.

"아픔과 소진이 저 지점에 도달하여 영혼 안에서 끝이 없다는 느낌이 일어나고 당사자가 이 끝없음을 사랑으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면, 그는 아픔과 소진에서 벗어나 영원에 이른다."122p

불행, 고통, 결핍이 창조와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과 같은 말일까?

아름다움과 아픔의 근친성은 고통의 절정 후 찾아온 창작의 결과물이 될 수도 있다.

"아픔이라는 아리아드네의 실에서 삶의 질서의 짜임새가 드러난다. 삶의 질서는 아픔의 질서다. 아픔은 생명현상들 가운데 진짜와 가짜를 갈라놓는 장치다."127p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은 오늘날 우리는 아픔을 적대시하는 진통 사회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대철 작가는 이를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닮았다고 한다. 아픔은 절대 금기시되고 모든 욕구는 충족되는 멋진 신세계... 이미 우리는 이런 중독사회에 살고 있었구나를 자각하는 순간이다.

무위

마지막까지 충격이다.

시몬 베유는 "어떤 사람의 행위와 그 결과 사이에, 노력과 성과 사이에 타인의 의지가 끼어든다면 그 사람은 노예다... 노예라는 것은 타인의 의지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이다. 노예는 주인에게, 주인은 노예에게 종속된다."133p라고 말했다.

이제 산업시대를 벗어나 우리는 자유를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병철 작가는 말한다.

"실제로 그는 자기 자신의 노예다. 카프카적인 동물인 그는 자유롭기 위해 주인에게서 채찍을 빼앗아 스스로 자신을 채찍질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실현한다고 믿으면서 우리 자신을 착취한다. 자유 착취 곧 자기 착취는 명령과 억압을 통한 타인 착취보다 효율적이다." 133p

하아....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나를 착취하고 있었나 하는 깨달음이 머리를 스친다. 이러한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서 무위가 필요하다. 학문적 탐구도 종교적 관조의 한 형태라 했으니 무위에 해당하는 학문적 탐구와 일상이 생산을 위해서가 아닌 소명을 향한 것으로 무위로 지향해야 하겠다.



짧은 소견으로 어떻게 모든 걸 담겠나만은 이런 멋진 책을 읽고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희열을 느낀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한병철 작가님의 신에 관하여는 종교에 관계없이 현대인이 꼭 읽었으면 하는 철학서이다. 앞으로 작가님의 책을 하나씩 섭렵해 봐야겠다.

너무 좋았던 책! 모두에게 강추 드리고 싶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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