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김목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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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오션 브엉 지음, 인플루엔셜 출판

이 시대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범상치 않은 작가인 오션 브엉의 첫 장편 소설이다. 

이미 뉴욕타임스 독자 선정 '21세기 100대 도서', 아마존 올해의 책,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영화화 계약 등 굵직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이 소설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느낌이랄까... 문학적으로 아름답고,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풍기지만 개인적으로는 거부감마저 드는 처절하고 비극적인 인생 스토리다. 

단숨에 읽히는 소설이 절대 아니다. 한 문장 한 문장 내포함 의미가 너무 깊어 한참을 들여다봐야 보이는 소설이었고 가슴이 갑갑해져서 몇 날 며칠을 쉬어 가며 읽었던 소설이다. 


얼마 전 읽었던 샤이의 작가 맥스 포터는 "내가 읽은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 중 하나, 문학적 경이로움, 비범한 인간성을 담은 걸작"이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맥스 포터와도 결이 비슷한 작가인데 오션 브엉은 좀 더 깊고 섬세하다. 천 개의 파랑에 나오는 휴머노이드 콜리가 환생한다면 비슷한 사람이려나... 사색하는 여리고 따스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이 소설이 자전적 소설이기에 유추해 본다)


두 살 때 미국으로 이주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다.  그의 첫 책은 시집이었다. <총상 입은 밤하늘>. 

그래서 그런지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를 읽어보면 시인의 은유가 느껴지는 문장들이 참 많다.  

몇 문장을 고를 수 없을 정도로 책 전체가 어떻게 보면 장편 시다. 그래서 자꾸 문장에 멈춰 서게 된다. 


이 소설은 돌아가신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 있다.  평생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쓰는 편지라... 읽히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쓰는 편지라 슬픔이 내재되어 있다. 


베트남 전쟁을 경험하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외할머니 란은 그에게는 따뜻한 보금자리이다. 엄마 또한 전쟁 경험자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으며 문맹인과 혼혈로 사람들에게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살아간다. 


오션 브엉은 이민자로서, 퀴어로서 사회에서 소외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총성이 낯설지 않은 후미진 지역으로 친구 10명 중 반 이상은 마약 중독으로 생명을 달리하거나 이미 정상적인 삶이 불가능하다. 

베트남계 어민자, 가난한 노동자, 퀴어, 전쟁 트라우마, 가정폭력, 약물 중독... 이 모든 것이 화자의 삶이다. 


한 세대 전체를 없애버리는 데에는 하룻밤 서리면 충분해요. 산다는 것은 그러니까 시간의 문제, 타이밍의 문제죠.

14p

우리가 운이 좋다면, 문장의 끝이 우리의 시작점이 될지도 몰라요. 우리가 운이 좋다면, 무언가가 전해질 거고요. 피와 힘줄, 뉴런으로 쓴 또 다른 알파벳. 남쪽으로 날아가도록,  아무도 오래 살아 남을 수 없었던 서사 속 장소로 방향을 틀도록, 그들의 친족에게 조용한 추진력을 불어넣은 선조들. 

23p

두 개의 언어는 서로를 상쇄시키고 제3의 언어를 부른다고 바르트는 넌지시 말해요. 때로는 우리의 어휘는 너무 적거나, 쉽게 유령이 되어 버리죠. 그런 경우에는 손이, 비록 피부와 연골이라는 경계들로 제한되어 있지만, 혀가 주춤하는 지점에 생기를 불어넣는 제3의 언어가 될 수 있어요. 

54p

새로운 이민자는 2년이면 알게 되죠. 숍이란 곳이 결국에는 꿈이 경직된 앎으로 변하는 곳이라는 것을. 미국인의 뼈를 지니고 깨어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앎 말이에요. 시민권이 있든 없든, 그것은 뼈마디 쑤심, 중독, 저임금이라는 것을요. 

114p

사냥꾼을 발견한 상황에서, 자신을 먹이로 내어주는 동물이 있다면 뭐라고 부를까요? 순교자? 약자? 아니요, 멈출 수 있는 드문 주도권을 얻은 짐승이에요. 네, 문장 속의 마침표 말이죠.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거예요. 엄마 맹세해요. 마침표는 우리를 계속 나아가게 하려고 멈춰 세우는 거예요. 

165p

그건 우연이 아니에요. 엄마, 쉼표가 태아를 닮은 것 말이에요. 그 지속을 위한 구부러짐. 우리 모두는 한때 각자의 엄마 안에 있었죠. 우리의 고요하고 구부러진 자기 전체로 더, 더, 더라고 말하면서요. 저는 우리의 살아 있음이 복제할 만한 가치가 있을 만큼 충분히 아름답다고 주장하고 싶어요. 그리고 뭐 어때요? 제가 평생 만들어 온 것 전부가 삶의 연장이었대도, 뭐 어때요? 

193p

우리의 세계처럼 무수한 하나의 세계에서, 본다는 것은 꽤나 이상한 행위예요. 무언가를 바라본다는 것은 인생 전체를 짧게나마 그것으로 채우는 일이죠. 

236p

과도한 기쁨은, 맹세하건대, 우리가 그걸 유지하려고 절박해할 때 상실되어버려요.

253p

저는 사로잡힌 것처럼 보였어요. 트레버라는 한 사람이 아닌, 욕망 그 자체에. 그 결핍에 의해 재사용되기 위해, 결핍의 순수한 욕구로부터 세례를 받기 위해.

277p

본다는 것이 언제까지나 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놀랐죠. 왜냐하면 석양 역시, 생존처럼, 자신이 사라지기 직전에만 존재하니까요. 매혹적이려면, 우리는 우선 보여야 하는데, 보인다는 것은 사냥당하는 것을 허용당하는 거죠. 

319p

망가진 삶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야기를 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삶이 그 자체로 동물들의 이야기일 때.

324p

오션 브엉의 장편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는 제목만큼 시적인 소설 아닌 소설이었다. 

전해지지 않을 편지로 전하는 자신과 가족과 공동체의 아픔에 안타까움이 인다. 미국 내 빈부격차, 인종차별 그리고 마약의 문제를 어느 소설에서보다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살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온전히 언어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치밀어 오르는 내면의 독백을 뱉어내지 않으면 살 수 없었기에 써 내려간 편지이자 소설이 아니었을까? 

그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다. 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글로 치유받아 살아냈으면 한다. 


상당히 매혹적이었던 소설이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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