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 방랑작가 박인식의 부처의 길 순례
박인식 지음 / 생각정거장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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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미치도록 걷다

박인식, 생각정거장

같은 갠지스 강물에 두 번 몸을 담글 수 없다.

인도인들에게 갠지스는 흘러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에 대한 은유다.

181p

대학시절에 인도에서 3개월 하고도 15일을 더 여행한 적이 있다. 여행은 중국의 실크로드에서 시작해 티베트와 네팔에 이어 인도로 이어졌다. 둔황 막고굴, 티베트를 지나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초전 설법을 설하신 사르나트, 꺠달으신 보드가야, 아잔타 석굴까지 초기 불교의 흔적을 따라 여행했다. 아쉽게도 부처님께서 열반에 이른 쿠시나가르는 방문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책은 방랑작가 박인식님이 100일간 15,00킬로미터를 부처의 길을 따라 순례하면서 느낀 에세이로 이 길을 걸었을 때 작가의 나이는 이미 60 이었다. 그는 길 자체로 아름다우며, 삶 그 자체가 종교인 땅을 원했는데 이러한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바로 부처의 길이었다. 


룸비니는 네팔 남부 테라이 지방의 자그마한 마을이다... (중략)

국제 사원의 서쪽 단지에 대성석가사라는 한국 사찰이 들어서 있다. 법신 스님이 십오 년째 불사 중인 이 한국 사찰은 룸비니의 숱한 국제 사원 가운데 으뜸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도 그렇고 지난 십여 년 룸비니를 찾는 순례자라면 국적이나 피부색을 묻지 않고 그냥 재워주고 먹여주던 넉넉한 인심으로도 그랬다. 

22p

이 책이 15 주년 에디션이니 아마 2010년에 나왔었나 보다. 15년째 불사 중이라고 표현한 것을 보면 내가 다녀온 1999년 대성석가사도 포함될 것 같다. 

산(山) 사람이었던 작가가 예순이 되어서 부처의 길을 떠났던 이유는 그때까지도 자신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 한다. 


나 또한 20살 즈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내면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그 해답을 찾아 초기 불교의 흔적을 따라 길을 떠났었다. 

당시 계획은 티베트까지였는데 조금만 걸어가면 부처님이 나고 설법한 네팔과 인도가 있다는 말에 중국, 네팔 국경을 걸어서 넘어 버렸다. 룸비니는 말 그대로 평화로운 시골 마을이었다. 이미 두 달간의 여행으로 심신이 지쳐있었기에 룸비니에 도착하자마자 대성 석가사에서 일주일이나 뒹굴뒹굴하며 신세를 졌었다. 

한참을 잊고 있었는데 책을 읽으며 그 옛날 대성석가사가 기억이 났다. 대성석가사의 맛있는 밥, 넉넉한 인심이 갑자기 그리워진다. 


안개는 매일 새벽마다 룸비니 동산을 하얗게 지워버렸다. 안개는 모든 사람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을 알게 해준다. 내가 걸으면 세상의 중심이 한 걸음 한 걸음 옮아간다. 초막, 나무, 새, 개울, 호수, 언덕, 논과 밭으로 이루어진 세상이 동그랗게 동심원을 그리며 나타난다. 세상은 안갯속에서 모두 동그랗게 말려 공이 굴러가듯 서서히 움직인다. 

23p

누구는 갠지스 강물에 목욕을 하고 또 누구는 타다 만 시신이 둥둥 떠다니는 강물을 퍼마시거나 물통에 퍼담기도 하고 또 누구는 이승의 삶을 마감하고 카트에 쌓아놓은 장작불에 태워지고 또 누구는 배를 타고서 그 모든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관객 역할을 맡는 바라나시라는 연극이 일 년 삼백육십오 일 하루도 쉬지 않고 스물네 시간 공연되고 있다. 

300p

바라나시에서만큼은 죽음의 엄숙함과 경건함이 삶의 기쁨과 우스꽝스러움을 압도한다. 

바라나시에서 사람들은 삶을 압도하는 죽음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그 죽음이라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바라나시는 혼돈의 도시다. 처음 바라나시에 도착했을 때가 기억난다. 

귀가 찢어지게 울려대는 소음과 끝없이 쏟아지는 인파, 인육의 맛을 봤다던 들개들, 무법천지 릭샤들까지 정말 헬 게이트가 따로 없었다. 이미 오랜 여행으로 육신이 지친 나에게 그러한 혼돈의 모습은 긍정적이기보다는 이곳이 진정 힌두교에서 말하는 어머니의 도시가 맞나? 하는 의문을 던졌다. 


이미 티베트에서 천장, 네팔에서 수많은 가트의 화장을 보았지만 인도 바라나시의 화장은 정말 '연극'같은 구석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성스러운 물이라고 세례를 하고, 목욕하고, 그 물을 떠서 팔고 있고 또 한 쪽에서는 빨래를 하고 양치를 한다. 또 수많은 가트에서는 끝없이 쌓인 시체들을 화장하고 다 태우지 않은 시신은 강가, 즉 어머니의 강으로 던진다. 아이는 화장하지 않고 그냥 포대기에 싸 버린다. 


인생이라는 연극이 다양한 순간으로 캡처되어 상영되는 이곳의 모습은 20살 무렵의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소음으로 가득찬 가식적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떠나고 싶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 마음이 바뀌었다. 새벽 눈을 떠 머물고 있던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 올라가 바라본 바라나시는 어느 곳보다 성스럽고 고요했다. 

강가는 새벽빛을 받아 반짝이고, 도시는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순결한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이렇게 양면적인 도시가 있을 수 있을까? 새벽녘 강가에 배를 타고 올랐을 때 내가 바라보는 바라나시의 모습은 180도 달라졌다. 

바라나시는 그대로 있었을 뿐인데, 내 시선이 바뀌었던 거다. 소란의 도시에서 성스러운 도시로...

새벽 배를 타고 가던 중 만난 포대기에 쌓인 아기 시체를 만났을 때도 슬픔뿐 아니라 강가에 깃든 그들의 삶과 영혼에 이해와 공감 그리고 축복의 마음이 싹텄다. 

20년도 지난 일이니 이제는 흔적만 남아있는 추억이다. 하지만 그날 새벽 내가 만난 바라나시의 민낯은 오래오래 남아 여운을 남겼다. 



책을 읽으면서 그 시절 인도 여행에서 만났던 사람들, 장소가 떠올라 잠시씩 추억에 잠겼던 것 같다. 

150킬로 부처의 길을 따라 막연히 걸을 자신은 없지만, 앉은 자리가 깨달음의 자리라는 마음으로 일상에서 내 마음의 부처를 만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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