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면서도 담담한 문체가 참 정감 가는 인터스텔라 김지수 작가님이 의젓한 사람들로 뽑은 14명의 인터뷰 내용은 대충 훑어가기에는 너무 아깝다. 짧은 인생 명언 모음집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책은 필사하기에도 참 좋은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록으로 인터뷰에서 따온 의젓한 문장들을 넣어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 달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여행에 가볍게 이 얇은 필사책을 가져가야겠다 싶다.
핵심은 지향입니다. 내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게 중요해요. 삶은 여행이라고 보다는 순례에 가깝습니다. 특정 장소로 간다기보다는 지향하는 바를 알고 계속 나아가는 거죠. 중세 격언 중 '여행자는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여행자는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서비스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불평하죠. 그러나 순례자는 길에서 방해물을 만나도 가고자 하는 지향이 분명하기에 걸림돌조차 안내자로 인식합니다. 29p 김기석 순례자
모든 인터뷰가 다 좋아서 어느 하나를 고르기가 힘들 정도로 짧은 인생 명언 모음집이었다. 그중에서도 첫 인터뷰를 하신 김기석 전 목사님의 말씀은 한 문장 한 문장 빠뜨리기가 아쉬웠다.
평소 인생을 여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여행과 순례의 차이를 알려주신 것도 참 좋았던 것 같다. 이제 지구별 여행자가 아닌 지구별 순례자로 살아가야 하려나...
기적은 오히려 '열심'을 움켜지지 않았을 때 홀연히 오더군요. <동주>에서 마지막 형무소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중략) 마지막 촬영할 때 불현듯 그 외로운 비석이 눈앞에 떠올라서 제 감정을 끌고 갔어요.
그때 느꼈어요. 무엇이든 다져놓으면 언제가는 풀려나온다는걸."122p 박정민 배우
티브이나 영화를 많이 찾아보지 않는 나에게 박정민 배우는 흔한 배우 중 하나였다. 그가 책을 좋아하고, 서점을 운영하고 출판사 사장을 한다고 했을 때 호감이 조금 올라갔을 뿐이었다. 그러다 이 배우의 매력에 빠진 건 인터스텔라 김지수 작가님의 <필사는 도끼다>에 있는 인터뷰 글을 필사하면서였다.
"늘 포기하고 싶다고, 매일매일 포기하고 싶다고 365일 중 65일을 그만둔다고 속으로 소리치지만 300일을 버틴다"라는 그의 말은 매일매일 꾸역꾸역의 힘으로 살아가는 나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그가 이야기한다. 그런데 열심히 한다고 기적은 찾아오지 않는다고. 대신 그 꾸역꾸역의 힘으로, 루틴의 힘으로 우리 삶을 다졌을 때 기적이 어느 순간 홀연히 등장한다고 말이다. 포기하고 싶지만 꾸역꾸역 버티다 보면 기적이 찾아오리라는 믿음으로 오늘도 성실함에 한 스푼을 더한다.
결혼해야 할지 독신으로 살아야 할지, 자녀를 가져야 할지 무자녀로 살지, 이 일을 계속할지 그만둘지는 근본적으로 '답이 없는 문제'입니다. 개인의 삶에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테지만 통제의 범위를 넘어선 야생의 문제들이지요.
'완벽한 결정'은 없습니다.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을 뿐이죠.
인생은 어차피 지도 없이 하는 여행이기에 완벽함의 반대는 엉성함이 아니라 '그럭저럭 괜찮음'입니다.
206p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의젓한 사람들을 읽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책들 중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불확실성과 통제에 관한 책으로 결국 야생의 문제들에서 '더 나은 답'이란 없으며 '결심을 통해 실제 상황에 뛰어드는 것'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다.
나의 정체성과 자아감은 경제학에서 말하는 '비용과 혜택' 이상의 것입니다. 선택이 고민될 때는 그냥 '나다움'의 규칙을 따르세요. 216p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결정 장애'로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이것저것 일단 시도해 보세요.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 안 맞는 것은 그만두세요. 헤매더라도 이것저것 해보는 편이,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220p 경제학자 러셀 로버츠
세계적 경제학자가 권하는 '계산하지 말고 뛰어들기' 예찬에 더 믿음이 생긴다. '고민하지 말고 뛰어들기' 기억해야지...
알츠하이머병을 진단받았다고 해도 삶은 계속됩니다. 기억이 없어도 우리는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요. 감정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사랑과 기쁨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예민해집니다.
만일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서 당신이 한 말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도, 당신이 아버지께 전해드린 감정은 기억하실 겁니다. 328p 신경과학자 리사 제노바
"우리나라 65세 노인 중 치매를 앓고 있는 환자는 열명 중 한 명, 이 숫자는 가파르게 증가해 2026년 기준 100만 명을 넘어선다고 한다."(333p)
시부모님과 엄마 나이가 70이 훌쩍 넘어버렸다. 엄마는 몇 년 사이 몇 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긴 터라 기억력도 많이 퇴보하셨다. 치매란 단어는 이제 먼 이웃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걱정해야 하는 바운더리로 넘어오고 있다. 생각하면 한숨이 먼저 쉬어지는 일이지만 리사 제노바의 이야기는 그래도 희망을 갖게 해준다.
기억을 잃더라도 사랑과 기쁨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본인이 사랑받는지 아닌지는 잊지 않는다고...
내 가족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상대가 느낄 수 있도록 표현해야겠다는 당연한 다짐을 하게 된다.
나, 너,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의젓한 사람들의 의젓한 문장들...,
인터스텔라 김지수 기자의 뾰족한 질문이 더해져 인생의 큰 가르침을 얻은 것 같다.
참 좋은 책이고, 모두가 함께 읽었으면 좋을 것 같은 책이다.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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