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 주어진 삶에서 벗어나 나만의 방향을 찾아주는 안내서
나영웅 지음 / 지음미디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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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지음 미디어 출판, 나영웅 지음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취향이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 또는 그런 경향'이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면 하고 싶을 것이고, 이것은 누구한테 강요받은 것이 아닌데, 대체 이러한 취향이 어떻게 계급이 된다는 말인지 궁금해졌다.


저자는 스타트업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최소 삶 유지비용'도 못 벌때가 있었고 이 당시에는 취향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득이 상승하면서 드디어 소비가 가능했고 그 소비에서 취향이 드러났다고 한다.

삶의 비상등이 켜진 상태에서 우리는 취향을 탐색하거나 취향을 즐기거나 취향을 흡수할 수 없게 된다.

취향보다 생존이 먼저이기 때문이다.

77p


저자가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가졌던 많은 고민에 대한 답을 찾은 책이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였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의 경험과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를 통해 얻은 통찰력을 함께 전달한다.


"취향의 차이가 사회적 신분을 구별 짓는다." 

-피에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1963년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1217명 프랑스 시민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취향 조사의 과정과 결과를 담은 [구별짓기]를 출간했다.


[구별짓기]에서 부르디외는 "취향이란 사회가 만들어낸 계급적 구별짓기로, 소득에 따른 소비가 계층화된 구조 안에서 우리의 취향은 자유로울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부르디외는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수재였다고 한다. 서민으로서 이름난 명문가의 자제들만 들어가는 파리고등사범대학에 진학했기 때문에 어릴 적부터 취향과 계급에 대한 고민을 많이 탐구했다고 한다.


부르디외가 이렇게 취향과 계급을 연구한 것은 단순히 취향의 높고 낮음을 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취향이라는 것이 개인의 선택보다는 사회에 의해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일반 서민들에게 일깨워 주고, 자신의 취향을 찾아가는 용기를 가지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부르디외는 계층화된 취향을 설명하며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아비투스는 라틴어로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에서 유래했으며 습관을 뜻하는 Habit과 같은 어원을 가지고 있다. "아비투스는 한 사람이 사회에서 경험하고 학습한 것이 몸과 정신에 스며들어 개인의 고유한 성향으로 발현되는 일을 뜻한다."

33p



아비투스는 이처럼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적인 요인에 따라 자신의 선호가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 아비투스는 단순히 가정의 문화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전반적인 인식을 기반으로 한다. 나의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삶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나은 선택이 취향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비투스는 결국 내가 가진 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39p



오랫동안 평화를 유지한 현대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부의 세습이 교묘하게 이루어졌고 부의 계급이 곧 신분이 되었다. 자본은 단순히 계좌이체로 이동하지 않는다. 자본을 얻기 위한 학교에 다니고 자본을 얻기 위한 교양을 만들고 자본을 얻기 위한 인맥을 만들어 끝내 자본의 이동을 완성한다. 이제 계급은 단순한 부의 총량이 아니라 인간의 귀함을 나누는 신분 그 자체로 여겨지고 있다.

126p



부르디외는 결국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자본이 한 사람의 취향을 결정한다고 했는데 여기에 자본은 경제, 사회, 문화 자본을 의미한다. 경제와 사회자본은 각각 부, 인맥을 뜻하고 문화자본은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 양식, 매너, 예술적 감각을 포함한다.



18세기 영국의 상류 계층들은 자녀들이 고급 취향을 배워 상류사회로 진입할 수 있도록 2-3년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장기 여행을 보냈다고 하니 취향 학습을 통한 계급의 대물림은 이미 세기를 이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취향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러면 '있는 사람들은 취향을 돈으로 사면 되지?'라고 생각하지만 취향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한다. 경제 자본에 해당하는 취향이 상징화된 상품(예: 명품)을 구매할 수는 있지만 특히 문화 자본은 오랜 시간을 걸쳐 서서히 형성된다. 그러니까 18세기 귀족들도 자녀에게 그 습성을 가르치기 위해 오랜 시간 노력하지 않았겠는가?



취향은 강요되는가? 취향의 폭력성


안정적인 대기업에 다니면서 대도시에 위치한 중산층 동네에 있는 30평대 아파트에 중형 이상의 차를 끌고 다니고 가끔 해외여행을 다니는 것이 일반적으로 사회 초년생들이 원하는 모습일 거다.

가슴에 손을 얹고 이 모습을 내가 진짜 바랐나?라고 물었을 때 모두가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무엇인가를 선택할 때 나의 취향이 아닌 사회가 요구하는 취향의 범위에 갇혀 스스로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 이 현상을 부르디외는 계급의 은근히 드러나는 지배, 피지배 계층의 자발적인 복종을 뜻하는 '상징 폭력'이라고 부른다.

130p



이것이 바로 강요된 취향이다. 취향의 폭력성이다.

이러한 상징 폭력은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영역이므로 사회 구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 또한 스스로에게 멈춰서 계속 확인하고 물어야 할 것 같다.

"이것이 진정 내가 원하는 취향인가?"



내가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어야 하고 나의 선호에 대한 이유가 뚜렷해야 나의 취향으로 확립된다. 취향의 소비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방편으로 사용된다.

79p



내 취향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위로 가는 길에서 탈락했다고 열등감에 빠져 스스로를 소수자, 흙 수저 등으로 규정한다면 손발이 잘린 사람처럼 무기력에 빠지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언어를 잃게 된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소수의 지배를 받아들이기 쉬운 상태가 된다.



우리를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규정짓는 계층에서 벗어나 내가 몸담은 사회를 사유하고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182p



우리에게는 모두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저자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언급한 '취향의 방' (개인의 회복 공간, 개인의 오리지널러티로 표현),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언급하며, 우리는 모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지킬 수 있는 사유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해 주고 있다.


나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내가 낮은 소득 수준에 속해 있더라도 감정에 치우치지 말고 비판적으로 사회를 보는 연습을 통해 진실을 바라봄으로써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는 혼자 힘으로는 불가하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의 자본을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고 확장해나가는 것을 추천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막연하게 취향이 대물림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책이어서 사고를 확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기회가 된다면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도 꼭 읽어보고 싶다.



취향이 곧 계급이 되는 사회에 대해 각성하였고 이러한 상징 폭력을 벗어나기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면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고 추천하고 싶다.



도서를 지원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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