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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즈루
가와카미 히로미 지음, 류리수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평점 :
이 소설은 현대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가와카미 히로미의 장편 소설인 <마나즈루>입니다.
작가 가와카미 히로미
는 일상과 환상이 뒤섞인 탁월한 묘사와 독특한 상상력, 온화하고 섬세한 시선이 담긴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하여 "우화의 마술사"로도 불린다고 하며 현재까지 일본에서 유수의 상을 휩쓸었다고 해요.
소설 내용
남편을 잃은 여성이 상실에서 회복되는 과정을 환상적이고 몽환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소설인데요, 추리소설처럼 결론을 예측할 수 없게 끝까지 흥미진진했어요.
특히 주인공이 살고 있는 도쿄뿐 아니라 소설의 주 배경이 되는 곳이 마나즈루라는 바닷가의 소도시를 여행하는 내용으로 꾸며져 있기에 소설의 소개 글처럼 "추리소설과 여행기, 우아한 에로티시즘을 결합한 꿈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한 말이 딱 떨어진다고 느꼈던 소설이었습니다.
소설은 12년 전에 갑자기 자취를 감춘 남편을 둔 케이가 마나즈루라는 도쿄 인근의 해안 도시를 방문하면서 시작하는데요, 남편을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에게 남편의 실종은 크나큰 상처였고 그즈음부터 그녀에게는 '따라오는 자'들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이 '따라오는 자'들의 움직임이나 형체가 모호하였지만, 마나즈루를 여러 번 방문할수록 '따라오는 자'는 선명해져요.
이 과정에서 환상과 현재가 섞여 몽환적인 상황들이 연출되고, 그로 인해 케이는 잊고 싶었던 과거의 단편들을 기억해 내게 됩니다.
여자에게 이끌려 걸었다.
들리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다. 눈은 뜨고 있는데 경치라는 것이 없다.
안개가 짙은 장소를 걷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현기증 속을 떠돌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멀리 바다가 있고 배는 타오르고 있었다.
마나즈루 172p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은 그녀에게 가장 큰 상실감을 준 남편 '레이' 이외에도 남편의 부재 이후 출판업계에서 만난 '세이지'라는 남자가 있었어요. 남편 '레이'를 절절히 사랑했고 여전히 사랑하지만 '세이지'라는 사람과의 사랑을 통해 남편의 부재를 극복해 나가기도 하지만 결국 '레이'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음을 알고 '세이지'는 그녀에게서 멀어집니다.
레이는 빠져나가는 썰물 같았다.
단단히 땅을 밟고 버티려 해도 썰물에 몸이 쓸리듯 레이에게 빨려 들어가 버린다.
기습을 잘 하는 사람이었다. 평범하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낚였다.
사귄지 두 달이 채 되지도 않아서 레이 이외의 것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마나즈루 89p
감정이 세이지 쪽으로 흘렀다.
강한 감정도 약한 감정도 세이지에게 그대로 다 흘러갔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이지가 있는 쪽을 향해서 흘러갔다. 거부하지 않아서 그저 고마웠다.
레이가 실종된 이후 머물 곳이 없었다.
어디로 기분을 흘려보내면 좋을지를 찾지 못했다.
흘러갈 곳이 정해지지 않으면 내가 있는 장소를 알 수 없게 된다.
강의 어느 쪽이 상류인지 하류인지,
물은 어느 쪽에서 흘러가고 있는 건지 분간하지 못해서 무서워지는 것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마나즈루 p37
엄마와 딸 모모도 상실감을 느끼는 존재들로 비춰지는데요.
내 배속으로 나았고, 처음에는 내 품 안에 껴안을 수 있던 존재였으나 엄연히 타자로 분리되는 딸 모모와 딸 케이를 가련히 여기며 같이 살고 있는 엄마도 지금의 케이처럼 케이가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낀 타자인 것으로 묘사되거든요.
언제부터 모모가 가깝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
멀다기보다는 가깝다. 하지만 가깝다기보다는 먼 사람이 되었다.
케이는 마나즈루에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으면서 현실을 마주하게되고, 드디어 그녀는 레이의 실종 신고를 하고, 쓰고 있던 소설을 탈고하며 현실의 일상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잊고 있었어요. 당신이 마나즈루에 오는 건 레이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 때문이에요.
마나즈루 276p
마나즈루, 속삭여본다. 그리워진다.
마나즈루에 있지만 마나즈루가 그리워진다. 가슴에 다시 통증이 온다.
마나즈루 282p
레이, 먼 훗날 당신과도 만날 수 있겠죠.
마나즈루의 밤바다에 잔물결 이는 곳에서 불타올랐던 배는 가라앉아갔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와서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돌아간다.
모모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리고 공원 가득히 빛이 넘쳤다.
소설을 읽고 느낀 점
그녀의 큰 상실감을 이해할 수 있었어요. 아니 어떻게 이해하지 못할까요?
썰물처럼 자신을 삼켰던 사람에게 버림받는다는 건 얼마나 큰 충격일까요...
정말 '따라오는 자'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큰 충격에 자아가 분열되었던 건 아닐까요?
케이는 과거의 충격으로 기억을 봉인했었죠...
사람들이 너무 힘든 기억은 그 기억을 봉인하곤 한다잖아요... 저도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즈음의 기억들은 아주 흐리게.... 감정으로만 남아 있더라고요.
우리가 슬픔과 아픈 기억을 묻어두는 것은 실제 해결 방법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어느 순간 치유되지 못한 내면이 흔들리게 되죠.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기 자신을 만나는 과정을 통해 결국 그 아픔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만 그 시절의 나를 껴안고 앞으로 나아가게 되는데요.
마나즈루로 이끌었던 '따라오는 자'도 그녀의 분열된 자아였지 않을까요? 실제 그녀가 기억을 찾고 과거를 받아들인 뒤 '따라오는 자'는 사라져버리니까요.
케이의 서글픈 운명이 참 불쌍해서 여운이 한참 남는 작품이었습니다.
존재의 상실과 회복에 대한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작품이었고, 흥미진진하게 마지막까지 읽을 수 있는 소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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