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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층 탐정
정명섭 지음 / 팩토리나인 / 2025년 6월
평점 :

[ 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 ]
장편 소설이 좋은 점은 긴 호흡으로 몰입하며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디테일한 심리 묘사나 인간관계, 내면 의식에 집중하는 스타일이 아닌 사건 중심의 추리 소설은 더더욱.
제목과 표지 그림, 표지에 있는 문장이 전체 소설의 내용을 요약해 주고 있다. 76층에 사는 젊은 여자가 무언가의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도시 배경으로 봐서 고층 빌딩 상급지에 거주하며 부유한 배우자 덕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추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일어나지 않을 법한, 선을 크게 넘거나 창의적인 사건은 아니다. 물론 독자에 따라 이런 사람이 어디 있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지만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자신이 겪어보지 않거나 목격해 본 적 없다고 단언하지 말자. 이상한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모든 사람들이 삶의 의미나 목적을 긍정적이고 희망적으로 삼고 있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행복을 시기, 질투하는 것을 넘어 그 행복을 파괴해야만 적성이 풀리는 사람도 있다. 이 소설에서는 그 대상이 불특정 다수였지만 현실은 오히려 가까운 지인이나 가족이 그 증오와 원망의 대상인 경우가 많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픈 건 만국 공통인 인간의 본성이라는 말이다.
소설 이야기로 돌아와서, 문장이 간결하고 내용이 복잡하지 않아서 이틀 만에 편하게 읽었다. 가상의 도시, 가상의 사건과 인물이지만 앞에 언급한 것처럼 개연성이 높아서 어색하지 않다. 있을 법한 인물에 벌어질 법한 사건을 다루고 있다. 추리 소설답게 범인을 예측하고 실마리를 찾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름의 긴박감과 속도감도 있다.
개인적으로 추리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서 많이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한 편의 영화나 단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저자가 2020년 한국 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나처럼 해당 장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많지는 않지만 내가 읽거나 관람한 이런 장르들은 대부분 해피 엔딩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런 패턴이 장르의 전형적인 특성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갈등 상황에서 미리 결론을 어느 정도 예사해볼 수 있다는 면에서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러한 점이 오히려 이 소설을 판타지가 아닌 현실성을 이야기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최근 머리 아픈 문장이 가득한 외국 번역 서적을 몇 권 읽다가 빠르고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니까 머리가 좀 맑아진 느낌이다. 소설의 유용은 읽으면서 독서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간만에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