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박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
박민우 지음 / 박민우(도서출판)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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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여행작가 1세대이자 원조 여행가이신 박민우 님. 지금은 여행 유튜버들이 많이 생겨서 여행가에 대한 인식이 낯설지 않지만 예전에는 지금처럼 SNS가 활성화되기 전이라 박민우 작가님의 여행기는 정말 최고의 인기였다.

명작 [일만 시간 시간 동안의 남미] 1~3권 판매량이 생각보다 적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3권 합해서 총 5만 구너 정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나름 유명한 1세대 작가님의 대표작이 이 정도밖에 안 팔렸다니.

이번 책은 조금 더 특별했다.

장소가 익숙한 치앙마이기도 했고 70 넘으신 노부모님을 모시고 하는 한 달 살이 여행기여서 더욱 재미있었다.

코로나 이전에 나도 부모님 모시고 3대가 함께하는 베트남, 태국 배낭여행을 했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총 10명, 이중 나와 아내만 배낭여행 경험이 많았고 부모님도 여동생 가족도 모두 해외여행은 패키지만 몇 번 경험한 게 전부였다.

동남아라면 무조건 한국 보더 어마 무시하게 저렴한 가격일 거라 철떡 같이 믿는 부모님도 똑같았고, 인터넷으로 보고 예약한 숙소에 왜 수영장이 없고 바닥이 난방이 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동생네 부부의 불평도 비슷했다.

베트남에서 3년을 살았고 동남아 배낭여행을 10여 차례 해본 우리 부부지만 태국 시아누크빌은 우리도 처음이었고 에어비엔비에 올라온 정보만 보고 숙소를 예약한 터라 그 지역, 그 숙소 상태가 어떤지 우리도 몰랐지만 여행을 계획하고 주관한 사람이 가이드 겸 여행사 직원이 되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래서 노부모님과 한 달 살기를 계획한 박민우 작가의 노고와 솔직한 감정에 너무나도 많은 공감이 되었다.

우리네 아버지들은 모두 어디선가 단체 연수라도 받으시는 걸까? 한국에 있으면 안 그러시는데 왜 해외만 나오면, 특히 동남아만 나오면 갑자기 없던 애국심이 생기고 자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지시는 걸까? 현지 사람들은 멀쩡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는데, 누구보다 열심히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데 그들을 보고 스스로 불행할 거라고 단정하는 건지.

"그러니까 너희들(손자, 손녀)은 우리나라에서 태어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저 나라 사람들처럼 불행하고 가난하게 살지 않으려면"

"우리나라보다 못 사는 나라니까 싸고 맛있는 식당에 가서 실컷 먹어보자"

이 방은 얼마니? 왜 난방은 안 되고 따뜻한 물은 졸졸 나오고 청소 도구는 없고 햇빛은 안 나오고 조식 값은 따로 받고 등등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 순간순간 패륜의 욕구를 참느라 애쓰는 모습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그 심정이 너무나도 이해가 된다. 효도를 위해 가족이라는 감옥을 견뎌내는 심정을.

책이 두껍다. 321페이지나 된다. 부모님과 치앙마이 여행은 총 25박 26일이다. 여행하는 나라도 치앙마이와 빠이 단 두 곳이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하는 여행이라 하루에 많은 곳을 찍고 돌아다니지도 못한다. 그 짧다면 짧은 기간 동안 특별한 에피소드가 샘솟지도 않을 텐데 어떻게 한 권 분량의 이야기가 나올까 궁금했다.

읽어보니 이건 한 권이 아니라 열 권이라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겠다. 나이 든 아들과 더 나이 드신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는 건, 한 방에서 먹고 자고 걷고 생활한다는 건 하루에도 수십 번 부딪치고 갈등하고 견뎌 낸다는 거다. 더구나 말도 안 통하고 낯선 타지에서는. 부모님들은 마치 글로 먹고사는 아들을 위해 어떻게 하든 글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것 같다.

작가님은 괴롭겠지만 읽는 우리는 즐겁기만 하다. 어쩜 우리 부모님과 그리 똑같은지.

표지에 이런 말이 쓰여있다. "어머니, 아버지 다시는 오지 맙시다"라고. 이거 경험 안 해본 사람은 모른다. 설사 한 집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리조트에서 패키지로 여행을 경험해 본 사람도 잘 모른다. 오직 부모님과 함께 배낭여행 형식으로 자유여행을 해봐야지만 그 묘미를 알 수 있다.

2018년에 박민우 작가님을 만나고 해외에서 거주하는 꿈을 가졌다. (사실 하노이에 살 때 이미 그 꿈이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애 키우면서 살다 보니 잠시 잊고 있었다.) 그리고 2024년인 지금까지 또 삶이 꿈을 덮었다.

[25박 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를 읽고 새로 꿈이 생겼다. 부모님 모시고, 쌍둥이 애들 데리고 치앙마이와 빠이를 가 보자고. 책처럼 한 달 살기는 불가능해도 최소한 일주일 살기라도 해보자고. 부모님이 더 늙기 전에, 그리고 내가 더 지치기 전에. 나도 여행지에서 불효자가 되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부모님이 안 계실 때 그때 지금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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