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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의 역사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킴 닐슨 지음, 김승섭 옮김 / 동아시아 / 2020년 11월
평점 :
침묵과 고립에 맞서 빼앗긴 몸을 되찾는 투쟁의 연대기.
장애를 렌즈삼아 미국의 역사를 다시 살펴본다.
사실 해외여행 다녔을 때 한국보다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어서 편의시설도 다양하고, 사람들의 배려도 남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보다 훨씬 유한 역사를 가졌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기에 책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읽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15세기 이전 북아메리카 토착민에게는 ‘장애’가 없었다. (오늘날 장애 disability 에 해당하는 단어나 개념이 없었다.)
그들의 전통적인 세계관에서는 모든 사람, 사물이 재능(기술, 능력, 목적)을 가지고 있다. 중요한건 몸-영혼-정신의 조화다. 몸-정신-영혼을 하나로 이해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기에 표준적인 몸과 정신을 유연하게 정의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은 공동체와 나눌 수 있는 재능을 갖고 있고 공동체가 건강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서로 그 재능을 나누어야 한다고 믿었다. 모두가 공동체에 기여하고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유럽인들이 도착하면서 상황은 극적으로 바뀌었다.
건강과 의학에 대한 서구적인 개념은 직접적이고 비극적인 형태로 토착민의 세계관과 충돌했다. 토착민이 야만스럽고 열등하다고 믿었기에, 수어를 미개한 손 신호라고 폄하했으며 그들이 가져온 질병(천연두, 홍역, 콜레라, 말라리아 등)으로 수많은 토착민들은 사망하고 신체변형을 겪었다.
유럽계 식민지 정착민들은 개인의 인종, 계급, 젠더, 종교에 적합한 방식으로 경제적인 생산성을 강조하였고 장애는 노동 능력과 경제적인 면에 초점을 맞춰 정의되었다.
후기 식민지시기에 이르러 수많은 토착민들은 쫓겨나고 많은 아메리카인들이 강제로 북아메리카로 끌려왔다. 노예소유자들과 옹호자들은 정당화하기위해 아프리카인들이 정신적, 신체적 열등하게 태어났고 비정상적이며 혐오스럽다고 가정했다. 몸과 정신에 이미 심각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노예제가 돌봄에 필요한 노예에게 도움이 되는 친절한 제도라고 주장했다.(!!!)
노예무역은 돈을 벌기위해 존재했기에 노예에게 장애가 있으면 수익이 감소했다. 그렇기에 살아있는 것보다 차라리 배 밖으로 던져 죽이는 게 더 이익이 된다고 생각해 악행을 저질렀다.
18세기 독립전쟁 이후 노예제도 찬성론자와 폐지론자의 논쟁이 활발해졌다.
찬성론자들이 노예제도를 정당화 하기위해 장애개념을 이용한 반면, 폐지론자들도 반대하기 위해 장애개념을 이용했다. 노예제의 타락과 잔인함을 강조하기 위해 무기력하게 구타당한 모습, 끔찍한 손상과 흉터를 자세히 묘사했고 양심에 호소하기 위해 몸이 망가져 장애를 가진 노예의 몸을 직접 보여줬다.
19세기 남북전쟁후 시민사회에 대한 개념이 등장했고 누가 교육을 받는데 적합한지 논쟁이 이어졌다. 공적인 삶에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진 사람들은 다양한 형태로 조롱받으며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배제당했다.
여기서 위대한쇼맨의 모티브가 된 ‘프릭쇼’가 등장한다.
뉴욕의 P.T.바넘의 유명미국 박물관에서, 서커스단에서, 유람선에선에서 경이롭고 기이하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몸이 전시되었다. 전시회를 여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유색인종 사람들을 전시했는데 인간과 동물 사이의 사라진 연결고리를 몸으로 보여주는 미개한 존재로 여겼다.(!!!)
20세기초반 계속되는 이민으로 국민의 구성이 바뀌면 그로 인해 미국의 정치와 문화가 바뀔 것이라는 우려가 전국을 뒤덮었다. 과학자와 일반인 모두가 신체적 “결함”을 도덕적 “결함”과 연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고 “퇴행”된 사람들을 “단종”시키기 위해 강제 불임시술을 시행했다.
오늘날 소아마비는 근절되었지만 그 당시 엄청난 공포를 유발하던 질병이었다. 뉴욕에 수많은 소아마비가 발생하자 도로를 봉쇄하기도 했고 강제로 아이를 가족과 격리시켰다.
소아마비 생존자들은 사회운동을 촉발시켰고 여러 단체를 설립해 활동했다.
2차세계대전 후 맹인퇴역군인단체를 시작으로 장애인 권리 운동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미국 장애의 역사는 장애인만의 역사가 아니다. 능력 있는 몸을 가진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법적, 경제적 혜택과 오랜 낙인 때문에 장애인이 겪는 법적, 경제적 차별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혈실이자 개념으로 살아 있고, 우리 모두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p.316)
읽는 내내 분노가 치밀었다. 특히 위대한쇼맨 영화가 떠올랐고 그걸 미화한다는 것도 역겨웠다. 영화 개봉당시에도 큰 논란이 일었지만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영화라 꼽는 다는 점도 참 말을 잃게 만든다.
장애라는 개념은 사회적 맥락,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무지하고 오만한 서양 침입자에 대한 분노도 컸지만 현대 사회역시 살아가기 녹록지 않다. 한국 장애의 역사 또한 궁금해진다. 그들만큼 잔인하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안 잔인했던 것도 아니다. 얼마 전 매일 지나다니던 지하철 승강기 앞에 폴리스 라인이 쳐졌다. 전동휠체어가 추락했다.
코로나 브리핑 중 수어통역사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왜 저분은 마스크를 쓰지 않지 라는
생각을 했었고 입모양 또한 중요하다는 걸 알고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안내견을 막고 고함쳤던 롯데마트사건도 있었다. 터무니없던 사과문도 인상 깊었다.
아직 우리 사회역시 갈 길이 멀다. 정당한 권리를 호의나 배려라고 생각하는 위선자도 득실거린다. 배우지 않으면, 모르면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 모른다. 부지런히 나아갈 수 있게 계속 공부해야겠다. 똑같은 위선자가 되긴 싫다.
장애를 의존과 동일시할 때, 장애는 낙인이 된다. 장애인의 몸에는 열등한 시민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의존의 뜻으로 이해되는 장애는 독립과 자치로 대표되는 미국의 이상적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본래 모습이 그러하듯, 우리 모두는 타인에게 의존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을 보살피고 또 보살핌을 받는다. 납세자, 공교육을 받는 학생, 부모의 자식, 공공 도로와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사람, 공적 자금이 들어간 의학연구의 수혜자, 삶의 다양한 순간에 생계를 위한 노동을 할 수 없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밖의 수많은 경우에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한다. 우리는 상호의존하는 존재다. - P20
스페인 탐험대는 수어를 두고서 언어가 아닌 개별적인 여러 몸짓으로 이해했다. 오늘날 학자들은 토착민이 사용하던 수어가 서로 다른 구어를 쓰는 집단끼리 소통하는 경우뿐 아니라, 난청인이나 농인들이 소통하는 경우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확신한다. 유럽인 탐험대는 토착민이 사용해오던 수어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것이 미개한 손 신호라고 폄하했다. - P59
존 원스럽이 주장한 바에 따르면, 그들이 저지른 괴물같은 죄는 말 그대로 그들의 자궁에서 발달한 괴물과 같은 존재로 나타났고 이러한 생명체를 출산한 것은 그 여성들이 죄인이라는 증거였다. 원스럽이 주장했듯이, 아기의 변형된 몸은 엄마의 몸을 상징했다. 그 죄가 더 극악한 것일수록, 태어난 아기의 몸은 더 괴물처럼 변형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여성이 가부장제와 신학적 권위 모두에 도전한 결과, 다이어와 허친슨의 몸뿐 아니라 그들이 사산한 아이의 몸 또한 크게 변형되고 공포스러운 것이 되었다. 유럽계 식민지 정착민들에게 장애는 물질적인 현실이었지만, 그것은 강력한 은유와 상징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 P83
노예 소유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지식인들은 노예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장애 개념을 이용한 반면, 폐지론자들은 노예제에 반대하기 위해서 장애 개념을 이용했다. 폐지론자들은 노예제로 인해 생겨난 정신적, 신체적 피해와 장애를 가진 노예들이 경험하는 학대, 노예들이 점점 쇠약해지고 의존적으로 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P127
단종수술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장기간의 시설 수용보다 수술이 더 나은 해결책이고, 이 모든 것은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건강한 국가를 위해 그 정치적 운명을 결정하는 선거인단에서 퇴행적인 사람들은 배제되어야 했다. 정치인, 법조인, 교육자, 의학 전문가는 점점 정치적 경제적 힘을 육체적 정신적 건강과 연결 지었다. 그들은 계급 간 불평등이 커져가고 인종과 젠더에 따른 권력관계 다툼이 심해지고 대규모 이민이 이어지던 시기에, 민주주의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P215
왜, 도대체 왜, 아직까지도 수백만 명의 장애인에 대한 비이성적이고 부당한 편견이 존재하는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이 시민이자 장애인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받고 그것들을 누리는 일이라는 것을, 그 인정 속에서 나오는 편안함과 안전함이라는 것을 왜 기업과 대중은 깨닫지 못하는가? - P270
"장애인이 모두 재활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집 밖으로 나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기회다." - P294
캘로는 다른 많은 장애인 부모처럼 양육권을 잃었다. 오늘날에도 장애부모의 양육권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남아 있다. 미네소타 대학의 아동복지 센터에 따르면, 3분의 2에 가까운 미국 주에서 "부모의 장애"를 부모에게서 양육권을 빼앗을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로 나열하고 있고 장애부모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확률로 아이 양육권을 잃는다. 장애부모가 비장애인 부모에 비해서 아이를 학대할 위험이 더 높지 않다는 점이 압도적으로 많은 연구결과에서 드러났음에도 그러하다. - P301
미국 장애의 역사는 미국 역사 전체가 그러하듯, 복잡하고 모순적인 이야기다. 그것은 약탈당한 땅과 몸에 대한 이야기다. 옳고 그름에 대한, 황폐함과 파멸에 대한, 패배와 고집스러운 끈기에 대한, 아름다움과 우아함에 대한, 비극과 슬픔에 대한, 변혁적 아이디어에 대한, 자아를 재창조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다. 백인, 장애인, 퀴어 작가이자 운동가인 엘리 클레어의 말을 빌리자면, "우리의 몸을 되찾고 세상을 바꾸는 용감하고 시끌벅적한 이야기다." -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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