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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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교가 없다. 혈액형도 별자리도 믿지 않는다. MBTI는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렇기에 내 혈액형이나 mbti를 물어보는 사람도 아니꼽게 본다.


‘우리는마약을모른다’로 핫한 베스트셀러작가 오후가 쓴 미신이야기.

근거 없는 믿음을 통틀어 몽땅 미신이라고 칭하며 글을 시작한다. 사주, 점술, 점성술에서 시작해 종교나 사상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민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 거침없이 건드린다.


과거 어디선가 ‘여자가 사주를 더 많이 보는 이유’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 뚫을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곳, 유리천장이 확고한 곳, 가부장적인 사회일수록 사주나 운명에 집착한다고 했다. 그렇게 순응하고 위안을 하며 살아간다는 말과 함께 사주를 보지 말자고 글은 마무리 되었다.

이 책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해 반가웠다. p.56 남성 신도에 비해 여성신도가 많은 이유에 대한 부분인데 상대적으로 여성이 배우자를 만나면서 인생이 크게 바뀌곤 했다. 그렇기에 운에 관심이 많고 인생을 바꾸기 위한 노력으로 미신을 믿는 이들이 많다. 사주를 보지말자고 책도 마무리 된 건 아니지만 그 글을 읽었을 때나 이 책을 읽었을 때나 내 생각은 같다. 막히는 부분이 있을 때 사주로, 운명으로 도망가지말자. 항상 주의하자.


또 하나 재미있었던 부분은 미국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 대부분의 주거지는 도심이거나 도시 가까운 곳에 형성된다. 그렇지만 미국은 도시에서 일하면서도 멀고 먼 교외 주택으로 출 퇴근하는 구조를 표준으로 만들었다. 개척 초기 미국 이민을 홍보했던 영국의 사기꾼(책에서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들은 신세계 자연이 얼마나 웅장한지 설파했고 사람들은 자연에 관한 환상을 갖게 됐다. 여기에 불을 지른 건 헨리데이비드의 소설 <윌든>이었다. 거기에 디즈니랜드가 심어준 환상도 한몫했다. 자연에 대한 열망은 자연이 배경으로 깔린 안락한 교외주택으로 변모했다. 환상이라는 믿음을 가진 이들은 이상적인 집을 찾아 교외로 이동했다.

이게 나비효과가 된 걸까. 그래서 미국은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에서 제일 높은 곳이 되었다. 중국 인구는 미국의 4배에 달하고 경제도 어느 정도 성장했지만 미국보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 미국인들이 특별히 뭘 더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교외로 출퇴근하고 집을 유지한다고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다. 정말 상상도 못한 부분이다. 이 환상이라는 믿음을 깨부수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환상을 깨버릴 수가 있을까 꼬리를 물고 생각해본다.


사실 나는 비전문가가 쓴 비문학 도서를 싫어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문체가 너무나 유쾌했고 세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냉소적이며 의심이 많은)이 나와 비슷해 즐겁게 읽었다.



나는 농경을 실수나 사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농경을 ‘인류 최대의 미신’이라 생각한다. 실수라는 표현에는 ‘우연히 어쩌다 한 번’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사기라는 건 ‘사기 치는 사람이 그것이 거짓말인 줄 알 때 성립’한다. 하지만 농경은 둘 다 아니다. 농경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 1,000년 이상 걸렸다. 그사이 농경을 시도한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활도 보장받기 힘들었다. 농경을 한 이들은 신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적어도 지도자들은 그랬을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하며, 자신도 정말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 믿었다. 그들은 스스로도 그 사기를 믿었기에 자신이 사기를 치는지도 몰랐다. 그들에게는 근거가 없었다. 그들이 아는 것은 콩 심으면 콩이 난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믿었다. 농경이 더 풍요로운 삶을 선사해줄 것을.
- P39

가령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괴물로 묘사되는 세이렌, 하르피아, 메두사, 스핑크스(넷 다 여성이다)는 로마가 징벌한 이민족에게 추앙받던 신들이었다. 이민족의 신을 그리스 로마의 신과 영웅들이 처단함으로써 우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신화는 꼭 여성이 아니어도 타민족의 신들을 짓밟음으로써 그리스의 위상을 높였다. - P54

2015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종교를 가진 남성은 900만 명, 여성은 1,200만 명으로 상당히 큰 차이가 난다. 종교는 대부분 가부장적이고 여성을 억압하는데 여성 신도가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에 대해 사람들은 여성이 남성보다 섬세하고 영적인 것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그런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혹시 가부장제 사회이기 때문에 여성이 종교에 더 빠진 것은 아닐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삶을 생각해보자. 남성은 힘이 들든 고생을 하든 어쨌든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 반면 여성은 남편이나 아들에 대해 운명이 바뀐다.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다. 물론 좋은 부인과 어머니는 남편이나 자식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어쨌든 그녀들의 삶이 온전히 자신의 것이라 하긴 어렵다. 여성에게는 운이 너무도 중요한 것이다. 그러니 미신에 빠져들고 종교를 신봉할 확률도 높다.
- P56

과거에는 극단적인 변화가 없는 삶을 추구했다. 환경에 맞게 조금씩 변해야지, 큰 움직임이 있는 것은 좋은 신호가 아니었다. 여기저기 떠도는 것도 역마살이라고 좋지 않게 봤다. 과거에는 고향에서 일평생을 보냈으므로 떠돈다는 건 전쟁이라도 나가거나 최소 공동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또한 사주에는 남녀의 권력관계도 드러난다. 남성은 재성으로 연애운과 결혼운을 본다. 재성은 재산, 재능 등의 의미로 여기에 연애운을 포함시켰다는 것은 남성에게 여성이 일종의 재물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반면여성에게 남성은 관성이다. 관성은 국가, 아버지처럼 나를 억누르는 힘이다. 남자에게 여자는 재물, 여자에게는 억압이다. 명리학이 성립되었을 때 사회가 어떤 모스이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다. 정상 가족을 상정하고 있으며, 이성애 위주로 관계를 설명한다. 비혼주의자는 어떻게 사주를 볼 것인지, 동성애자는 파트너 운을 관성으로 봐야하는지 재성으로 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기준이 없다.
- P151

현대사회가 화로 넘치고 각박해진 이유 중 하나가 제왕절개 때문이라는 것이다.
제왕절개는 대부분 통상 업무 시간에 이루어진다. 야간에 급박하게 수술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통 출산일 전후로 수술 시간을 잡는다. 그리고 그 시간은 대부분 낮일 것이다. 병원 운영 시간의 대부분은 ‘화’속성인 사시(09:00-11:30)와 오시 (11:30-13:30)에 걸린다. 이어지는 미시(13:30-15:30)는 ‘토’에 해당하지만, 화에 가까운 토로 본다. 반면 화의 극에 해당하는 ‘금’과 ‘수’는 저녁과 새벽 시간이다. 즉 제왕절개로 태어난 이가 많은 현대인의 시지에는 화가 있을 확률이 높다. 사주는 여덟 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지에 화가 있다고 해서 개개인의 성격이 급해지고 불같아진다고 단정할 순 없다. 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자면 사주에는 화가 늘어나고, 화는 화와 합치는 성질이 있으므로 점점 더 큰 불이 된다. 그래서 우리 사회가 급박해지고, 짜증과 분쟁이 늘어나는 것이다.
- P154

미국은 1인당 에너지 소비량이 세계에서 가장 높을 뿐 아니라, 인구를 무시한 총량을 따져도 에너지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나라다. 중국 인구는 미국의 4배에 달하고 경제도 어느정도 성장했지만, 그럼에도 미국보다 에너지를 적게 사용한다. 그렇다고 미국 사람들이 특별ㄹ히 뭘 더 하는 게 아니다. 그냥 교외로 출퇴근하고 집을 유지하느라 온통 에너지를 날리고 있을 뿐이다. 딱히 하는 일도 없이 열심히 지구를 파괴하는 것이다.
교외 생활은 지독히 비효율적이지만, 미국은 그 비효율을 감당할 만한 풍족한 자원과 국제적 위상을 가졌기에 헛된 욕망이 실현될 수 있었다. 만약 미국이 좀 더 효율적이고 정상적으로 주거 형태를 구축했다면 지금보다 더 강력한 경제력을 갖췄을지도 모른다.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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