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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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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유전자 보존을 위해 맹목적으로 프로그램된 로봇기계이다!’ 라는 표지에 적힌 자극적인 문구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며 단도직입적으로 책을 소개한다.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1976년 진화론에 대한 획기적인 관점을 제기하는 저서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해졌으며, 대중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제기되는 관점은 이후 생물학계는 물론이거니와 인지철학자 데닛(D. Dennett), 과학철학자 갓프리 스미스(P. Godfrey-Smith) 등 인문학 연구자에게 뿐만 아니라 대중에게도 영향력을 미치는 친숙한 주제가 되어, 리처드 도킨스는 2005년 영국과 미국에서 실시한 세계를 이끄는 대중적 지식인 100에 선정되기도 했다.

 

 책의 제목이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일상생활에 사용하던 이기적이라는 용어의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의 이기적이라는 용어의 뜻은 선()의 반대말로 사용되는 악()의 관점에서의 이기성이 아니다.

유전자가 도덕적이지 못한 부정적인 의미로서의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기보다는, 유전자가 존속된 효과 면에서 마치 이기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알맞다.

이기성은 생존과 관련된 모든 생명체와 유전물질의 본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유전자 자신을 존속시켜야만 번식과 생존에 성공하는 유전자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해 저자가 사용한 용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점을 생각할 때, 저자의 논의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유전자의 시각으로 바라본 진화와 생존이며, 둘째는 유전자들이 단독으로 행동하지 않고 서로 양립하는 상호작용을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밈(meme)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인간의 문화적 진화 단위에 관한 것이다.

 

 이처럼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 진화와 생존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연구 대상 면에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예시를 들고 분석한 것들이 인간을 뺀 생물체(특히 동물들) 위주였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저자도 이러한 비판을 의식하였던 듯 11(-새로운 자기 복제자)에서는 밈의 개념을 언급하며, 앞장까지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했음과 인간 문화의 특이성을 언급한다.

나아가 11장의 마지막에서는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저자가 만약 이 점을 중요하게 언급하고 싶었다면, 인간에게 있어서만은 유전자의 이기성이 완벽하게 드러나지 않음을 따로 명시했을 것이나, 그런 부분은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인간 사회의 복잡다단함과 인간의 도덕적 능동적 사고 양상을 염두에 두었을 때, 저자의 주장에서는 밈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는 몇 가지 부족함이 보인다고 지적할 수 있다.

   

 생명체를 움직이는 숨은 일인자로서의 유전자의 존재에 대해 소개하면서 리처드 도킨스는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의 진화를 설명한다.

희생과 이타적 행위 등을 행위자의 관점이 아닌, 그에게 명령하도록 하는 유전자의 입장에서 살펴봐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유전자의 눈높이에서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이며, 고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자가 처음 책을 저술한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변화하고 진화해 나가는 유전자와 생명체, 인간 문화에 대한 인식에 맞춰 이기적인 인간속에서의 이기적인 유전자의 진화를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관찰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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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섭 - 지식의 대통합 사이언스 클래식 5
에드워드 윌슨 지음, 최재천.장대익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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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과학사회과학인문학 등의 지식계 뿐 아니라 정치경제계에서도 통섭(consilence)'은 그야말로 핫한 이슈가 되었다.

국어사전에서조차도 눈에 띄지 않았던 이 낯선 단어가 21세기 학문의 경향을 말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핵심 단어가 된 것은 2005년 최재천 교수가 에드워드 윌슨(Edward O. Wilson)의 저서 Consilience : The Unity of Knowledge를 번역하는데 있어, ‘통섭(通攝)’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통섭은 모든 체계를 아우르는 큰 줄기를 잡아낸다는 의미이다. 이 개념을 고안해낸, 저자 에드워드 윌슨은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으며, 사회생물학 분야를 개척한 살아 있는 최고 생물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책의 제목인 통섭은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주장이자, 글을 한마디로 요약했을 때의 빠져서는 안 되는 주제어이다.

통섭은 모든 학문체계의 서로 다른 요소와 이론들을 아우르는 큰 줄기(체계)를 잡아내는 일련의 활동이며, 특히 이때의 활동들은 여러 가지 요소가 뒤섞여 통합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단위로 거듭나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의 논의를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는 이오니아의 마법(Ionian Enchantment)'이라고 불리는 고대 그리스 탈레스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과학자들의 오랜 신념에서부터 17~18세기 계몽사상에 이르기까지 확인되는 통섭의 근원에 관한 것이며, 둘째는 자연과학이 통섭의 분석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셋째는 유전자-문화 공진화(gene-culture coevolution)‘라는 용어로 표현한 유전자 진화와 병행하는 문화적 진화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통섭의 근원과 토대를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찾아가기 시작하여 계몽사상에 이르기까지 두루 발견하게 된다.

통섭의 기초적인 신념은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들에 의해서 어느 정도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계는 질서정연하며 몇몇의 자연법칙들로 설명할 수 있다는 통합 과학에 대한 과학자들의 믿음은 통섭의 근거를 마련한다.

이를 저자는 이오니아의 마법이라는 말로 정리하고, 최초의 마법에 걸린 이를 탈레스라고 소개한다.

아인슈타인 역시 물리학의 거대한 통합을 시도한 이오니아 인이었다.

탈레스에서 아인슈타인, 그리고 저자에 이르기까지 이오니아의 마법은 계속 확장되어 오며, 통섭의 개념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간다.

   

 이 책의 역자이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 개념을 널리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한 최재천 교수는 저서(2005)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는 학제’(inter) 연구로는 부족하며, 여러 학제들을 단순히 통합하는 멀티(multi)'로도 부족하다. 단순한 조합을 넘어서 트랜스(trans)'를 해야 할 때가 왔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세분화된 각 분야의 전문가들만이 존재했으며, 이들의 전문성이 강조된 사회풍토는 다양한 학문 간의 소통을 막았으며 이는 편협하며 근시안적인 결과를 낳았다.

세분화된 각 학문들로만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수없이 나타나고 있는 지금, 단순한 간학문적 연구를 넘어서서 서로 자유롭게 오가며 서로의 방법론과 가치체계를 크로스오버할 수 있는 통섭에의 시도가 더더욱 필요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 통섭이 사회의 떠오르는 화두가 된 것은 통섭 개념 자체에 대한 정교한 분석보다는 간학문적 연구와 크로스오버를 중시하는 최근의 학문적 경향성에 편승한 측면이 상당 부분 있다.

진정한 통섭을 이루어내기 위해서는 통섭의 의미와 통섭을 이루어내는 방법, 한계에 대한 치밀한 분석과 합의가 더욱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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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과 마력의 도시 로마 산책 - 정태남의 유럽 문화 기행
정태남 글.사진 / 마로니에북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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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 여름 로마를 비롯하여 밀라노, 피렌체 등의 이탈리아 몇 개 도시를 여행했다.

출발 직전까지 이어진 빠듯한 직장일 때문에 이탈리아와 로마의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공부를 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눈을 사로잡는 오랜 과거의 빛나는 유산들과 아름다운 미술품들은 특별한 배경지식이 없이도 그 순간 눈을 사로잡았지만, 역시나 각 유적과 유물이 담고 있는 '사연'을 알지 못해 깊이 있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았었다.

귀국 후 그 아쉬움을 달래려 이탈리아를 이해할 수 있는 몇 권의 책을 구입했는데 이 책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저자는 오랜 로마 거주 경험과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매력과 마력이 있는 도시 로마 곳곳에 산재한 유적들에 대해 설명한다.

로마가 탄생한 언덕 팔라티노에서부터 로마의 중심이었던 포로 로마노, 오늘날 로마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이된 콜로세움, 스페인 광장, 트레비 분수, 바티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명소를 소개한다.

 

 

 로마를 여행하면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웠던 유적지는 포로로마노이다. 실제로 지금 이 곳은 거의 모든 건물이 무너진 채 건물의 터와 쓰러진 기둥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럽 여행후기를 나누는 카페에 가보면 포로로마노를 방문하지 말고 건너뛰라는 말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포로로마노가 어떤 곳인지를 책을 읽고 잘 알게된다면 이 곳을 건너뛸 관광객을 하나도 없을 것이다.

 

 포로로마노는 로마의 정치, 경제, 사법, 행정, 종교, 법률 등이 모두 몰려 있는 로마세계의 중심지였다. 로마에서 가장 돋보이고 웅장한 기념물들이 세워졌고, 로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 결정들이 내려졌던 곳이다. 오늘날 미국 뉴욕의 타임스퀘어 거리, 또는 워싱턴의 국회의사당 주변과 같은 곳이라고 하면 비슷할까?

 

 

 로마의 역사를 모르면, 로마에서 관광객들이 만나는 것은 폐허와 같은 돌무더기 뿐이다. 그러나 그 폐허가 과거에 어떠한 영광을 대변했는지, 어떠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알고 본다면 그 돌무더기는 더이상 의미없는 폐허가 아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계획하는 모든 여행자, 그리고 서양사의 근간을 알고 싶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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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의 탄생
필립 아리에스 지음, 문지영 옮김 / 새물결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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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는 발명되었다!’라는 표지에 적힌 자극적인 문구가 단도직입적으로 책을 소개한다.

저자인 필립 아리에스(Philippe Ariès)’는 심성사 연구에 바탕을 둔 독특한 연구 주제로 내놓는 책마다 아리에스 쇼크라 불릴 정도로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킨 재미있는 역사가이다.

이번에 저자가 주목한 주제는 아동의 탄생이다.

그렇다면 아리에스의 말대로(혹은 한국판 제목대로) 정말 아동(라는 개념이) ‘탄생한 것이란 말인가?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나는데 밑바탕이 되는 중요한 시기라 여겨지는 아동기에 대한 관심이 큰 것은 이제 너무나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생의 여러 시기에 대한 구분이 16세기 즈음에서야 알려지고 훨씬 후대가 되어서야 일반화되기 시작했다는 아리에스의 놀라운 지적을 주목해야 한다.

영아기-유아기-아동기-청소년기-성인기-장년기-노년기와 같은 인간의 발달 단계가 오늘날과 같이 일반적으로 쓰는 일상 용어가 아닌 완전한 학술 용어였다는 것이다.

 

 

이같이 인간의 발달 단계가 일상 속에서 관심을 받지 못하고, 일상생활의 잠재적 사고에서 구분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15, 16세기에는 자기 나이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일이 드물거나 아예 기억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희한한 관행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나이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조심스럽게 대답하도록 강요받았다.

나이를 두리뭉실하게 말하는 것이 당시의 예절이었으며, 일반적인 대화법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이를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나이에 대한 정확한 언급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독특한 언급법은 습관적인 관습으로 굳어졌다.

 

 

16세기에서야 번역되기 시작한 라틴어 백과사전 만물의 위대한 소유주가 대중에게 일반화된 나중에서야 인생의 시대 구분이 일상적으로 받아 들여졌다는데 다시 주목해 보자.

그전까지 사람들은 인생의 시기를 특별하게 구분 짓는 용어를 생각하지 않았으며, 나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의 구분도 모호한 편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 사회적, 육체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던 아동기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성인으로서의 어른이라는 개념만이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다. 어른들과 어울리기에는 아직 너무 유약한 아기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몰리에르의 표현처럼 아주 어린 아이는 완전한 사람으로 생각되지도 않았다.

이 시기를 넘어선 이른바 아동기의 어린이들은 아동으로서의 특별한 위치를 얻는 대신 바로 어른의 세계로 편입되었다.

 

 

따라서 중세 사회에는 아동기에 대한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오늘날 사용하는 아동의 개념은 그 이후에 발견(또는 발명, 탄생)된 것이라고 아리에스는 주장한다.

종전의 역사가들이 사용하지 않았던 교육서, 예법서, 편지, 일기, 판화, 초상화, 회화, 묘비석, 조각 등의 각종 자료를 동원하여 아리에스는 이 사실을 증명해 나간다.

이 책의 원제는 앙시앵 레짐 시대기의 아동과 가족의 생활(L'enfant et la vie familiale sous l'Ancien Régime)’이다.

앙시앵 레짐기는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 18세기 프랑스가 부르봉 왕가의 지배 하에 있던 구제도 시기이다.

 ‘아동과 가족 생활이라는 말은 그 둘이 밀접한 관계에 놓여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아리에스는 앙시앵 레짐기의 아동의 탄생을 고리로 하여 17세기부터 일어난 가족 생활의 변화(특히 부르주아 가족 생활의 변화)를 추적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아리에스가 말한 아동의 탄생은 특히 프랑스와 주변의 유럽국가의 아동의 탄생을 의미한다.

오늘날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 사회는 재밌게도 다시 아이를 어른으로 탄생시키고자 하는 시도가 생기고 있다.

아동과 청소년 사이에 있는 8세에서 14세 사이의 이른바 트윈 세대를 상업적으로 탄생시켜 그들이 어른 흉내를 내고 하루라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경향을 부추기면서 틈새시장의 상품화 전략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동기가 인정되는 사회에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 17세기 도덕론자들의 의식과는 또 달리 아이들의 틀을 설정하여 아동기를 너무도 견고하게 의식화하고 규정한(어쩌면 부정적으로) 오늘날의 사회.

 

책을 읽고나니 여전히 변화하고 진화하려는 아동에 대한 인식에 맞춰 계속 아동의 탄생을 생각해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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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이은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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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르네상스(Renaissance)'는 중세의 오랜 기독교 중심적 암흑기를 극복하고 인간 본연의 사고와 감정을 자유로이 예술로 꽃피워냈던 재생의 시기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르네상스를 단순히 고대 인문주의와 미적 감각의 부활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여 그것이 일어났던 구체적인 시공간의 실질적인 요구와 역사적 상황을 간과한다면, 과거로서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의미를 지니는 통합적인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예술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러한 예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현실적이며 다분히 경제적이었던 시대적 맥락을 꿰뚫어보는 눈을 흐리게 하기 쉽다.

 

저자인 이은기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의 주문자와 그의 목적을 밝힘으로써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의도는 르네상스 예술품을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이 아닌,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근대적 예술 개념 하의 미술관 속 예술품도 아닌, 역사적 맥락에 깊은 관련을 맺으며 당대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던 산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책의 2장 '광장과 미술 그리고 정치이념'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어서 커다란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던 '광장'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2장의 서론에서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의 광장은 정치적인 상징으로 작용하였으며, 아름다운 광장의 계획과 그 안에 배치되는 조각의 선택에는 항상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있고, 또 그 목적에 따라 광장의 모습이 변하여갔다고 밝히고 있다.

, 권력을 가진 집단이 정치를 함에 있어서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치 이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미술품을 광장 안에 배치하거나 혹은 광장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미술품으로서 구획하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이 시대에 따라 14세기 길드를 바탕으로 한 신흥시민계층, 15세기에서 16세기 초 공화제를 이룬 시민대표, 16세기 권한이 확대된 교황으로 이동해가면서, 당대 권력을 가졌던 개인이나 집단의 서로 다른 목적에 합당하게 광장 미술의 역할과 그것이 대변하는 정치이념도 바뀌어갔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서술한대로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는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광장들이 형성되었다.

시에나의 캄포 광장은 중세 말 경제적 종교적 사회문화적 차원에 걸친 다양한 시민생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으로 작용하였다. 도시가 발전하며 새롭게 부상하는 상인계층이 대안적 공화정인 9인 정부를 형성하였고, 이에 다라 캄포 광장은 도시를 포용하며 시민사회의 행사장이 되었다.

한편, 15세기에서 16세기 초 피렌체에서 조성되었던 시뇨리아 광장은 시청건물에서부터 광장을 넓혀나가 처음부터 정치의 장이 되고 이에 공화정을 상징하는 조각들을 놓음으로써 그 정치 이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였다.

 마지막으로, 16세기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 또한 앞의 두 광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필요, 즉 로마교황권의 세속화라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시기 이탈리아의 광장이 가졌던 의미는 현재의 그것이 갖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500년 전 이탈리아의 광장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자체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채 존재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정치 이념과의 깊은 관계맺음 속에서 존재했다면, 현재의 광장의 모습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 변화하는 정치 세태에 따라 살아 숨쉬며 기능하고 함께 변화했던 광장은 이제 그 주인이었던 시민들이 아닌 관광객들로 넘쳐나며 하나의 멈추어진 박물관, 위대한 예술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 광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품으로서 광장이 가지는 미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만들어질 당시에 그것이 하나의 효과적인 시각매체로서 어떤 사회 정치적 이념을 대변했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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