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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미술과 후원자
이은기 지음 / 시공사 / 200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흔히 '르네상스(Renaissance)'는 중세의 오랜 기독교 중심적 암흑기를 극복하고 인간 본연의 사고와 감정을 자유로이 예술로 꽃피워냈던 재생의 시기로 일컬어진다.
이러한 르네상스를 단순히 고대 인문주의와 미적 감각의 부활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하여 그것이 일어났던 구체적인 시공간의 실질적인 요구와 역사적 상황을 간과한다면, 과거로서의 역사뿐만 아니라 현재까지 의미를 지니는 통합적인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르네상스 예술이 이루어낸 성과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은 그러한 예술적 성취를 가능하게 했던 현실적이며 다분히 경제적이었던 시대적 맥락을 꿰뚫어보는 눈을 흐리게 하기 쉽다.
저자인 이은기는 책의 서두에서 밝히고 있듯이, 이 책을 통해 르네상스 미술의 주문자와 그의 목적을 밝힘으로써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의 의도는 르네상스 예술품을 현실과 동떨어진 예술 그 자체를 위한 예술이 아닌, 18세기 중엽 이후 유럽에서 형성된 근대적 예술 개념 하의 미술관 속 예술품도 아닌, 역사적 맥락에 깊은 관련을 맺으며 당대 사람들의 실질적인 삶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던 산물로 보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책의 2장 '광장과 미술 그리고 정치이념'에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있어서 커다란 정치적 역할을 수행했던 '광장'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2장의 서론에서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의 광장은 정치적인 상징으로 작용하였으며, 아름다운 광장의 계획과 그 안에 배치되는 조각의 선택에는 항상 정치적인 목적이 깔려있고, 또 그 목적에 따라 광장의 모습이 변하여갔다고 밝히고 있다.
즉, 권력을 가진 집단이 정치를 함에 있어서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치 이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는 미술품을 광장 안에 배치하거나 혹은 광장 자체를 하나의 커다란 미술품으로서 구획하고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서 권력의 중심이 시대에 따라 14세기 길드를 바탕으로 한 신흥시민계층, 15세기에서 16세기 초 공화제를 이룬 시민대표, 16세기 권한이 확대된 교황으로 이동해가면서, 당대 권력을 가졌던 개인이나 집단의 서로 다른 목적에 합당하게 광장 미술의 역할과 그것이 대변하는 정치이념도 바뀌어갔다는 것이다.
저자가 책에서 서술한대로 14세기에서 16세기에 이르기까지 르네상스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는 시민사회의 발달과 함께 광장들이 형성되었다.
시에나의 캄포 광장은 중세 말 경제적 ․ 종교적 ․ 사회문화적 차원에 걸친 다양한 시민생활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공간으로 작용하였다. 도시가 발전하며 새롭게 부상하는 상인계층이 대안적 공화정인 9인 정부를 형성하였고, 이에 다라 캄포 광장은 도시를 포용하며 시민사회의 행사장이 되었다.
한편, 15세기에서 16세기 초 피렌체에서 조성되었던 시뇨리아 광장은 시청건물에서부터 광장을 넓혀나가 처음부터 정치의 장이 되고 이에 공화정을 상징하는 조각들을 놓음으로써 그 정치 이념을 효과적으로 시각화하였다.
마지막으로, 16세기 로마의 캄피돌리오 광장 또한 앞의 두 광장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필요, 즉 로마교황권의 세속화라는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형성되었다.
그러나 르네상스시기 이탈리아의 광장이 가졌던 의미는 현재의 그것이 갖는 의미와는 전혀 다르다.
500년 전 이탈리아의 광장들이 예술을 위한 예술 그 자체로서 현실과 동떨어진 채 존재하기 보다는 구체적인 정치 이념과의 깊은 관계맺음 속에서 존재했다면, 현재의 광장의 모습은 과거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즉, 변화하는 정치 세태에 따라 살아 숨쉬며 기능하고 함께 변화했던 광장은 이제 그 주인이었던 시민들이 아닌 관광객들로 넘쳐나며 하나의 멈추어진 박물관, 위대한 예술품으로서 감상의 대상이 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들 광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술품으로서 광장이 가지는 미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만들어질 당시에 그것이 하나의 효과적인 시각매체로서 어떤 사회 정치적 이념을 대변했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