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외 지음, 류시화 옮김 / 보리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공감하는 삶

#독후에세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아니다.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다. 모르겠지만 모르겠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게 된 것도 마찬가지로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삶에 ‘어떻게’를 붙여 설명하는 일에 이런 책이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무수한 책 속에서 언급되는 분이다. 뭐 하는 사람인진 모르겠는데 이름은 또 알겠는, 니어링 부부의 이야기를 부러 찾아 읽게 된 건 우연한 마주침이었다. 24년, 평산 책방에서 주관한 독서모임 리더 양성과정에 참여하게 되었다. 같은 조로 마주 앉은 한 애서가께서 인생 책으로 소개한 책이 바로 니어링 책이었다. 누렇게 바랜, 조금만 힘을 주어도 바스러질 것처럼 오래된 책이었다. 책을 소개하는 애서가는 생각한 대로 산다는 게 쉽지 않은데, 스콧 니어링이 자신이 말하는 대로 살았고, 죽음까지도 자신의 말처럼 죽었다며 그 지점이 본인에게 무척이나 의미 있었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우연히 중고서점에 들러 그때 애서가의 책처럼 누렇게 바랜 오랜 시간을 한껏 머금은 낭만 가득한 책을 운 좋게 구입할 수 있었다. 그냥 읽기만 했어도 충분히 인상적일 책이다. 용기 내 교환 독서 메이트를 구했고, 고맙게도 오랜 책벗이 함께 읽어주어 조금 더 의미 있게 책을 읽었다. 100년 가까이가 흐른 지금도 귀한 이야기들이었다. 자급 자족 같은 생활 상에 대한 이야기만을 톺을 것이 아니었다. 그런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자신들의 삶을 오롯이 맞춰가는 부부의 모습에서 얻는 메시지가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연인으로 살 거야, 따위의 말로 이 책의 소감을 남기고 싶지 않다. 나의 삶에 오롯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대세에 휩쓸리지 않는 심지와 필요한 만큼만 취하는 삶을 엿보며 지금의 내 삶에 넘쳐나고 있는 불필요함과 불편함들이 명징하게 떠올랐다. 함께 읽은 메이트의 글귀에서도 같은 마음이 느껴졌다. 세상을 바꾸자는 것도 아니고, 더 나은 삶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의 삶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울림이 크게 남았다. 언제고 시간이 흘러 한 번 더 이 책을 마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때에도 나의 책벗이 함께 읽어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책이 될 것 같다. 추천한다.

#책사이애19 #헬렌니어링 #스코트니어링 #조화로운삶 #교환독서 #류시화 #자급자족 #인생책 #책벗뜰 #독후에세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음, 김계영 외 옮김 / 레모 / 202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머니와 아내와 여성

#독후에세이

여자로 태어난 저자는 유년 시절부터 바라본 엄마의 모습, 그 속에서 시나브로 만들어진 여성의 상, 그리고 아내, 엄마로서의 상을 엿보며 여성이라는 자아를 구축해 나간다. 이십 대 초반 남편을 만나 아내가 되고, 곧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온전히 자각한 여성은, 그 각각의 마디 마디에서 저자가 이야기하는 여성은 결국 ‘얼어붙은 여자’였다.

책을 읽으며 무척이나 공감되었다. 살아온 방식과 집안 환경, 부모의 성향이나 결혼 배우자의 이미지 또한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느낀 지점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화자 내면의 목소리였다. 솔직한 걸로 야 말해 무엇 하나, 그래도 솔직함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으려면 솔직함 속에 무엇을 드리웠느냐이다. 그저 솔직하기만 한 속내가 아니라 솔직함 속에 후추처럼 뿌려진 저항이 문장 곳곳에서 나의 감각을 자극했다.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여전히 여성인 나의 삶과 시간을 계속해서 톺아보게 된다. (이 지점이 사실 아니 에르노 소설이 주는 각성 높은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늘 미간에 굵은 주름을 긋고는 한숨을 푹푹 내쉬던 엄마의 모습에서 여성의 삶을 비춰보기 보다 엄마 자체의 성격과 성향으로 치부해 버렸다. 다정할 수 없었던 엄마의 입장을 고려하는 사람은 나 외에도, 아무도 없었던 듯하다. 결혼을 한 직후 시어머니가 ‘언제 올 거냐’고 물었을 때 ‘왜 가야 하나?’를 가장 먼저 떠 올렸던 나도 그것이 그들의 입장에서는 응당 자연스러운 ‘아들자식 내외’의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엄마가 된 지금의 나 또한 이전에는 단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모습이고, 그 모든 입장을 가지게 된 여성으로서의 내 삶은 단 한마디로 정의될 수 없는 무척이나 지난한 존재가 되었다.

어떤 결론이 필요하다면 그러해서 나는 온전한 ‘여성’이라 이야기하고 싶다. 나 또한 젖병 수유임에도 남편이 그것을 같이 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단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아이와의 외출 또는 여행이 여가가 아닌 집안 일과 육아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을 누구에게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이 나에게 주는 의미가 짙다. 그녀의 책 속에서 나는 해방감을 느낀다. 추천한다.

@ed_lesmots
#책사이애18 #레모 #얼어붙은여자 #아니에르노 #여성 #결혼 #책벗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독후에세이

내 사랑의 언어

남편을 사랑한다.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감각은 꽤 분명하다. 여기서 사랑의 정의를 묻는다면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대답, 즉 사랑의 정의는 바로 ‘동질감’이다.

동질감,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성질이나 바탕이 같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고로 내 사랑은 남편 마음의 바탕과 내 마음의 바탕이 같다고 느끼는 일종의 판단이겠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의 바탕이 같냐, 바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남편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절절한 순애보나, 믿음직스러운 책임감이나, 으스러질것처럼 마음을 조물딱거리는 카리스마나 그것도 아니면 배우자로서의 자세나 태도가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다양한 관점으로 세세하게 톺아보면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특별함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에게 향하는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함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간과하기 쉬운 무례나 간섭이 남편에게는 없다. 여기서의 간섭은 어떻게 보면 애정의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만 비뚤게 보면 마치 사랑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쉽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주 대상인 내가 느끼는 간섭의 부재는 완벽하리 마치 온건한 믿음이자, 확신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강력한 사유가 설명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다.

이것은 합의된 사랑의 조건도 아니다. 건설적인 미래와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배려나 양보, 희생은 더더욱 아니다. 눈에 보이거나 감각이 반응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둘 사이의 에너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신한다. 이것을 정의할 때면 으레 우리의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으로써 아무런 의미를 띠지 못하는 건 아닌가 설핏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남편 이외의 사람 중 그 누구와도 교류된 적 없고, 시도 된 일이 만무한 이 사랑은 나의 삶이 끝나는 날 까지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81p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사랑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언어에 서로를 향한 의리와 책임이 명징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분명한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책사이애16 #사랑의기술 #에리히프롬 #프로이트 #책벗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의 기술 - 출간 50주년 기념판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독후에세이

내 사랑의 언어

남편을 사랑한다. 그를 사랑한다고 느끼는 감각은 꽤 분명하다. 여기서 사랑의 정의를 묻는다면 질문자의 의도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나에게서 나올 수 있는 대답, 즉 사랑의 정의는 바로 ‘동질감’이다.

동질감, 사전적 의미로 ‘다른 사람이나 사물과 성질이나 바탕이 같다고 느끼는 마음’이다. 고로 내 사랑은 남편 마음의 바탕과 내 마음의 바탕이 같다고 느끼는 일종의 판단이겠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의 바탕이 같냐, 바로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다.

남편은 나에게 매우 특별한 사람이다. 절절한 순애보나, 믿음직스러운 책임감이나, 으스러질것처럼 마음을 조물딱거리는 카리스마나 그것도 아니면 배우자로서의 자세나 태도가 특별하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다양한 관점으로 세세하게 톺아보면 그런 부분도 있을 수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특별함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나에게 향하는 마음가짐이 다른 사람과는 다른 특별함이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간과하기 쉬운 무례나 간섭이 남편에게는 없다. 여기서의 간섭은 어떻게 보면 애정의 소소한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조금만 비뚤게 보면 마치 사랑이 아닌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키기도 쉽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주 대상인 내가 느끼는 간섭의 부재는 완벽하리 마치 온건한 믿음이자, 확신에 가깝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강력한 사유가 설명된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그에 대한 믿음이 단단하다.

이것은 합의된 사랑의 조건도 아니다. 건설적인 미래와 안정된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배려나 양보, 희생은 더더욱 아니다. 눈에 보이거나 감각이 반응하지는 않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둘 사이의 에너지로 서로의 사랑을 확신한다. 이것을 정의할 때면 으레 우리의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으로써 아무런 의미를 띠지 못하는 건 아닌가 설핏 걱정도 된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남편 이외의 사람 중 그 누구와도 교류된 적 없고, 시도 된 일이 만무한 이 사랑은 나의 삶이 끝나는 날 까지도 지속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81p

내가 남편을 사랑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사랑을 명확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나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 언어에 서로를 향한 의리와 책임이 명징하게 포함되어 있다는 분명한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

#책사이애16 #사랑의기술 #에리히프롬 #프로이트 #책벗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평이아닌
#독후에세이


독서모임을 통해 세상을 이전보다는 조금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에 지적 성장이니 인성 함양이니 같은 좁다란 의미는 부여하고 싶지 않다. 그저 현실을 조금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안경을 하나 얻은 것뿐이다. (벗으면 그만일)

책으로 만나는 세상은 사실 좀 극적이다. 제아무리 현실을 바탕으로 썼다고 해도, 한편 현실이 책보다 더욱더 처참하고 엉망이라고 해도 어쨌든 책으로 만나는 세상은 책 속에서 안전하게 적절한 거리와 쿠션을 가지고 나에게 다가온다. 그래서 자꾸만 더 책 속으로만 빠져들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안전하게 읽기만 했던 책이 독서모임을 시작함으로써 더 이상 안전지대일 수 없게 되었다. 마주 앉아 건네는 말과 표정 속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각자가 안고 있는 고정관념과 숨길 수 없는 혐오와 스스로에게 가하는 질타 등등 제아무리 꼼꼼하게 포장을 해도 회차가 쌓이고, 시간이 쌓이고, 주고받는 말이 쌓이면 더 이상 포장할 수만은 없다. (그것을 깨달은 쪽이라면, 나는 그럼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건가)

날것으로 마주하는 세상은 더 이상 현실도 책도 될 수 없다. 그 어중간한 경계에서 끝도 없이 흔들리는 것. 눈앞의 현실과 머릿속에 든 책이 일체가 되는 일은 웬만해서는 없다. 인식을 가득 채웠던 글자를 지나쳐 사람과, 상황과, 자본과, 기회가 마구 뒤섞이게 되면 정작 내가 했던 말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기가 쉽지 않다. 종래에는 일치하지 않는 그것마저도 인간의 진실성이라 포장하며 다시 또 거리와 쿠션을 찾게 된다.

제도가 만들어지면 인식이 바뀌고, 인식이 바뀌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나 또한 밥 먹듯 했다. 구태의연한 사회적 문제들을 논할 때마다 수순처럼 따라오는 말 ‘제도’다. 마치 그것이 없어서 이 세상이 이렇게 굴러간다는 듯. 법을 공부하고, 제정하고, 감시하고, 심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세상은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과는 또 다르다. 그것에 실망이나 무력감, 환멸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보고 싶은 그 마음이 사실은 책으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이 아닐까.

제도는 그 무엇도 바꿀 수 없다. 무너지는 아이들을 보호해 줄 수 없고,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을 격리해 주지 못한다. 공정과 정의에 목숨을 내놓는 사람을 추앙해 주지 않고, 아무 욕심 없이 바라는 것이라고는 오직 가족들과 나눠 먹을 밥 한 그릇뿐인 사람의 숟가락을 스크린 사이에 욱여넣으며 ‘정’이 붙지 않은 무수한 단어들로 (기간제, 임시직, 비정규직, 아르바이트, 계약직) 아무렇지도 않게 분질러 버린다. 그래서 나는 법을 믿지 않고, 제도를 우선에 두지 않는다.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람이기에, 사람이라서, 사람이니까 생겨나는 일들이다. 그것에 조금 더 너그러울 수 있는 세상을 꿈꿔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의 양심을 믿어보는 쪽으로 서고 싶다. 법이나 제도가 아닌 인간 그 자체로 사람다울 수 있는 세상이 분명히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하며.

#책사이애15 #사람에대한예의 #권석천 #양심 #제도 #영화이야기 #칼럼 #에세이 #경남독서한마당선정도서 #어크로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