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유영만 지음 / 21세기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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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답게 사는 삶,
인생이 시답지 않아서 - 유영만

글을 쓴다 말하고 다닌 지도 어느덧 20여 년이 흘렀다. 지금도 이 말을 쓸까 말까 고민하며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는 중이다. 세상 민망하고 또 맹랑한 말이다. 글을 쓴다고? 무슨 글? 내가 글을 쓴다고 말하면 대부분 이어지는 말이 대동소이하다. 어떤 글을 쓰냐와 작가냐는 물음이다.

어떤 글을 쓰는지 궁금한 건 자연스러운 추가 질문이라고 치자, 작가냐는 질문에는 좀 더 많은 의미가 들어가 있다.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글을 써서 생산활동을 하는 사람, 글을 써야 할 이유가 명백한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작가라 한다. 그런 의미로 나는 작가냐는 상대의 물음에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시집이라 해서 읽고 있는데 어느새 궁금증이 생긴다. 시인이 아닌 사람이 쓴 시를 이렇게 책으로 읽으면 이 저자는 시인인가 아닌가? 책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가 무척 인상적인 책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발걸음이 향한 벼랑 끝에서 타들어가는 애간장으로 바람결이 내던지는 슬픔의 답안지에 일생을 버티게 만드는 그리움 한 페이지를 남기는 철부지 예술가’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시인이 될 수 없음을 시인 했’고, ‘삶이 시답지 않아도 사람은 시답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다 이야기한다.

궁금한 분들을 위해 한 마디 더 붙이자면 저자의 직업은 교육공학과 교수이다. 100여권의 책을 출간하셨다는 저자는 <언어를 디자인하라>라는 책으로 이미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를 갖고 계신 분이다. 그런 저자가 쓴 시는 어땠냐고?

재미있다!

‘언어유희’라 해서 말놀이라고 쉽게 이해하면 되는 용어가 있다. 말장난이라기엔 너무 가볍고, ‘말이나 동음이의어를 해학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방법’이라 정의 내려본다. 조금 전 책날개의 소개 글에서도 느꼈듯 ‘슬픔의 답안지’나 ‘그리움 한 페이지’와 같이 하려는 말의 의미를 전달하는 표현에서 시적(이라고 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시를 잘 모르기 때문에) 감성을 당겨와 읽는 이로 하여금 어떤 리듬 속에 들어가 단어와 춤출 수 있게 해준다.

세 시간째 한 문장도 못 쓰고
정적이 감도는 백지 위에서
주어를 찾아 헤매다가 목적어를 먼저 만났지만
아직도 동사를 찾아가는 고행을 끊지 못하고
언어 구름 속에서 끝없는 방황을 거듭하는
당신의 글짓기 여정은 언제 끝날 수 있을까요? 81

귀가 즐거워하는 음악과
눈이 즐거워하는 그림 사이에서
가슴은 알아듣지 못하는
머리가 생각한 한마디를 남깁니다.
마음은 벌써 그리움에 젖은
음악과 그림을 상상하며 바람을 타고 날아가지만
머리는 그 뒤를 열심히 쫓아갑니다. 168

전혀 심각하지 않게 언어가 가진 무게를 묵직하게 표현해 주고, 전혀 가볍지 않게 하려는 말의 의미를 진지한 언어로 이야기하는 시를 보며 저자가 말하는 ‘시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그려진다. 시답게 사는 그는 그럼 시인일까?

@jiinpill21

#도서지원 #유영만 #지식생태학자 #21세기북스 #책사애 #책벗뜰 #책추천 #양산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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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수록 선명해진다 - 내 안의 답을 찾아 종이 위로 꺼내는 탐험하는 글쓰기의 힘
앨리슨 존스 지음, 진정성 옮김 / 프런트페이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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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바꿀 수 있는 시간, 6분 <쓸수록 선명해진다 - 앨리슨 존스>



’탐험 쓰기‘챌린저 모집이라는 출판사 홍보 피드에 눈길이 쏠렸다. ”일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연필과 종이, 그리고 단 6분의 시간이면 충분하다“ 세상에나, 6분이라고?

작년 이맘때 새로운 도서관에서 독서회 제안이 왔다. 육아를 테마로 하긴 하는데 하나 더, 에세이 쓰기까지 같이 아우를 수 있겠냐는 주무관님의 제안에 마음이 달 떴다. 말마따나 작가도 아니고, 관련 과목 전공자도 아니고, 독서나 독서모임은 뭐 나의 히스토리를 알고 계셨다 치고 글쓰기는 전혀 다른 문제라고 생각했다. 3월 시작을 앞두고 한두 달, 마음이 조급했다. 글쓰기 관련 책들도 살피고, 부랴부랴 브런치에 작가 등록도 하고 어찌어찌 나름대로는 글을 쓰는 일을 업은 아니더라도 진심 담아 하고 있다는 형편을 어필하고 싶었다. 강의 첫날, ’30분 글쓰기‘를 제안하자 머뭇거리길 잠시, 회원들은 각자의 책상이 마치 집필실인 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앉아 각자 몰입해서 글을 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래, 이거다!

30분 글쓰기 만으로도 전에 없는 해방감을 맛본 나는 이 수업을 정말이지 오래도록 끌고 가고 싶다는 욕심이 싹텄다. 아니나 다를까, 30분 만에 뚝딱 만들어진 글은 공들여 단어를 선택하고, 고치고 다듬어 번듯하게 내미는 글과는 다른 솔직함과 생동감, 무엇보다 진심이 담뿍 묻어나는 ’살아 있는 글‘이었다. 12월 한 해 마감하는 자리에서도 회원들은 에세이 쓰기가 좋았다는 의견을 주셨다. 즉석 주제, 30분 글쓰기, 각자 글 낭독! 정말이지 별것 아닌 것 같은 글쓰기가 한 달에 한 번, 우리 안에 쌓였지만 쌓인 줄 몰랐던 진짜 이야기와 진짜 자신을 발견하는 시간이었다.

30분 만으로도 벅찼던 그 감정을 단 6분 만에? 6분이라는 시간에 대한 어떤 인지가 없었달까? 종이와 펜을 준비하라기에 책장에 아무렇게나 꽂혀 있던 크기가 제각각인 수첩을 쭉 늘어놓고 중간 크기의 수첩을 골랐다. 6분이라는 시간은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고, 그 시간에 뭔가를 적으려면 큰 노트는 필요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챌린지 첫날, 타이머를 맞추고 한 글자, 두 글자 써 내려갔다. 6분이라는 시간이 체감되지 않을 만큼 몰입해서 글을 써나갔다.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음 문장으로 고민하는 것을 깔끔하게 패스했다. 정말이지 그냥 떠오르는 단어를 주르르 쏟아냈다. 6분 후 글을 다시 읽으면 자연스럽지 못한 지점들도 있었지만 그대로 놔두었다.

열흘간, 매일 6분 동안 글을 썼다. 첫 문장은 제시된 문장이었고, 그 문장의 다음 단어를 시작으로 멈추지 않고 써 내려간 문장들은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솔직함으로 점철된 글이었다. 구애나 통제 없이, 검열과 의식 없이 그저 떠오르는 생각들을 정말이지 그냥 마구 쏟아낸 글이다. 어느 순간 불현듯, 이 작업을 왜 ’탐험 글쓰기‘라 표현했는지 알 수 있었다. 끝이나 내용을 알고 쓰는 게 아니었다. 지도를 따라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갈지 모르는 펜끝을 그저 따라가는 것.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가 아니라 나를 믿고, 나의 펜을 믿고 기꺼이 여정을 따라가 주는 일이다. 6분 동안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6분 전의 나는 분명히 바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첫 문단에 썼던 슬로건이 기억나는가? ’일과 삶의 문제를 해결‘ 하고 싶다면 펜과 종이, 그리고 단 6분이라는 시간이면 충분하다던 과장된 문구를 나의 식대로 다시 정리해 본다.
’일과 삶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와 자세는 충분히 바꿀 수 있다. 다른 각도로 마주한 문제들은 6분간 거침없이 써 내려간 글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말이다.‘ 거창해 보이기도, 약파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건 적어도 나는 이 탐험 글쓰기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는 사실이다. 아직도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그대에게 자신 있게 권한다. 진짜 나와 만나고 싶은가?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해 보라. 추천한다.

@frontpage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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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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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유토피아 - 정보라



내가 인간이라서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인간이 아닌 다른 것에 이해가 필요한 지점들을 반대로 생각해 본다. 그들에게 나라는 인간은 어떤 이해를 필요로 하는가. 참나무 입장에서 인간은, 그러니까 전현옥이랑 이윤경은 그냥 ’여자 사람‘이지 않을까? 전현옥이랑 이윤경이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을 공들여 할 이유가 있을까? 매일 같이 나무를 보면서도 기껏해야 이파리의 모양 정도의 상이를 발견할 뿐 나무는 그냥, 나무였던 지난 시간들이 이 책을 통해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나무는, 내가 자기를 다른 나무와 별반 다를 게 없이 본다는 걸 알고 있을까? 그런 나무는 어떤 기분일까?

우주 밖으로 내쫓긴 인간은 인류를 재건할 수 있다고, 다시 시작하면 된다 말한다. 하지만 또 다른 인간은, 재건의 책임(은 아닐 수도 있겠다)을 가진 또 하나의 인간은 생각이 다르다. 그들의 다른 생각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누군가는 인류를 걱정하며 다음을 그려보는데 누군가는 그저 남은 저 인간을 먹을 궁리만 하는. 그럼 그 두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인간을 어떤 ’부류‘로 나눈다면 전현옥은 어느 부류고, 이윤경은 어느 부류지? (소환된 이윤경 님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

​인간이 어째서 기계가 아니냐는 물음은 기계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기보다 기계가 아니어서 안타깝다는 의미로 읽힌다. 출생과 노화를 설명해 달라는 질문에 기계가 말한다. 그건 인간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거대한 세계와 우주 속 대단한 존재인 것처럼 끝 간 데 없이 득의 양양한 인간이 실상 여기 이곳에 어떻게 존재하고, 왜 존재하는지도 모르는 미개한 존재 같다는 생각이 들이닥쳤다. 그래서 우리 인간이 그렇게까지 별 볼일이 없다고 말하는 소설인가? 아니다. 마지막 작가의 말을 읽다 보면 앞서 읽은 소설들이 주르르 미끄러져 들이닥친다. 그래서 자꾸만 ’끝‘을 이야기했구나 저자는. 그래서 끝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구의 끝에서, 변방의 끝에서, 삶의 끝에서, 마지막 세상의 끝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말하려고 한 거였구나.

아이와 마주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대뜸 묻는다. ”엄마, 유토피아가 무슨 뜻이야?“ ’좋은 사회‘라는 말을 던지고는 뭔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사전을 찾았다.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상태를 갖춘 완전한 사회‘

나에게 묻는다. 그런 사회는 어떤 사회냐고. ’모두, 다 같이, 싸우는 사회‘라고 대답해 본다. 유가족에게 부끄럽지 않다 말하는 저자의 글에서 단순한 재미를 넘어 지금 내가 마주한 디스토피아를 조금 더 진하게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모두, 여전히, 다 같이, 싸우고 있다. 368p

인간은 그렇게까지 별 볼일 없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그 싸움의 끝에 유토피아가 있다면 우린 얼마든지, 언제든지 그들과 함께 싸울 수 있다. 거창한 마무리에 조금 부담스럽긴 하지만 마지막 작가의 말에서 읽은 문장들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책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고 중간중간 빵빵 터지기도 했다. 단편은 이래야 한다는 어떤 정석을 맛본 느낌이고, 그녀가 지어나가는 SF 소설은 닥치고 봐야겠다는 결심이 선 작품이다. 독서모임으로도 안성맞춤인 소설들, 단편이라 아름다웠고, 정보라라 설득력 있었다. 무조건 강력 추천! 심심하면 정보라를 읽으세요!

@rabbithole_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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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이야기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1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빛소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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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질 이야기 - F. 스콧 피츠제럴드

연작 단편집이라는 색다른 구성이 돋보인 작품집이다. 첫 작품부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소설들을 읽어내려면 ’재즈 시대‘라는 1920년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볼 필요가 있다. 고전을 자주 접한 적이 없는 난 오래된 작품 속 배경에 무지한 경우가 많다. 무지한 채로 읽다 보면 두꺼운 책 같은 경우는 금세 지치지만 어느 정도 배경조사를 하고 시작하면 완전하진 않지만 중심을 잡고 읽어낼 수 있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유명한 작품 <위대한 개츠비>의 청소년 버전처럼 느껴진 <바질 이야기>는 ’광란의 20년대‘라 표현되는 1920년 전후, 재즈를 중심으로 펼쳐진 문화적 번성과 경제적 호황기 속에서 십 대 아이들 삶의 면면을 솔직하고도 강렬하게 꺼내놓았다.

인상적인 건 어른과의 세계에서 금을 그어놓고 마치 그들을 유린하는 것처럼, 따돌리는 것처럼 세계 속에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놓고 있다는 점이다. 십 대 초중반의 남녀 아이들임에도 그들의 나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성과 참이 밀려난 관계와 위치에서 어른의 삶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일 뿐, 그런 아이들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청소년‘의 모습은 아닌듯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떠올리면 화려한 반면 거칠고 막가는 느낌 또한 일정한 비율로 존재한다. 다듬어지지 않은 반항심이나 치기들을 포인트로 잡고 읽으니 꽤 흥미로웠다.

옮긴이의 말에서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거친 아이들, 욕망과 당장의 욕구만 있어 보였던 아이들의 모습에서 작가의 삶을 대입해 보니 어느 정도 납득되기도 했다. 출세욕과 중산층의 화려한 삶을 동경했다는 저자의 솔직한 면면들이 여러 아이들의 모습에서 잘 표현되지 않았나 싶다. 이 책 또한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고 작품을 만나면 훨씬 더 깊이 있게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빛소굴 서포터즈로 선정되어 지원받은 책이다. 표지가 돋보여 책을 펼쳐 놓은 많은 찰나들을 사진에 담기도 했다. 많은 등장인물 때문에 읽어내기가 조금 버거웠던 책이긴 하지만 적어도 저자의 글들이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앞세워지고 있는 이유가 분명한 소설들이었다. 역시, 고전은 ’시대‘를 자기만의 식으로 담아내야만 하는 것인가. 덕분에 ’광란의 20년대‘까지 함께 알아볼 수 있어 유익한 시간이기도 했다. 다음 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닉 애덤스 이야기>이다. 기대된다.

@bitso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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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문장들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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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차가운 책을 택배 봉투에서 꺼내 들자마자 여러 페이지를 펼쳐 보았다. 무심히 펼친 페이지에서 발견한 단어는 ‘기적’이었다. 나는 ‘기적’이라는 단어에 왜 꽤 많은 무게를 두고 있다. 기적, 얼마나 아름다운 단어인가. 단순히 걷지 못하는 사람이 걷거나, 수 십억의 복권에 당첨된다 해서 기적을 이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적은, 좀 더 이로워야 한다. 적어도 나에게만은.

남편은 만난 일은 기적이 아니다. 남편이 나에게 주는 사랑이 기적이다. 그 사랑이 딱히 특별할 건 없다. 흔히들 생각하는 그런 애정의 표현이나 심신의 안정, 물질적 풍요나 안전한 미래에 대한 믿음 따위가 아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자리에서도 나에게로 전해져오는 그 사람이 가진 애정이다. 그것은 어떤 말투나 눈빛, 행위가 아니다. 에너지,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로 전해온다.

이 책 <삶은 작은 것들로>를 읽는 내내 남편이 떠올랐다. 책의 한 페이지를 사진으로 찍어 ‘to. 종은’이라고 쓰고 메시를 보냈다. 그 페이지 속 문장 하나하나가 온전한 나의 마음이었고, 마지막 구절에서는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나를 사랑하는 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커다란 힘입니다’

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타인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진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이 사실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일이었고, 마땅한 생이지만 살아야 할 이유를 매 순간 찾아 헤매는 일이었다. 부모에게서도 받을 수 없었던 순수한 애정과 관심을 그 사람에게서 받았다. 부러 가져다 안겨 주는 것도 아니었고, 주고 있다 생색내지도 않았다. 그저 열린 문틈으로 보이지 않는 봄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차듯 살랑거리며 내 주위를 감싸는 애정이었다.

그런 애정을 받게 된 나는 이전의 모든 불행과 앞으로 다가올 알 수 없는 불안한 미래도 전연 두렵지 않은 무엇으로 바뀌었다. 아, 이거면 되는 거였구나. 정말 중요한 건 돈도, 직업도, 안정된 노후도, 편안한 의식주도 아닌 순수하고도 진실한 한 사람의 사랑이구나. 책을 통해 그것을 한 번 더, 제대로 확인하는 일은 내가 책을 읽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삶들을 돌아보았을 때 나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의미 있었던 것들은 무엇인지, 그것은 행복이나, 기적, 감사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아니며 늘 보고 있다 생각하는 자연의 한 조각에서도 생과 사를 보다 더 애정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그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명징하게 느껴보길 바란다. 추천한다.

@isamto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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