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영 교수의 언어감수성 수업 -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말하기의 힘
신지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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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하고 돌아와 제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 아이, 잠시 후 바지만 입고서는 러닝(속옷으로 입는) 셔츠를 들고나온다. “엄마, 반팔이 없어서 이거라도 입어야겠어.” 저만치 서서 “그래, 집에서는 그거 입어도 돼. 더운데 잘 됐네. 훨씬 시원해 보인다.˝라며 미소 지었다. 몸을 돌려 빨래를 정리하다 말고 퍼뜩 생각이 나 입을 열었다.

“그런데 지아야. 엄마가 어제 책에서 봤는데, 반팔이라고 하지 않고 반소매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응? 반소매?”
“응. 반바지도 반다리라고 하지 않고, 민소매도 민 팔이라고 하지 않는데 왜 반소매 옷은 반팔이라고 하는지 한 번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아.”

아이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반팔의 적확한 뜻은 팔이 반이라는 뜻인데 정말로 팔이 반인 사람들에게 ‘반팔’이라는 말이 불편할 수도 있다고, 누군가가 불편한 말을 굳이 쓸 이유는 없다고, 얼마든지 순화해서 바꿀 수 있는 용어들은 의식적으로 바꾸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찬찬히 설명했고 아이는 그러마라는 뉘앙스를 내비치고는 소파로 가 앉았다.

전작 <언어의 높이뛰기>를 인상적이게 읽었다. 독서모임도 진행하면서 우리가 쓰는 일상적인 용어들에 담아 내뱉었던 선량한 차별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교수님의 신작을 보자마자 서평단 신청했고, 운이 좋게도 따끈한 신작을 감사하게 읽었다. 몇 대 몇 식으로 전작이냐 신작이냐를 따진다면 나는 신작이다. 이번 신작이 특별히 좋았던 점은 바로 ‘관계’였다. 부제가 ‘관계의 거리를 좁히는 말 하기의 힘’이다. 관계로 바라보는 언어, 즉 말 하기의 문제점들과 시사점들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예리하고도 친절한 문장으로 이야기한다.

우리는 특별히 ‘말하기’를 배우지 않는다. 배우지 않아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이 바로 인간관계. 인간관계를 만들어가고 유지하는 데에 이 ‘말하기’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겠는가. 단순해 보이는 ‘호칭’문제만 봐도 쉽사리 알 수 있다.

호칭은 정해진 직책이나 위치, 성별이나 지위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용어이다. 생각보다 중요한 말임에도 무수한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입에서 나오는 대로, 혹은 (그릇된)의도를 십분 담아 상대를 부른다. 대상을 부르지만 대상이 아닌 부르는 사람의 마음이 고스란히 녹아든 호칭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아가씨, 아줌마, 언니 등 어딜 가나 여성 직원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불리는 이 호칭들은 단순해 보이지만, 혹은 친근하게까지 보이지만 호칭을 쓴 사람의 진심은 좀 더 부정적 의식이 깔려 있다. ‘간호사 언니’라고는 말하지만 남자 의사에게 ‘의사 아저씨’ 혹은 ‘의사 오빠’라고 하지 않는다. 재래시장 상인들에겐 아줌마라고 하면서 백화점 주방용품 매장 점원에게는 아줌마라고 부르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 곰곰이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적절한 호칭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을 요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 즉, 매 순간 재고하고 곱씹고, 바꿔나가는 변화의 정성이 필요하다. 책은 호칭 문제뿐 아니라 대화에서 필요한 언어 감수성을 비롯 높임말과 반말이 내포하고 있는 연령 권력과 다중을 앞에 둔 말하기에 필요한 발언권 및 소통의 목적 등 한 번쯤은 인지하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들을 세심하게 다뤘다.

어제 있었던 일이다. 기회가 닿아 가까운 곳에 텃밭을 분양받았다. 비용을 따로 낸 건 아니고 지인의 공동체가 운영하는 모임에 더부살이로 끼어 함께 하게 되었다. 아이뿐 아니라 나에게도 좋은 경험이 될 터,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며칠을 기다려 드디어 텃밭으로 가게 되었다. 농사를 해본 적 없는 나는 땅을 다지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기존 참여자분의 말에 순간 당황했다. 어느 정도 다져진, 그러니까 단순하게 가서 심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세상사 만만하게 생각한 내 잘못이다. 밭으로 가보니 돌과 나무뿌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땅을 일일이 골라내고 다져 모종을 심을 수 있게 처음부터 모든 걸 다 해야 할 터, 순간 당황했지만 나름 깡다구 있는 성향이라 주저 없이 호미를 들고 작업에 착수했다. 잠시 뒤 기존 참여자분이 ‘아빠’를 찾는다. 보통 처음에는 아빠들이 와서 땅을 다지고, 힘쓰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끝을 흐리긴 했지만 “아빠는 그럼….” 안 오냐는 말을 흐릿하게 줄이셨다. 순간, 기분이 묘했다.

아니나 다를까 땅을 골라내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고 고됐다. 아이들은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물을 먹으라 이르지 않았는데도 저희들이 알아서 물통을 연신 기울였다. 뜨거운 태양빛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파며 크고 작은 돌들을 꺼내는 일은 힘들었다. 순간 함께 간 친구가 말한다. “와, 이거 진짜 애들 아빠가 있어야겠다” 엄마가 말을 하니 아이들도 주르르 “그래그래, 아빠가 와야겠어.”라고 맞장구를 친다. 그 순간 뭔가 부당하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지 않고 말했다. “아빠가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아빠 없는 아이들은 이런 것도 못해? 아빠가 무슨 상관이야.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돼.” 물론 친구가 어떤 저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가하는 일. 그렇게 스며든 언어 차별에 대해 한 번 더 재고해 볼 일이다.

아빠를 찾는 이유는 단순했다. 힘을 쓰는 일이었다. 힘을 쓰는 일은 엄마든, 아빠든, 삼촌이든, 이 모든 전연 상관없는 일이다. 어른의 힘이 필요한 거면 어른이라고 표현했으면 될 일이다. 아무 인식 없이 ‘아빠’의 존재를 텃밭을 꾸리는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참여자 분과 친구에게 그렇게라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 아빠 대신 부모님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고, 부모님보다는 보호자라는 말을 쓰는 것이 어쩌면 더 중립적이라고 그렇게 무수히 이야기 나누지 않았나. 어떤 말에 누군가가 소외받고 고통스럽다면 다수는 그 말을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없다. 모두에게 중립적이고도 안전한 말들이 차고 넘치는데 의식하기를 멈추고 기존에 알던 것들에 함몰되어 소수를 만들고, 가두고, 공격한다면 그건 반드시 고쳐야 할 언어 습관이다.

미처 느끼지 못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오늘 하루 자신이 내뱉은 말들에 대해 생각해 보길 바란다. 나의 말에 누군가가 불편하진 않았는지, 내가 쓰는 말들에 일방적이거나 이기적인 가치관이 숨어 있진 않는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내재되지 않는다. 언어는 끊임없이 자아를 성찰하는 것에서 변화를 꾀하고, 변화하려는 나의 의지만이 낡고 불편한 관습에서 진보할 수 있다.

#도서지원 #책벗뜰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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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사우루스 그림책이 참 좋아 107
노인경 지음 / 책읽는곰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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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사우루스 - 노인경

여기 어떤 말을 해도 ‘아니’라고 대답하는 아니 사우루스가 있어요. 막상 나의 아이가 이러면 미치고 팔딱 뛸 노릇이겠지만 그림으로 들여다보는 아니 사우루스의 대답들은 정말이지 기발하고 또 기특하게 느껴집니다. 아이들은 부정어를 먼저 습득한다고 하더라고요. 아니야! 안돼! 안할거야!!! 그렇게 부정하는 저항 속에서 스스로의 생각길을 만들어 간다는 의견에 십분 공감하지요.

아니 사우루스는 폭발한 엄마를 피해 사막 한가운데로 나갑니다. 우연히 마주한 커다란 이불, 그 이불을 쉬이 지나치지 못한 아니 사우루스는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번뜩이는 생각들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지요? 그 이불 속으로 하나 둘 공룡들이 모여듭니다. 거대한 티라노 사우루스가 나타났다고 호들갑을 떨지요. 두려운 대상이 다가올 때 보이는 흔한 반응들에도 아니 사우루스는 이야기 합니다. “우리한텐 뿔도 있고, 긴 목도 있고, 날개도 있고, 커다란 이불도 있잖아. 무엇보다도 우리는 겁쟁이가 아니잖아!”

어떠한 현상 앞에서도 쉽게 무너지거나 겁먹지 않는 아니 사우루스. 공룡들은 어느새 아니 사우루스 곁으로 모여 들어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나누고 곧 티라노 사우루스를 맞닥뜨립니다. 숨기에 급급했던 커다란 이불을 이용해 티라노 사우루스를 물리친 아니 사우루스. 엄마에게 돌아가 공룡들에게 받은 바나나를 전해 줍니다. 엉뚱하고 말썽꾸러기 같았던 아니 사우루스는 그렇게 자신만의 경험을 펼치며 스스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생각납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듣는거야! 아휴 내가 못살아!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정말 내가 말하는대로만 움직이고 살아가는 아이가 정녕 온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지를. 자신만의 세계를 스스로 만들어가는 아이에게서 느껴지는 그 올곧음과 단단함을 우리 어른들이 조금은 너른 시선으로 감싸주고 받아주기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가 다가 아니기에 어쩌면 이제 막 세상으로 발을 디딘 아이들이 전해주는 조금은 생경한 그 세계가 실로 더 나은 것들을 한뼘 더 당겨와 줄지도 모를 일입니다.

@bearbooks_publis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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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가 어디 갔지?
마이크 큐라토 지음, 신수진 옮김 / 비룡소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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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가 어디 갔지? - 마이크 큐라토 / 신수진 옮김



타이니의 생일 파티에 초대된 비나, 입구에서 빼꼼 안을 들여다보니 왁자지껄 파티가 열렸어요. 시커먼 벽에 몸을 숨긴 비나. 자그마한 타이니가 문 가까이 다가와 이야기합니다. "비나야, 여기 있니?"

전등 갓을 쓰고 있는 비나, 분명 비나인데 비나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게 비나는 전등이 되었다가, 탁자가 되었다가, 나무가 되기도 하지요.



비나가 보고 싶은 타이니는 소파가 된 비나에 기대앉아 읊조립니다. "내 친구 비나는 어디 갔을까? 보고 싶은데."

종이봉투를 뒤집어쓰고 앉은 비나에게 타이니는 괜찮냐고 묻습니다. 괜찮다고 말하는 비나, 하지만 괜찮지 않은 비나가 걱정되어 종이봉투를 슬쩍 들어 올리자 비나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나 있잖아, 사실 파티 안 좋아해."



이 그림책의 백미()는 타이니의 반응입니다. 파티의 주인공인 타이니는 비나의 부재를 모른척하지 않습니다. 타이니를 따라가며 각기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비나에게 계속해서 묻지요. 비나가 어디 갔지? 비나야 너 여기 있었니? 비나인 걸 알면서 "너 비나잖아! 왜 이러고 있어?"라고 묻지 않는 거예요. 저는 그게 너무 예뻐요. 대부분, 사람들은 '왜'라고 묻기 쉽거든요. 너 왜 그러는 거야? 왜 인사를 안 하는 거야? 왜 말을 안 하는 거야? 왜 가기 싫은 거야???



저도 그랬어요. 예민하고 소극적인 아이 걱정이 많았지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말을 잘 할 줄 몰라서 사는 동안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이 많았거든요. 버스 안에서 어떤 아저씨가 저의 허벅지에 손을 올리는데도 저는 아무런 말을 못 했어요. 분명히 돈을 냈는데 끝까지 돈을 안 받았다고 우기는 문방구 아저씨의 언성에 몸을 부르르 떨면서 다시 돈을 내고서 문방구를 나오며 억울하다기 보다 무서워서 울었던... 그래서 이 아이도 그렇게 소심한 사람이 될까 봐 더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가 세 돌이 될 무렵, 저는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저라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아이 본인은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은 이유는 바로 제 문제더라고요. 이후 아이가 걱정되는 순간마다 속으로 되뇝니다. 믿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지난 나와는 관계없이 스스로가 잘 지켜 나갈 것이라고. 그 믿음을 주는 것이 부모로서의 나의 역할이라고.



파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비나의 말에 타이니가 물어요. "그런데 왜 왔어?"

비나가 대답하지요. "네가 좋으니까"



이 대화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던져 줍니다. 싫으면 안 오면 되지, 이럴 거면 왜 왔어? 단순하게만 접근하면, 힘들면 안 오면 되지라고 생각하기 쉬워요. 근데 비나의 대답을 한번 봐요. 좋다잖아요. 좋은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거니까요. 좋은 마음과 불편한 마음에 갈등했을 비나의 마음이 측은하기도 하고 또 기특하기도 했어요.



외향적인 사람들은 긍정적으로 평가되고, 반대로 내향적인 사람들은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로 폄하되기 쉽습니다. 근래 내외향은 인간 고유의 성정일 뿐 좋다 나쁘다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보편적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실상, 직접적으로 반응할 때는 호불호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인사를 큰 소리로 한다거나 관계에 있어 적극적인 면모가 보이면 으레 성격이 좋다는 말로 활기찬 에너지를 긍정적으로 바라보지요. 반대로 행동거지가 적고, 말이 없고, 목소리가 작으면 저렇게 해서 어떡하지?라며 걱정을 합니다. 언변과 행동거지와 표현 방법은 80억 인간 모두 각기 다른데 몇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해 퍼센티지가 가까운 쪽으로 그것들을 규정하고, 규정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반대급 성향을 너무나도 편리하게 폄훼합니다.



분류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에요. 나눠진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예요. 자꾸 "왜?"라고 묻지 말라는 것이지요. 왜? 가 아니라 그렇구나! 가 되어야 한다고요. 주변의 비나와 같은 친구가 있다면 절~대 왜 그러냐고 묻지 마세요. 그 친구의 마음에 조금만 더 고갤 숙여 귀를 기울여 주자고요.




#도서지원 #서평단 #그림책추천 #책벗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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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원짜리 엄마 북멘토 가치동화 61
조은진 지음, 심윤정 그림 / 북멘토(도서출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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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짜리엄마
#조은진
#북멘토
#가치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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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들으면 내용이 궁금해지지 않나요? 저는 이 책의 서평단 모집 댓글에 ‘저는 얼마일까요?’라는 코멘트를 달았어요. 엄마를 책정하는 가격이라, 금액이 구체적인 것도 재미있었어요. 또 표지 속 뽀글뽀글한 머리 아줌마가 윙크하는데 아이는 사색이 되어 있잖아요. 표지만으로도 굉장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고민이 좀 되는데요. 책에 관한 내용을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또 비밀에 부쳐야 하는지. 저의 피드를 보고 나면 이후 도서관에 가셨을 때, 혹은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꼭 한번 책장을 펼쳐보세요.

요즘, 정말 많이들 바쁘잖아요. 특히나 아이 학교 일에 일거수일투족 세세하게 신경 써주는 것도, 마음을 떠나 물리적으로 빠듯합니다. 꼭 직장 때문만은 아니고요. 한꺼번에 여러 일이 닥쳐오면 선택과 집중에서 우선이 아닌 차선이 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더군다나 미리미리 알려오지 않으면 더 힘들고요. 여기 지호라는 남자아이가 있어요. 이제 11살인데, 벌써 길에서 엄마와 잡는 손이 부끄럽다고 하더라고요. 그만큼 섬세하고 또 예민할 수 있는 나이고요. 엄마를 대신에 학교에 오게 될 사람을 직접 구인하는 과정들을 보면서 저는 11살이라는 나이가 어리게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2만 원짜리 엄마는,
언제고 자신의 아이를 바쁘다는 핑계로 내버려 둔,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나의 소홀함이나 아이에 대한 애정이 적어서 일어난 일이 아님을. 그 순간 속에 갇혀,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얼룩져 있는 엄마들을 대변해 줍니다.

(이 책은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방으로 가져갔어요. 책상에 올려놓고 오랫동안 봤어요. 자기 나름 플래그도 붙였더라고요. 플래그를 붙인 장면을 한 번씩 더 들여다보았어요. 우리 아이가 어떤 장면들을 재미있어 하나, 그 장면에 왜 표시를 남겼나 하고요. 플래그가 붙여진 장면들에서 저는 또 저만의 서사를 만들어 나갑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바쁜 시간 속에서도 아이를 사랑하는 그 마음, 그 본마음을 아이들에게 가감 없이 표현해 주세요. 지극히 엄마의 시선으로 좇아간 책 <2만 원짜리 엄마>는 제가 얼마냐의 궁금증에서 바쁜 엄마라 미안했던 그간의 죄책감들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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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 - 데일 카네기 에센스 DALE CARNEGIE ESSENCE
김범준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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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있었던 일이다. 나이 지긋한 중년의 여성분은 나의 친정엄마와 비슷한 연배다. 우리 독서모임 뿐 아니라 다른 모임도 활발하게 하고 계신다. 그날은 화이트 진에 자주색 단추가 달린 청자켓을 입고, 단추와 같은 색의 모자를 쓰고 오셨다. 옷차림과 나이는 하등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의식으로는 하지만, 이따금 이렇게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도 화이트 진을 입고 오시는 어르신을 마주할 때면 외모로 사람을 판단치 말라는 말에 살짝 삐대고 싶어진다.

아무튼, 그 분이 다른 영어스터디 모임에서 있었던 일화라며 잠시 10분 정도만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수 있냐기에 그러시라고 했다. 이야기의 요는, 자신이 새로 들어간 영어 모임에서 자신이 들어가기전까지 가장 나이가 많았던 한 여성분이 자신에게 치욕적이고도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은걸 시작으로, 그분의 교활하고 무식한 처사에 대한 일종의 한탄이었다. 교활한 상대가 모임원들에게 뱀같은 혀를 놀리니 당할 재간이 없으며, 남들에겐 보이지 않는 미물스런 행동을 자신의 앞에서만 하는 것이 너무나도 혐오스럽다는 것이었다.

석 달간 어찌어찌 모임에 나가고 있지만 더이상 자신의 감정을 내버려두지 못하겠어서 그 모임에서 나와얄것 같은데 이렇게 나오자니 스스로에게 너무 화가 난다고 했다. 마치 자신이 도망치는 것 같다고, 억울하다고. 이야기 사이 사이 함께 듣고 있던 참여자들이 한마디씩 했다. 이상한 사람이예요. 그런 사람은 그냥 피하는게 상책이예요. 정말 예의가 없는 사람이군요. 그 모임에서 빠지세요. 그렇게 감정소모 하는게 더 시간 아까워요 등등

이 책 <오후에는 적보다 친구가 필요하다>를 읽는데 그날의 그 중년여성분의 떨리는 음성과 파르르 거리며 상대방을 흉내내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그 분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자신의 열등함을 상대방에 대한 질투로서 표출하는 것이죠. 가여운 건 결국 질투하는 사람입니다. 자격지심을 표출하는 것 뿐이니까요. 혹시 누군가의 비난을 받았습니까? 당신을 비난이라는 무기로 걷어찬 사람은 '고작' 그것으로 자신이 잘났다는 느낌을 누리려는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49' 이어서 이야기 합니다. '쇼펜 하우어는 "평범한 사람은 위인의 결점이나 어리석은 행동에 대단한 기쁨을 느낀다."' 라고.

대부분의 인간관계는 원활하기보다는 삐걱이기가 쉽다.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타자', '타인'이기 때문이다. 내가 아닌 타인의 마음과 생각과 방식과 태도를 무슨수로 이해하고 조절하고, 만들어가냐는 것이다. 내가 아닌 타인과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필요한 것이 바로 '기술'이다. 책은 그 기술의 대가라 일컫는 '데일 카네기'의 메세지를 임펙트 있게 전달하며 본인이 직접 '데일 카네기 코스'를 수료하며 배우고 느낀 것들을 말 그대로 정수, 정곡으로 이야기 한다. 관계맺기는 관계성 안에서 원인이나 방법을 찾기 마련인데 책은 그 속의 '나'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한다. 상대방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대답이 '네'가 되게 하라는 조언은 낯설기도 하지만 몇몇의 상황에 대입시켜 보며 꽤 그럴듯해 보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라'였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무수한 독서모임을 하면서 또,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 나름대로 신경쓰는 부분이 이름이다.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렇게 이름을 기억해주는 일의 중요성을 진즉 깨달은 바, 이름이 불리는 것이 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책의 마지막 챕터는 '논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다. '논쟁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논쟁을 피하는 것이다.231' 논쟁에서 이기는 최고의 방법이 피하라는 것이라니! 이어서 카네기의 말을 옮긴다. "방울뱀이 앞에 나타났다. 싸울 것인가? 지진이 닥쳐온다고 한다. 그것과 대치할 것인가? 논쟁도 마찬가지다. 그냥 피하면 된다." 그 날, 떨리는 목소리를 부여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씀하셨던 여성분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당장 너의 말이 틀렸음을 조목 조목 따져 가는 과정은 순간은 이겼다는 고무감에 기분이 좋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에게 준 열등감은, 구겨진 자존심은 결국 당신에 대한 혐오만 남길 뿐이다.



#서가명강

#도서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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