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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실비아 플라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8월
평점 :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 - 실비아 플라스
결과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는 일들이 있다. 한편으로는 결과로 인해 본래의 의미가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또 결과에 덮이고 만 원인 따윈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경우도 있다. 모든 죽음은 저마다의 이유가 있고, 사연이 있기 마련인데 유독 ‘자살’이라는 죽음은 사후 제각기 해석되고 소비되고 평가된다.
실비아 플라스는 오래전, 그러니까 20대 초반 ‘버지니아 울프’의 책 <자기만의 방>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요절한 여성 작가 중 곧잘 거론되는 몇몇의 작가들 중 한 명이었다. 생각해 보면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기에 그녀를 안다, 모른다 명백히 말하기도 어렵다. 이름만 아는 것도 아는 걸까? 그녀의 죽음을 안다고 해서 그녀에 대해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연히 필사 톡 방에서 만난 전혜린 님 이름 석 자에 오래전 그맘때 나의 문학적 감성을 훑던 무수한 이름들이 떠올랐고 곧이어 마주한 실비아 플라스는 마치 수순처럼 나의 품에 안겼다. 알지도 못하는 작가를 안다고 착각했던 건 단순한 이유였다. 바로 그녀의 죽음, 자살의 방식이었다.
좋은 기회라 생각하고 그녀가 그렇게 죽음을 ‘선택’한 것에 조금이라도 다가서 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십 대 후반 이제 막 성에 눈을 뜨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 또는 휘몰아치는 격정과 격변에 대한 그녀의 일기는 이것이 왜 읽힐 수 있는 책으로 탄생했는지 능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시인으로 명성을 떨친 그녀답게 일기에서 보이는 그녀의 시선과 감성은 제아무리 하찮고, 별 볼일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을지언정 그것이 결코 당시의 그녀에게는 가볍지 않다는 감정을 십분 느낄 수 있었다.
두꺼운 책 (700p)이라 아직 완독하지는 못했지만 그녀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남편 테드 휴스와의 결혼 생활, 그녀의 작품 활동까지 다루고 있다. 한 사람의 일기가 문학이 될 수 있는 건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가진 천부적인 문학적 소질이 그녀가 끄적인 글 속에 축축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자신 그 자체를 작품화 시킨 데에 한몫한 그녀의 죽음은 결과론적으로 접했을 때뿐 아니라 그녀의 삶 자체에서 그녀의 삶이 작가 또는 작품으로의 삶이었다는 것을 명징하게 그려준다.
아니 에르노도 그랬지만 이 일기 속 실비아 플라스는 인간 그 자체였고, 하나의 인간이 하나의 작품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책을 좋아하고 작가를 동경하는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농밀한 시간이었다.
글을 쓸 수 있을까요? 습작을 열심히 하면 글을 쓰게 될까요? 쓸 만한 작가가 될 재목인지 알아보기 전에, 일단 얼마나 많은 걸 글쓰기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걸까요? 그 무엇보다도,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시기심 덩어리에 상상력도 없는 여자가 빌어먹을 가치가 있는 글 한 줄이나 써낼 수 있을까요? 98
@moonye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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