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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한 법의학자가 수천의 인생을 마주하며 깨달은 삶의 철학
이호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12월
평점 :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한 죽음 수업 - 이호
꼬박 1살 생일이 된 아이가 나의 눈앞에서 숨을 멈췄다. 비출산주의였던 내가 결혼 6년 만에 느닷없이 아이를 맞았다. 출산 이후의 변화들은 ‘엄마’라는 타이틀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혼돈이었고, 폭력이었다. 손가락이 6개인 아이를 처음 만난 장소는 조리원 신생아실이었다. 새하얀 속싸개에 송이버섯 같은 모양으로 둘러싸인 아이의 얼굴을 처음 봤을 땐, 뭐랄까. 영상을 보듯 그저 ‘재미난’ 장면에 불과했다. 그것도 잠시 속싸개를 풀어 아이의 손가락을 보여주는 직원분의 걱정스러운 표정에는 아랑곳없이 그저 해사한 미소를 날리며 그제야 이 아이가 나의 아이임을 온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모성’같은 단어는 애초에 사라져야 할 단어라 치부했었고, 육아라는 것 또한 영어를 배우듯, 수학을 배우듯 그저 그렇게 배워나가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나름대로, 잘 키웠다. 그런 아이가 태어난 지 꼬박 1년이 된 날 숨을 멈췄고, 그런 아이를 부둥켜안고 짐승처럼 울부짖은 그날 이후 나의 삶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온도와 각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번 숨이 끊긴 아이가 다시 끊기지 말란 법이 없지 않은가. 지금도, 여전히. 열 살이 다 되어가는 아이가 잠이 들면 코끝에 손가락을 슬며시 갖다 댄다. 아이가 다시 내 앞에서 숨을 끊는다면 나는, 결코 살아질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과 그 모든 일은 나의 부주의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에 여전히 나는 매일 밤 눈물짓고 몸부림친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이호 법의학자님의 말씀을 듣는데 새삼 삶과 죽음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온도로 다가온다. 유퀴즈에 나온 이호 저자님의 방송을 보고는 화면을 캡처해두기도 했다. 살아 있는 게 기적 같은 세상이라고, 당장 내일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라고.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터부시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는 지금을 온전히 상기하며 살기 바란다는 법의학자의 말은 나의 마음에 커다란 포말을 일으켰다.
책의 서문에서도 인용된 <명상록>의 한 구절은 “우리가 보는 것들은 모두가 죽어가는 것들이다”이다. 7월부터 꾸준히 읽고 필사하는 책이 <명상록>이다. 애초에 그 책을 펼칠 때의 내 마음이 딱 그런 마음이었다. 시각 왜곡 증상을 호소하는 아이를 대학병원에 데리고 가 뇌파검사와 엠알아이 검사를 진행하며 멘탈이 많이 흔들렸다. 그때처럼, 다시 그때처럼 아이가 내 앞에서 숨을 끊는 일이 생기면 나는 어떻게 하나. 무섭고 두렵다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정말이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숨 막힘에 실제 숨쉬기가 어려워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명상록 필사, 거짓말처럼 저런 문구를 매일 같이 읽으며 시나브로 죽음을 삶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책은 참사나 재난, 사고와 범죄 같은 상황에서 죽은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할 것들을 기본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저자의 철학적 시선이 다분히 담긴 이 책은 단순한 법의학자의 이야기로만 읽히지는 않는다. 부탁하건대 모든 사람이 필수로 읽었으면 좋겠다. 죽음을 매일 같이 보고 다루는 저자의 메시지는 단순히 법의학적 죽음만을 떠올리지 않는다. 죽은 자들의 서사 속에서 살아있는 자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 한강 작가님의 말씀처럼 죽은 자와 산자와의 공생을 이 책을 통해 명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죽은 자들이 산자를 도울 수 있고, 산자들이 죽은 자를 도울 수 있다. 분명히 그럴 수 있다.
얼마 전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지금 내가 생각하는 죽음에 대해 그간 갈고닦은 다짐들을 이야기하니 대뜸 맞은편에 앉은 지인이 “나는 싫다. 나는 안된다. 나는 절대로 못 받아들인다!”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에 앞서 내가 한 말은 이런 말이었다. “나는 지아가 죽는다고 해도, 이제는 괜찮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절대로 내 아이는 죽으면 안 돼가 아니라 죽어도 나는 괜찮아로 선회하니 견디기가 수월해졌어요. 죽음을 터부시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 내일 죽어도 아이에게 미안하지 않게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고 있어요. 우리는 모두,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정말이지 비루한 존재니까요. 영원한 건 없어요. 영원하길 바랄 게 아니라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연습이, 우리에게는 필요한 거지요.”
기회가 된다면 이 책은 꼭 한번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특히나 지금, 이 순간 지난주 일어났던 무안 참사에서 우리가 배우고 느끼고 바꿔나가야 하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느끼고 싶다고 지금 당장 이 책을 읽어보길 강력하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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