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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보이지 않아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인지노동'의 불평등
앨리슨 데이밍거 지음, 전경훈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7월
평점 :
머릿속 노동은 누가 하는가 - 앨리슨 데이밍거
아이와 곧잘 둘이서 여행을 떠난다. 거창할 것 없이 조촐한 짐을 꾸리고 이동 차편을 알아보고, 숙소나 여행지의 가볼 만한 곳을 찾아 캡처 해둔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자잘하게 챙길 것이 많아 번거로웠는데 어느 정도 커서 기관 생활을 시작할 무렵부터는 많은 짐이 필요하지 않아 훨씬 가뿐해졌다. 짧게는 1박, 길게는 4~5박에서 1주일까지. 여행을 즐겨 하지 않는 나에게 그 시간은 육아의 한 갈래로 치부하기에 마냥 즐겁기만 한 건 아니다. 그것도 홀로 아이를 데리고 몇 날 며칠씩 분기별로 다니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박이건 7박이건, 여행을 다녀오면 남편은 으레 묻곤 한다. “재미있었어?” 여행의 의미를 ‘재미’로만 수렴하는 처사가 못내 무성의해 실망스럽다. 몇 번 퉁박을 주기도 했다. “재미도 있었지만 딱 그만큼 힘들고 버거웠어.” 남편의 눈이 금세 말똥해진다. “힘든데 왜 가?” 좋으면 하고, 싫으면 하지 마 이론은 육아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는 걸 남편은 모른다. 아니, 많은 사람이 모른다.
남편에게 무엇이 힘들었는지를 이야기하려는데 자꾸 브레이크가 걸린다. 그것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몰라 잠시 주춤한다. 대부분의 이유가 바로 내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집안의 쓰레기와 냉장고 속 식재료들의 컨디션을 살펴야 하고, 내가 없는 동안 생활해야 하는 남편의 편의를 염두에 둔다. 여행길에 오르면 아이의 안전에서부터 식사의 종류, 짐을 이동하는 방법에서 스케줄 관리까지. 그나마 비용의 자유가 주어졌을 때는 조금 덜하지만 그 부분까지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 올레길을 걷고 있어도 아이가 얼마큼 더 이동할 수 있을지 살피고, 물이며 음료가 넉넉한지 수시로 체크해야 하고, 무엇보다 이 일정 이후 방문할 식당과 이동 거릴 계산하느라 머릿속은 분주하다.
그런 과정을 수날에 걸쳐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면 끝이 나야 하지만 머릿속까지 쉴 수는 없다. 편안한 마음도 잠시, 일정을 체크하고 일상으로 복귀하기 위한 자잘한 부분들에 다시 또 머릿속이 움직인다. 이것이 ‘노동’이라는 생각을 여태 하지 못했다. 그저 생각이 많다고, 걱정이 많다고 스스로의 성향이라 치부하며 편한 게 편한 거니 대충 하자는 진심이라곤 1도 없는 무심한 말을 가져와 얼버무렸다. 정작 그런 인지 노동을 해 본 적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말을 가지고 말이다.
책은 부부 또는 파트너(이성, 동성)를 대상으로 가정 내 가사 노동의 정도와 분담 비율을 연구했다. 여성이 가사 노동의 비율이 높다는 전통설에 맞서 동성 부부의 가사 비율까지도 살뜰히 톺았다. 여기서 실제 육체적 가사만을 다루지 않는다. 오히려 인지적 노동에 대한 부분을 신랄하게 조명했고, 여전히 단순하게만 접근하는 여성의 가사노동을 조금 더 합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강조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간의 나의 가사 역할과 가중되는 심리적 부담감이 어떻게 파생되고 또 지속된 건지 객관적으로 톺아볼 수 있어 무척 도움 되었다. 결과적으로 내가 버거워 했던 지점은 빨래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어? 가 아니라 빨래의 양과 상태를, 세탁 세제의 양과 비치 상태를 체크해야 하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보다 더 원초적인 사실에 허덕이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하루, 아니 기한을 정해 두고 정해진 일정에 빨래를 돌려줄 사람은 구성원 중 누구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세탁 세제가 떨어졌을 때 그것을 구비하거나 세탁 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세제의 종류 또는 세탁기의 청소 상태를 걱정하고 있는 건 아마도 이 집에서 나뿐이리라.
여성의 노동, 특히나 가사에 따른 일련의 노동을 단순한 육체적 시간과 강도로만 따질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쉼 없이 여성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복잡다단한 인지 노동에 어느 정도 여지를 주어야 한다. 여성이라서 타고난 돌봄디엔에이가 아니다. 그것을 미끼로 단 한순간도 쉴 수 없는 여성의 머릿속 시지프스를 이제는 더 이상 경시하면 안 된다. 바라건대 여성인 우리가 그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고 또 인정하는 일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다 더 명징하고 또 효율적인 작업 분배에 앞서 그간의 여성의 가사 노동이 얼마나 축소되고 있었는지를 먼저 상기하자. 이 책이 그런 변화의 단초를 마련해 주었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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