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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 숲속의 현자가 전하는 마지막 인생 수업 ㅣ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토마스 산체스 그림, 박미경 옮김 / 다산초당 / 2022년 4월
평점 :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의 품
책을 읽으며 필사를 할 요량으로 노트를 폈다. 날짜를 쓰고 책 제목을 ‘내가 틀렸습니다’라고 썼다. 그렇게 썼다는 것도 몰랐다. 몇 구절 쓰다가 무심히 다시 제목을 읽는데 뭔가 이상했다. 책을 덮고 표지를 봤다. ‘틀렸다’와 ‘틀릴 수도 있다’는 비슷한 말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반대되는 말이었다.
최근, 전에 없이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일어 심란하다. 이런 일이야 살아오는 동안 이번 한 번뿐이었을까. 학창 시절을 비롯, 직장 생활이나 심지어 오래된 친구와의 사이에서도 곧잘 나를 건져 올려 들여다봐야 하는 순간이 많았다. 익숙한 방법, 모든 일의 원인을 상대에게 두기 보다 내 안에서 찾는 방법. 심리학 서적을 읽지 않아도, 철학을 배우거나 좋은 강의를 듣지 않아도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다. 세상만사 모든 일은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을.
사랑이 끝난 연인이라면 끝난 사랑을 잘 묻으면 그만이지만 대부분 끝이랄 게 없는 관계 속에서 끝을 받아들어거나 말하거나 정리해야 한다는 게 몹시도 불편했던 것이다. 잘 지내볼 수 없을까? 내가 좀 더 현명하게 행동하면 안 될까? 이전처럼, 그 빌어먹을 이전처럼 이 자꾸만 발목을 잡아 안 그래도 작은 나를 더욱더 납작하게 눌러댔다.
다행인 건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부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비단 아이 하나뿐이겠냐마는 완벽한 타인인 상대의 마음까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온전히 배웠다. 책 모임을 하면서 함께 읽고 나눈 많은 말속에서도 같은 맥락으로 이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것(사실 새롭다기 보다 원래부터 그랬지만 이전에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에 가깝다) 들을 하나 둘 발견했다. 책 속에서 내가 발견한 세상은 딱 하나다. 모든 것은 쉽게 나누어질 수 없다는 것.
그게 무엇이든 절대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단순한 이분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틀리다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일조차도 무수한 기회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 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맞고, 너는 틀리다가 아니라 내가 맞을 수도 있고, 네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 너는 좋은 사람일 수도 있고, 나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 너는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사람일 수도 있지만 또 누군가에겐 추한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 그 모든 ‘~수도’에서 이전까지 내가 그렇게도 힘겨워 하던 관계 속 문제의 근원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상대가 좋은 사람이라 내가 좋아했던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도 좋은 모습이었고, 또 다른 면에서는 내가 원치 않는 모습이기도 했다. 그것의 저울을 달아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판단 하는 게 아니라 마땅한 무게로 상대에게 존재하고 있는 양면성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 주는 용기가 필요했다. 원치 않는 모습이 계속해서 이어질 때는 잠시 거리를 둬도 좋다. 자신과도 이따금 거리가 필요한데 하물며 타인과 살뜰히 붙어 지내다 보면 곪기 마련이다. 관계 속에서 이는 자연스러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의연함도 필요하다. 미움도, 시기도, 화도, 서운함도, 질투도 모두 다 ‘당연한’ 감정이니 마음 놓고 가져도 된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말은 모든 가능성을 머금은 말이다. 내가 맞을 수도, 아닐 수도, 모를 수도... 그런 모든 ‘수용’을 머금고 있는 말이다. 틀림의 반대말은 맞음이 아니다.
내가 너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말은 싫다는 말이 아니다. 네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은 네가 불필요하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수도 있다는 말이 품은 무수한 것들을 떠올려본다. 고로 나는 너를 싫어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너를 싫어한다는 말이 아니다. ‘~수도‘의 가능성, 그 가능성을 결코 속단하지 말기를. 우린 모두, 각각의 단면으로는 완전하게 좋은 사람일 수 없다는 걸 언제고 받아들이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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