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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에 반하여 ㅣ 수전 손택 더 텍스트
수전 손택 지음, 홍한별 옮김 / 윌북 / 2025년 12월
평점 :
입장을 갖는다는 것
언제고 우연한 서평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다. 소화하기에 부담스럽거나, 실제 따라가기가 버거운 책은 관련한 다양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 후 읽어보라는 조언이었다. 당시만 해도 고전 문학이나 역사적 배경이 유의미한 작품에는 엄두를 못 내던 빈약한 독자였기에(지금도 딱히) 조언에 힘입어 적어도 ‘시도’는 할 수 있게 되었다.
큰마음 먹고 ‘벽돌 책 깨기’라는 단체 방을 만들어 2년간 4대 벽돌책(사코총이)을 읽었고, 책을 읽는 내내 유튜브나 브런치, 블로그 등에서 책에 관한 해석과 비평, 감상과 서평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혼자서는 내용을 소화 또는 해석할 방안이 묘연했기 때문이다. 이제 와 그때의 정보들이 나이 독서에 큰 도움이 되었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게 받은 도움은 단순한 ‘정보’를 얻는 것에서 제 할 일을 끝냈고, 책을 읽은 후 나에게 남은 건 정보가 아닌 ‘순수한’ 질문이었기에 결과적으로 도움은 되었겠으니 유의미한 도움은 아니었다고 판단해 본다.
최근 오래 참여한 글쓰기 모임을 탈퇴했다. 이유는 ‘피드백’이었다. 매주 한편의 글을 쓰고, 그 글에 관한 피드백을 온라인 화상을 통해 이야기 나누는 방식이었다. 좋은 시스템이라 처음엔 서로에게 전달하는 피드백이 무척 의미 있었고, 또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나의 글을 크로스체크해 볼 수 있어 고마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3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다 보니 참여원들의 글에서 읽을 수 있는 나만의 해석이 점점 힘을 잃어갔다. 어느 순간 형식적이거나 예의상 건네는 멘트로 점철되는 피드백 수준에 스스로가 아연실색. 누군가의 글을 피로하게 읽어낼 에너지도, 누군가 나의 글을 읽으며 나눠주는 귀한 말을 온전히 담아 들을 정성도 고갈되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상대 글에 대한 피로감보다는, 나의 글이 온전히 완성되어 있지 않다는 데서 오는 회의감과 무력감이었으리라.
누군가의 글과 작품에 나는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오는 불가피한 피로함 들을 조금은 내려놓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면 하고 싶은 말이 손톱의 거스러미처럼 불쑥 솟는다. ‘책쓰기 프로젝트’의 지원을 받아 발간된 에세이집을 읽다 말고도 언급하고 싶은 말들이 책 가름끈처럼 성가시게 매달린다. 하지만 그것들을 나는 얼마나 자유롭고도 솔직하게, 또 진정성 있게 표현할 수 있나. 이내 머릿속을 말끔히 빗질하고는 조금 전 나의 단어들이 몸속 어딘가에 속속들이 박혀 있기만을 바라게 된다.
이 책 『해석에 반하여』는 예술(문학, 영화 등)에 가하는 비대한 집단 지성에 ‘반’하는 수전 손택의 빨간 맛 에세이집이다. 수전 손택의 글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왜 이제야 읽게 되었을까? 싶을 만큼 강렬한 필력이다. 2004년 타계하셨고, 마지막까지도 반전운동에 쓸모를 다하신 분이다. 누군가, 그것도 여성이 남성들이 주류인 예술, 문학계에서 당시에 이런 말들을 쏟아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무척 인상적이다. 3부부터 언급되는 대부분의 영화나 문학작품이 생소해 온전히 내용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창작 작품을 바라보는 시각 속에 보편적 사유와 개인적 입장과 고찰을 엑기스로 짜넣어 ‘비평과 해석’이라는 요리에 십분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배울 수 있었다. 내가 보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어떠한 규제 또는 형식 없이 온전히 ‘작품’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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