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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평점 :
단 한 번의 삶 - 김영하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기대와 실망이 뱅글뱅글 돌며 함께 추는 왈츠와 닮았다. 기대가 한 발 앞으로 나오면 실망이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실망이 오른쪽으로 돌면 기대도 함께 돈다. 기대의 동작이 크면 실망의 동작도 커지고 기대의 스텝이 작으면 실망의 스텝도 작다. 큰 실망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기대하는 것이 안전하겠지만 과연 그 춤이 보기에도 좋을까? 61p
음, 그렇다. 보기에 좋을 수 없다. 최근 인간관계에서 그런 부분을 느꼈고, 이후 관계의 포인트가 달라졌다면 그 지점부터가 시작이었던 것 같다.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 늘 최선을 다한다 자족했고, 상대도 나에게 양이나 온도는 다르더라도 온당한 무언가로 되돌아 와야 한다 착각하며 기대와 실망의 왈츠를 밤새 추었다.
물리적이거나 물질적인걸 말하는 게 아니다. 김영하 작가와 같이 ’아는 사람‘이 더 불편해 웬만한 일로 신세 지기를 까무러치게 저어했고, 상부 상조, 이심 전심, 동고 동락.. 이딴 사자 성어가 인간 관계의 원흉이라 생각하며 여태 살았다. 다만, 함께 누리는 무언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에 의미와 원칙을 중시하다보니 서로가 녹여내는 행위에 진심과 허식, 거짓과 술수를 의심하게 되는 일이 잦아졌다. 내가 가치 있다 여기는 일에 누군가 소금을 뿌릴라치면 실망을 너머 절망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곤 했다.
최측근일수록 더 단호한 잦대가 세워졌다. 선을, 그 경계를 지켜내는 일에 또는 상대의 경계를 인식하는 일에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 실망 시키지 않기 위해서, 또 내가 실망하지 않기 위해서. 나중에는 바보스럽기 짝이 없이 기대를 낮추는 방법으로 이도 저도 아닌 감정만 멀건 얼굴에 둥둥 띄워 놓고 상대도 나도 어정쩡한 관계로 수습하기에 급급했다.
모르지 않았다. 몰랐다면 이런 고민이나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 김영하 작가의 ’왈츠론‘을 읽으며 주변 사람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기대 하지 않음으로 실망하지 않겠다는 멍청한 생각으로 응당 마음은 편했으려나. 내 마음은 편했을지언정 우리 사이의 그 몸짓, 발짓들은 참으로 볼품 없었겠다 싶다.
비루하고 볼썽 사납고, 치사하고 오만한 나도 사랑해 마지 않았다. ’니네들이 뭔데 날 판단해?‘ 쎈 언니 제시가 아니어도 내 마음 속에 비상조명등처럼 켜놓고 산 말이다. 오직 나로서 존재하고 그 존재의 당위는 타인의 평가나 잣대로 바뀔 수 없다는 지조를 굳건히 탑재해 두고 신념 삼아 여기까지 왔다. 배척하고, 오해하고, 욕하고 깎아내리는 이 왜 없었을까. 지척에 나를 애정하는 한 두 명만 있어도 전연 무섭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기를, 그 한 두명에게 나는 어떤 지척이었으려나.
그 한 두명과 함께 춘 왈츠는 보기 좋았으려나. 기대와 실망을 골고루 먹고 환대와 희망을 노래했어야 했는데 여전히 아둔하고 치사한 나는 그러지 못했다. 늦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춤을 춰보고 싶다. 기대도 한껏하고 실망도 한껏하면서 손 잡은 그 순간은 서로의 정열과 환희를 담뿍 담아 멋드러진 왈츠를 밤새 춰보고 싶어졌다. 늦지 않았다면.
@bokbokseoga_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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