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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삶의 장면마다 발견하는 순우리말 목록
신효원 지음 / 생각지도 / 2025년 10월
평점 :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 신효원
#도서지원 #출판사제공도서
@thmap_books
서른아홉에 노안 판정을 받았다. 스물여섯부터 새치 염색을 꼬박꼬박 했으니 이른 노화 증상은 놀라웠던 건 아니었다. 알면서도 하루아침에 달걀말이 테두리 경계가 흐려져 젓가락으로 툭툭 찔러 보던 순간은 생각보다 더 암울하고 절망스러웠다.
이전과 다른 시야를 받아들이는 데에 꽤 많은 내려놓음이 필요했다. 지금에 와 우스운 건 그때 그 흐려졌던 테두리가 이제는 아예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더 안 좋아졌다는 사실. 요즘 드는 생각에 딱 그때로만 돌아가도 소원이 없겠다 싶다.
늙는다는 건 그런 거겠지. 딱 3년 전, 딱 1년 전만 돼도 소원 없겠다 싶은 게 늙음이겠지. 그마저도 내 삶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려 부단히 애쓰지만 4번째 돋보기안경도 흐려진 지금 나는 무엇을 더 보고, 무엇을 더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뜬금없이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그런다. 아름다운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는 기쁨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아름다움을 전면에 내걸고 보란 듯이 나타나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늘 있었지만 한 번도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던 그 하찮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이 더할 나위 없이 큰 요즘, 이 책 <우리가 사랑한 단어들> 속 외계어처럼 어여쁜 단어들에 단박 마음이 기운다.
햇살 하나를 두고도 ‘해뜰참’이니, ‘갓밝이’니, ‘희붐하다’, ‘햇귀’등으로 이미 아름다움이 넘쳤던 것들에 한 번 더 짙은 아름다움을 드리운다. 해가 질 때까지를 ‘해껏’이라 한다. 양껏, 맘껏은 알았어도 해껏은 몰랐다. ‘해껏 너와 나란히 앉아 그 바다를 바라보았다.’ 혼자서 중얼거려보는 문장에 내가 아름다워하던 것들이 모두 다 튀어나온다.
한결같이 곧은 마음으로 꾸준하고 성실하게 나아가는 자세를 뜻하는 말, ‘지멸있다’, 이런 태도를 뜻하는 ‘지며리’를 앞으로 끈덕지게 써볼 생각이다. 어떤 일에 억지로 애쓰는 마음을 ‘굴침스럽다’고 한다. 이제 막 알게 된 단어 하나에 지난 내 삶 속의 굴침스러웠던 장면들이 떠올라 잠시 찡해졌다.
언어는 곧 세계다. 그 말을 들은 이후 내 삶을 채워가는 단어들이 어느 때보다 의미 있어진 지금, 내가 만난 이 사랑스럽고 다정한 언어들로 아름다움에 좀 더 다가가 보기로 한다. 언제고 정말로 눈이 보이지 않는 순간이 와도 그간 까서 먹은 아름다운 단어들로 남은 시간 광활한 꿈을 꿀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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