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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문 수록,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ㅣ 문지 에크리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4월
평점 :
빛과 실 - 한강
오전 8시와 오후 5시의 빛을 좋아한다. 빛이 주는 그 특유의 따스함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지 않는 특별한 온기와 색채를 띤다. 조명 기구나 전구 따위로 표현할 수 없는 에너지를 지닌 빛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시각이 바로 그 시각이다.
한때, 오전과 오후 그 빛을 쫓아 춤을 추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티브이 뒤편 창문처럼 드리워진 도화지 크기의 햇살을 카메라에 담았고, 커튼이 쳐진 창살 아래 물결처럼 구불거리는 햇살 경계선에 발가락 끝을 갖다 대며 미소 짓기도 했다.
마음이 적적한 때, 빛과 노니는 시간은 그 즈음 내게 허락된 유일하고도 유한한 평온이었다. 어떤 시기에 만나는 빛과 햇살은 생의 장면을 환히 밝혀주기도 한다. 4평 남짓한 마당에 심은 그녀의 식물과 그 식물을 향해 빛살을 전달하는 거울을 떠올리니 마음이 평온해졌다.
책은 그녀가 가꾸는 식물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이야기 사이사이에도 그녀는 작은 거울을 세워두었다. 시각에 따라, 시선에 따라 그 이야기들은 다른 색채와 온도로 다가온다.
오늘은 작은 거울 속에 노오란 아침햇살을 그득 모았다. 펜션 앞마당, 능선 너머의 햇살이, 아침 7시의 햇살이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처럼 직선으로 비쳐들었다. 그 날렵한 햇살이 작은 거울에 도달하니 뭉근한 주황 물감처럼 은은하게 책 주위를 감싼다.
‘소신 발언’이란 문구 뒤를 이어 ‘실망스럽다’는 소감을 밝힌 누군가의 서평을 보았다. 서평이란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단 한 줄의 문구로 이 책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그것 또한 하나의 어엿한 서평이 될 수 있다. 실망스럽다는 말이 ‘소신’을 가져야 할 수 있는 말일까, 잠시 생각하다가 기대가 있었기에 실망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그 ‘실망’이라는 말 앞에도 작은 거울을 하나 세워주고 싶었다.
7년 동안 쓴 소설이 마무리되고, 글이 담긴 usb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는 그녀의 글이 세상에 나와 누군가의 생에 햇살이 담긴 거울을 대어 주었다고. 그것을 이야기하는 그녀의 한 줄 문구들에 조금 더 기대어보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었다.(이런, 오지랖)
마지막 ‘더 살아낸 뒤’를 읽은 후 잠시 눈을 감았다. 감은 눈두덩이 위로 접촉되는 노오란 햇살이 어둠 속에서도 명징하게 느껴졌다. 이 햇살이 있는 한, 나는 하루하루를, 그 천 일 천 일을 더 살아낼 수 있겠구나. 감사하다.
@moonji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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