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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앗간 공격 ㅣ 빛소굴 세계문학전집 3
에밀 졸라 지음, 유기환 옮김 / 빛소굴 / 2025년 1월
평점 :
몰라서 더 잘 알게 된
방앗간 공격- 에밀 졸라
솔직하지 않을 이유가 없어 고백하건대 저자 에밀 졸라를 에밀 아자르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한글을 잘못 읽은 게 아니라 애초에 저자가 에밀 졸라라는 사실을 인지한 순간부터 내 안에서는 에밀 아자르라는 단어로 체화시켰다. (맞다, 로맹 가리. ‘자기 앞의 생’의 그 에밀 아자르 말이다) 이건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있다가 건너편 끝에 서 있는 사람을 발견한다. 딸아이 친구 oo 엄만 줄 알고 손을 들어 인사를 한다. 분명히 oo 엄마다. 순간 반가운 마음에 탬버린을 흔들어대듯 손을 휘젓는다. 초록색으로 불이 바뀌어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는데.... 미친 듯이 손을 흔들어댔던 oo 엄마가 아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이다. 저 사람은 누구지? 가 아니라, 젠장, 나 지금 뭐 한 거임? 그 사람과 교차되어 스치듯 지나칠 때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당혹감을 넘는다.
미친 듯이 흔들었던 손을 잘라내고 싶기도 하고 하루 온종일 아니, 일주일 치의 무안함이 일순간 봉인 해제되어 터져버린다. 무심한 듯 갈 길을 걸어가면서도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급기야 멀쩡한 시력과 현재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기에 이른다. 딱 그런 마음이다. 도대체 에밀 졸라는 누구야??
두 챕터를 읽고 나서야 뒤늦게 초록창에 검색어를 입력했다. 유일하게 익숙한 저작은 <목로주점>이다. 아, 이마저도 제목만 알고 있다. 제목만. 위키백과에 들어가 보니 꽤 유명한 프랑스 작가다. ‘자연주의’? ‘자연주의’가 뭐야? (이렇게 배우면서 읽는 거지요. 고전이 어려운 건 배경지식과 낯선 문체 때문인데 이렇게 하나씩 찾아가면서 읽어봅니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 옮긴이의 해설에서도 언급된다. 19세기 문학사에서 ‘자연주의’가 꽃을 피웠고 그 중심에 에밀 졸라의 작품이 있었다고 한다. 자연주의는 19세기 새롭게 등장한 문학 장르이다. 당시 산업 혁명과 정치적 혼란기를 맞은 프랑스는 예술과 문학에도 그것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낭만주의와 대조되며 사회적 현실과 인간행동 중심의 본성과 어두운 면을 들여다보는 문학으로 사회 다양한 층위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독자들로 하여금 현실을 다채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중심에 에밀 졸라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5편의 단편은 기존 ‘고전’이라 읽었던 소설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방앗간 공격’은 아이에게 잠자리 책으로 읽어주었는데 아이가 너무 무섭다며 그만 읽기를 몇 번이나 청했을 정도로 생생하고도 흥미로웠다.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과 인물들의 행동을 언급하는 문구들에서 아이는 못 듣겠다며 귀를 막았고, 마지막 도미니크가 죽음을 맞을 때에는 악몽을 꿀 것 같다며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생생했다는 뜻이 되겠다. 이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길 전쟁의 승패나 시간의 흐름이 아닌 고요한 삶에 부지불식간 던져진 광포한 상황에서 현실을 이어가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소시민들의 삶이 상황 묘사가 아닌 짤막한 대사들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나 싶다.
‘나이스 미쿨랭’같은 경우는 거의 스릴러 소설급으로 순식간에 페이지가 다 넘어간 작품이다. 아니, 140년 넘은 작품이 이렇게 쫀쫀하게 재미있다는 게 말이 되나? 이른 새벽, 바다로 나가는 미쿨랭 영감이 도련님을 바라보며 같이 가지 않겠냐 물을 때는 진심으로 소름이 돋았다. ‘아니! 따라가면 안 돼!’ ‘세상에나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또 하나 고백하건대 이 책 한 권으로 에밀 졸라를 졸라(?) 좋아하게 되었다. 번역이 한몫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어느 하나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 단편들이었다. 추천한다.
@bitso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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