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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 기울이면 빛나는 ㅣ 사과밭 문학 톡 22
로르 몽루부 지음, 도아마 그림, 김영신 옮김 / 그린애플 / 2024년 9월
평점 :
귀 기울이면 빛나는 - 로르 몽루부
나는 태어날 때부터 한쪽 다리가 짧다. 달리 말하면 한쪽 다리가 다른 다리보다 길다. 9p
하나의 세계를 깨고 나와야 한다면 그 무대가 되는 기회가 ‘여름 방학’이다. 여름방학은 단순히 더운 날의 휴식의 차원이 아닌 한 인간에게 있어 자신을 둘러싼 알을 깰 수 있는 시의적절한 시간이다. 여기 한쪽 다리가 짧은, 반대로 한쪽 다리가 긴 페넬로페라는 소녀는 입지도 않을 수영복을 새로 사준 엄마가 이해가 안 되지만 그 수영복을 챙겨 들고 시골 외숙모네에 잠시 맡겨진다.
외숙모네에 사촌들은 일전 짓궂은 장난으로 심기도 불편하거니와 그들에게 꼬투리 잡히면 죽을 때까지 놀림거리로 삼을 것 같아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고, 하나하나가 멋쩍은 것 투성이다. 다만, 늘 정성스럽게 먹을 음식들을 살뜰히 챙겨주시는 외숙모는 그나마의 페넬로페가 마냥 엄마를 그리워만 하게 놓아두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틈만 나면 호숫가로 수영을 간다. 소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쭉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그 숲에 들어서 있고, 그 호숫가에서 페넬로페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다. 그래, 페넬로페는 수영복을 입지도 수영을 하지도 않았다. 언제나 한 권의 책을 챙겨 다니는 페넬로페에게 책은 일종의 피난처 역할을 한다. 그것을 하지 못하는 나를 감추기 위한 하나의 술책.
‘내 몸은 기형이라 수영복 따위 입고 싶지 않아!’라고 버럭 소리치고 싶었다. 88p
정작 아이들에게는 전연 문제 될 게 없는 페넬로페의 몸이 스스로에게는 더없는 콤플렉스인 것이다. 하지만 폭풍우를 피한 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에 별수 없이 옷을 말리고 물속으로 들어갔을 때의 그 따뜻함과 자유로움이란. 페넬로페도 아마 몰랐던 것은 아닐까. 하나의 알을 깨고 나오는 일은 이처럼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하나씩 만들어진다는 것을.
돌이켜 보니 새 수영복을 사준 엄마, 일이 바빠 너를 돌봐줄 시간이 없다는 이유를 친척 네로 보냈던 엄마, 그리고 마지막 페넬로페에게 반지 상자를 내밀었던 엄마를 이어 붙여 생각하니 그 여름, 페넬로페의 성장은 사촌이나 딜랑, 마야 아줌마와의 우연한 만남과 시간이 아닌 엄마의 큰 그림이 아녔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 마야 아줌마 얘기를 빼면 안 되지!
숲속에서 오래된 브로치와 보석을 매만지며 사는 마야 아줌마는 페넬로페에게 늘 커피를 권한다. (아이에게 웬 커피? 하겠지만 그런 느낌보다는 새로운 차를 한번 마셔보지 않겠냐는 의미로 들린다) 늘 거절하던 마야가 결국 커피를 마시게 되는데 그때 마야는 커피 맛이 이상했다. 이상한 맛의 커피를 마셨다는 것은 마야의 세계가 이전과 달라진 경험이고 그 해 숲속 외숙모네 집에서의 추억과 기억은 앞으로의 페넬로페에게 결코 소소하지 만은 않은 경험들이 될 것이다.
여름 방학은 끝이 나고, 페넬로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만 돌아간 아이는 이전과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호의와 지지와 애정과 관심으로 온 여름을 품은 아이는 이전과는 단연코, 달라질 것이다. 아이들의 여름은 그렇게 하나의 알을 깨고 비상하고 성장할 시간이라는 것. 기억해 본다.
@greenapple_vi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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