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 - 인간의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
서은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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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기원 / 서은국

“아이를 보는 눈빛에 꿀이 뚝뚝 떨어지네요.”
얼마 전 중앙도서관 독서회때 등교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갔다. 두 시간동안 진행되는 독서회, 늘 그렇듯 1층 아동자료실에 아이를 두고 2층 강의실로 갔다. 혹 무슨일이 있으면 엄마를 찾아 오라 이르고 강의실 위치를 알려줬다. 1시간 가량이 지났을 무렵 강의실 유리창 밖으로 아이의 치맛자락이 보인다. 웬만해선 찾아오지 않는 아인데 그날은 무슨 바람인지 강의실로 찾아와 입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안을 살핀다. 모임을 차질 없이 진행해야 한다는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만 시선이 아이에게로 갔고, 이내 참여자분들도 아이의 존재를 알아챘다. 애써 아이를 무시하고는 이어서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자꾸만 아이에게로 눈길이 갔고, 그럴때마다 아이에게 곧 끝나간다는,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걸 본 한 참여자가 말한다. 정말 좋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아이를 본다고.

나 같은 경우는 아이를 낳고 비로소 삶의 의미를 진하게 느낀 케이스다. 이전에는 없었던 생경한 감정이고 행복이다. 이따금 아이에게 말한다. 엄만 너를 만나려고 여태 살았던 것 같아. 너가 엄마 딸이라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아.

<행복의 기원>을 이야기 하는데 왜 아이를 들먹이냐고, 나의 아이가 나에게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진화론적으로, 또는 생물학, 또는 뇌과학으로 이 ‘행복’을 설명하면 저자의 말마따나 생존과 번식일 수 있다. 재미있게도 ‘새우깡’을 예로 행복의 매커니즘을 이야기한다. (아직 읽어보지 않았다면 꼭 1독을 권한다) 새우깡 자체가 아니다. 새우깡을 먹을 때 뇌에서 유발되는 쾌감, 즉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우리가 행복을 기원하는 이유는 생존을 위한 쾌감 또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라 일컫는다.

여기서 나의 아이를 떠올린 이유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아이를 기르는 일임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고 평생 스스로를 옭아 맸던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행복이라는 것이 물질적 풍요나 안정보다는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같은 경험을 나누는 것에 더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이의 매 순간이 행복 그 자체였는데 이 책을 읽으며 그 ‘시시한’ 즐거움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하다못해 컵에 물을 따르는 아이의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끼고(생각해보라, 내가 먹여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단 한방울의 분유도 먹지 못하던 동물이 버젓이 스스로 물을 따라 마시니 경이롭고 대단한 일이 아닌가), 식당 테이블에 조각 휴지를 깔아 수저를 올려주며 “엄마는 바닥에 놓는거 싫어하니까!”라고 말하는 순간에 거짓말 조금 보태 그 자리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다. (단순한 친절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가 혹은 상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본인의 사고 안에서 상대의 취향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어찌보면 가장 고차원적인 인간의 태도다)

행복의 순간을 강도가 아닌 빈도로 바라보면 아이가 눈을 뜬 아침부터 눈을 감는 밤까지 매 순간이 행복이다. 그저 저 아이가 ‘살아’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차고 넘칠만큼 행복하다. 내외향형 성향이나 긍부정적 성격을 이야기하며 인간은 결국 ’사람과의 관계’에서 행복의 질이 결정된다 이야기한다. 외향형인 사람이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다름 아닌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 현대인의 총체적인 사망 요인은 사고나 암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오랜 연구 결과가 쉽게 간과되지 않는 이유다. 아이를 출산함으로 인해 내 곁에 누구보다 뜨거운 사람을 둘 수 있게 되었다. 물리적으로 밀착되지 않아도 나에게 하나의 의미이자 존재인 누군가를 그것도 나로 인해 세상에 놓아둘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 생각만으로 가슴이 뻐근하다.

오늘 아이와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에어컨 바람에 아이가 추워했다. 따로 가디건을 챙겨가지 않아 당황했는데 그것도 잠시, 중간 팔걸이를 올리고 아이에게 다가가 두 팔로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잠시 뒤 아이가 말한다. “엄마가 안아주는 게 제일 따뜻해.” 허리가 아픈것도, 다리가 저린것도 중요치 않을만큼 아이와 나누는 그 온기에 자꾸만 눈물이 났다. 영화를 보느라 우는 줄 알았겠지만 아이와 나눈 그 뜨거운 시간에 감사함이 밀려왔다. 극장에서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는데 아이가 내 손을 잡았다. 인도가 따로 없어 앞뒤로 차가 오는지 확인하느라 바빴는데 그런 내가 정신 없어 보였는지 아이는 내 손을 잡고 “엄마도 이 쪽으로 와” 걱정한다. 식당에 앉아 잠시 핸드폰을 보며 메시지를 확인하는데 아이가 일어나 셀프 반찬대로 가 야무지게 반찬을 덜고 오고, 테이블에 휴지를 깔아 수저를 놓아준다. 그저 ‘잘컸다’는 말로는 한없이 부족한, 존재 자체로 아름다운 한 사람으로서 앞에 앉은 아이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책의 마지막 문구에서 오늘 그 식당에서의 우리 모습이 떠올랐다.

행복의 핵심을 사진 한 장에 담는다면 어떤 모습일까? 이 책의 내용과 지금까지의 다양한 연구 결과들을 총체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것은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음식을 먹는 장면이다. 문명에 묻혀 살지만, 우리의 원시적인 뇌가 여전히 가장 흥분하며 즐거워하는 것은 바로 이 두 가지다. 음식, 그리고 사람. 191

나의 행복 압정들을 온 사방에 흩뿌려 둔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 오랜 책벗들과의 책모임, 카페에 앉아 글쓰기, 늦은 저녁 베란다에 앉아 아이와 간식 먹으며 영화보기, 아침에 일어난 아이 헝클어진 머리 뒤로 쓸어 넘겨주기, 밤비랑 카페에서 세시간씩 수다 떨기, 희망이랑 요가하기, 남편이 만들어주는 요리먹기, 커피 나누기에서 아포카토 먹기, 새벽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는데 열린 창으로 새소리 듣기등. 나만의 행복압정을 구체적으로 떠올려보며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행복은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조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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