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만의 책장 - 여성의 삶을 바꾼 책 50
데버라 펠더 지음, 박희원 옮김 / 신사책방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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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 독서는 ‘얌전한 투쟁’이라는 해제 속 문구에서 그간 내가 읽어온 주류의 책들이 떠오른다. 이십대 초반부터 생계독서를 시작했던 내가 읽은 책들은 대부분 여성저자들의 소설작품들이었다. 단편 소설이 주는 특유의 감질맛 때문에 대부분 장편 소설을 읽었고, 그때 읽었던 수많은 한국 소설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사고하고 공감하는 내가 된 것만 같다.

책 <여자만의 책장>은 자그마치 1000년(지금이 2024년이죠) 전에 출간된 소설 <겐지 이야기>를 시작으로 수 세기에 걸친 여성사를 다룬 작품들을 아울러 소개하는 책이다. 단순히 ‘소개’만 하는 책이면 내가 읽고 싶은 책들만 추려 발췌해 읽을 수 있겠지만 이 책이 전체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지점은 바로 책의 내용이 주는 시대적 ‘여성상’과 ‘페미니즘’이다.

<안나 카레니나>를 예로, 1870년 톨스토이는 혼란스러워하는 상류사회 기혼 여성을 등장시켜 ‘죄인이 아닌 연민’의 대상으로 당시 여성의 삶을 조명한다. 글을 쓰기로 한 시기, 우연히 안나 피로고바라는 여성이 애인에게 버림을 받고 절망해 화물기차에 몸을 던져 목숨을 잃는 사건이 실제 발생했고 그 일을 계기로 소설의 뼈대를 세웠다고 한다. 단순히 불륜 소설이라는 타이틀에 자극적이고 비극적인 요소들만 떠올리기 쉽지만 책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수단인 레빈의 사랑과 달리, 사랑 그 자체가 목적인 안나의 사랑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독이 된다 128’ 같은 사랑을 꿈꾸지만 여성과 남성이 맞이하는 사랑의 끝은 전혀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맞이한 안나의 사회적 고립과 개인적 번민은 결국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톨스토이는 끔찍하고 육욕에 찬 악마처럼 그녀를 그리려 했으나 결국 전형성을 넘어서는 인물로 그려낸다. 관습에 저항하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사회규범을 깨트린 저항의 인물로 완성시킨다.

이렇게 작품 속 여성상의 시대적 의미들을 하나하나 짚어주는 내용들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페이지가 순식간에 넘어가는 진기한 경험도 하게 된다. 읽어보고 싶은 책이 소개된 페이지는 모서리를 자그맣게 접어 언제고 읽어보리라 다짐해본다. 사실 저자가 머리글에서도 말했다시피 이 책은 여성사와 관련된 서양문학이 주를 이루는 책이라 우리 문학에서 다루는 여성들의 집합체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했다. 그간 읽어온 백신애, 박경리, 박완서, 은희경, 전혜린, 김인숙, 최진영, 권여선, 조남주, 최은영, 한강등 한국 문학사 속 여성사와 여성문학을 톺아주는 책들이 궁금해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아직 없다면 신사책방 대표님! 적극 추천합니다!!!)

여성들이 쓸 수 있고, 읽을 수 있는 글들에 한계(억압)가 있었던 시절, 여성들은 글을 통해 ‘일상을 소재로 정치화’시켰다. 정당하지 않은 것에 대한 목소리를 내고, ‘대항하는 쓰기는 침묵을 강요당한 집단의 증언행위. 쓰기는 곧 여성의 역사를 복원한다.’ 2000년 한 언론에 소개된 작가 한강은 ‘주부 소설가’로 호명되었다고 한다. 씁쓸하지만 24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 소설가 한강은 어떤 작가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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