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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
엠마 아드보게 지음, 이유진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평점 :
#그구덩이얘기를하자면 - #엠마아드보게 #이유진
11월 11일 #도서지원 #뭉끄서포터즈 #문학동네그림책
어릴 적 해운대 우2동 똥골동네에 살았었다. 지금은 부산 해운대지구의 이미지가 브랜드아파트(흔하지도 않는), 높고도 비싼집, 화려한 곳으로 생각되기 쉬운데 내가 서너살 때부터 초등입학때 까지 살았던 똥골동네는 말그대로 판자집의 형상을 떠올리면 된다. 좁다란 골목을 둘러 둘러 길을 따라가며 온 동네 아이들을 다 모아 줄줄이 기차처럼 이어져 온 동네를 시끌벅적하게 아수라장으로 만들곤 했다.
똥골동네에는 당시 기억으로는 꽤 큰 나무공장이 있었다. 내 몸통의 몇배가 되는 둘레의 통나무들이 하늘을 향해 곧게 세워져 있었으며 깎다만 나무 판자들이 여기 저기 비스듬히 세워져 있었다. 그곳은 말도 안되게 신나는 곳이었다. 우리 동네 아이들에겐 거의 환상의 놀이터였던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는 건 그 나무공장에 들어설 때면 눈물, 콧물이 절로 맺히는 강한 나무 냄새였다. 시큼하고도 너무 차가워 칼날처럼 매서운 그 나무냄새들이 가장 먼저 우릴 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곳은 굉장히 위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다. 만약, 지금 우리 딸아이가 그런곳에 가서 논다고 하면, 과연 내가 그래, 가서 놀으렴~ 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때 우리 동네 꼬꼬마들은 팬티한장만 걸치고 공장주변에 아무렇게나 세워진 리어카를 서로 밀어주고 끌고, 태우고 다니며 쓸데없이 함성을 지르고 미친 듯이 까르르거렸다. 다듬어지지 않아 송곳같은 가시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나 있는 나무 판자를 미끄럼이랍시고 타고 내려오다가 엉덩이가 핏물로 얼룩져 울면서 집으로 가는 아이(나라고는 말못하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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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그 구덩이 얘기를 하자면>은 학교 체육관 옆 커다란 구덩이를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림들이다. 구덩이 안에는 나무 그루터기들이 있고, 나무 뿌리에 크고 작은 바위까지, 또 한쪽 구석에는 노란 진흙이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말 그대로 환상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어른들은 싫어한다. 너무 위험해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며 걱정하는 어른들은 축구나 그네타기로 아이들을 설득하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의미없는 메아리일 뿐.
“우리는 그냥 구덩이만 있으면 된다고요.”
그러다 어느 날 점심시간이 끝나고 식당을 나서던 비베케가 자기 신발끈에 걸려 넘어져 코를 찧고 만다. 아이는 코피를 흘리고, 코에 솜뭉치를 넣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있는 아이 옆에서 선생님이 말한다. 이제부터 구덩이에서 노는 건 금지라고.(아니, 왜!! 구덩이에서 다친것도 아닌데 왜!!!)
그네와 축구따위는 아이들의 심심함을 달랠 수 없었다. 다시 또 찾은 구덩이, 그 둘레에서라도 놀기 시작하는 아이들이다. 구덩이 둘레에서 할 수 있는 놀이는 구조대놀이, 모닥불놀이, 줄넘기 줄 멀리 던지기. 주변에서 놀이에 흠뻑 젖어든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도 활기차다.
다음 날, 위험을 이유로 구덩이를 아예 메워버리는 학교, 잠시 그 곳에서 망연자실한 채 주르르 서있는 아이들은 이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본다. 그 곳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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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환경이 주는 재미와 감흥은 길지도, 깊지도 않다. 유년의 내가 쌓인 나무들을 가지고 하루 온종일을 놀며 무한한 놀이의 꿈을 꾸었듯 아이들은 스스로가 원하는 있는 그대로의 환경에서는 무궁무진한 놀이를 만들어낸다. 다만 어른들이 그 기회를 주지 않을 뿐.
내 삶의 ‘구덩이’인 그 시절의 나의 나무들이 병풍처럼 펼쳐진 하루였다.
우리 아이에게도 작지만 소중한 ‘나만의 구덩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언제고 기억을 더듬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릴 때 흐믓한 미소가 지어 질 그 소중한 ‘구덩이’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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