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 철학
이인 지음 / 그린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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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47>#게으르게읽는제로베이스철학 - #이인

 

1029328p. #도서지원 #그린비

 

81년생인 나는 2000년 밀레니엄에 맞춤맞은 20살이 되었다. 200020이라는 숫자의 조합은 꽤 매력적이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열린 것 같았고) 나의 세상은 끝난 것 같았던 시기였다. 끝난 내 세상 속에서 하릴없이 책을 많이도 읽었다. 한국소설에 막 눈을 뜨기 시작했고, 책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읽는 책이랄지 저자가 추천하는 책이랄지 그렇게 책 속의 책들을 마구잡이로 찾아 읽었던 시기였다. 그때, 작은 문고본 책을 하나 샀었다.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문지스펙트럼 7-003권에 해당하는 플라톤의 <항연>이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을 어떠한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까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손바닥보다 조슴 큰 책을 읽으며 사랑에 대한 나름대로의 고찰을 해볼 수 있었다. 기억나는 부분은

 

아폴론은 사람의 얼굴을 돌려놓고 온 신체의 피부를 오늘날 배로 불리는 부분으로 당겨서, 마치 염낭을 묶듯이, 배 중앙에 하나의 주둥이가 만들어지도록 단단히 묶었다네. 이 주둥이가 바로 우리가 배꼽이라 부르는 부분이라네.(...) 그때 아폴론은 배꼽 주위에 약간의 주름을 남겨 놓았는데 그것은 인간들이 예전의 자기 상태에 대한 기억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네. 이렇게 인간의 본래 상태가 둘로 나뉘어졌기 때문에, 그 나뉘어진 각각은 자기 자신의 다른 반쪽을 갈망하면서 그것과의 합일을 원하게 되었다네. 그래서 그들은 팔로 상대방을 껴안고 서로 얼싸안으며 한 몸이 되기를 원하고, 상대방 없이는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아서 굶주림 또는 무기력으로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네.’(향연-사랑에관하여 85p)

 

뭔가 굉장히 커다란 사실을 알아차린것만 같았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살아가는 이 현재(현실)에서 알 수 있는 것들은 정해진 것들이고, 획일화되어 있는데 아주 오래전 선인들이 하는 말들 속에서 지금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을 깨달을 기회를 얻을 수 있겠구나. 그것이 철학이라면 나는 앞으로 철학책들을 좀 더 가까이 해봐야겠다 싶었고 이후에도 줄곳 관심을 가지고 책을 찾았더랬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들이 하는 허무맹랑한 것만 같은 말들 속에서 작게나마 질문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었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혹은 그때는 틀렸고 지금은 맞는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다가왔다.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책 <게으르게 읽는 제로베이스철학>은 오래전 나의 구미를 당겼던 그 새로운 사실(진실)들을 선사해주었다. 나에게는 새롭지만 끊임없이 연구되어지고, 추앙되어지는 여러 가설과 문제들이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31일동안 읽을 수 있는 챕터별 플렌으로 총 31명의 철학자들을 만날 수 있다. 저자 이안님은 대여섯장의 지면에 철학자 한 명, 한 명의 속깊은 이야기들을 너무나도 이해하기 쉬운 문장들로 옮겨놓았다.(여태 읽은 철학입문서중에 가장 좋았다)

 

겉핥기식의 단순한 개요 이상으로 철학자의 특징과 그들의 이론을 정확하고도 매끄럽게 잘 표현해준다. 사회학 개념들이나 용어들에 버벅대는 나인데 이 책은 이상하리만치 선뜻 이해가 되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파악해보면 그 철학자가 설파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슨 이야기인지 보다 쉽게 이해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으로는 챕터 별 소제목 속 중요한 개념설명이었는데 그 단어들을 떠올리며 전체적인 내용들을 이해하는데 너무나도 용이했다.

 

에필로그의 저자님이 말씀하셨다. “책 한권을 횡단한 김에 더 나아가 볼 것을 권합니다. 가슴을 뛰게 한 철학자가 있다면 가까운 도서관이나 서점으로 발길을 옮겨봅시다. 읽어내기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조차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철학을 이해하려면 애끓음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님이 결국 바라는 바가 이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이 맞다면 저자님은 (나에게만은) 성공이다.

 

책을 읽어나가며 후속으로 꼭 읽어보고싶은 책들에 포스트잇을 붙였었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의 <가다머 고통에 대해 말하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슬픈 연대>, 미셸 푸코의 <감시와 차별>이다. 내년 긴호흡으로 읽을 책을 선별하는 중인데 그 중 이 책들을 후보에 넣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출판사 그린비에서 서평제안을 받았을 때만해도 내가 무슨 깜으로 철학서를 읽나쭈그러들었는데 결국 이 책으로 나의 철학은 20대에 처음 읽은 <향연>처럼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었다. 개인적으로 너무나도 감사하게 생각한다. 단순한 개괄이 아니라는 것, 이 책으로 말미암아 분명히 이어지는 독서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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