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잘못일까?

누구 잘못일까? ㅣ 나무자람새 그림책 15
다비드 칼리 지음, 레지나 루크 툼페레 그림, 엄혜숙 옮김 / 나무말미 / 2023년 1월

자기 몸 길이만큼 큰 칼을 찬 전사는 뭐든지 벨 수 있는 그 칼을 무척 자랑스러워한다. 배가 고프지 않았다면 멈추지 않았을 그 칼 질에 숲 전체가 다 잘려나가고 아무것도 모른채 옹성 같은 자신의 집에서 안락함을 누리던 전사는 하루 아침에 자신의 집을 덮친 엄청난 물에 화가 나 소리친다. “누가 내 요새를 무너뜨렸는지 찾아내서 두 동강 내겠어!”

그렇게 만난 숲 지킴이들도, 지나가던 맷돼지도, 한가로이 누워있던 여우도, 아무것도 모른채 지저귀던 새들도 하나같이 자신들은 아니라고 얘기한다. 그들이 저지른 행위 이전에 전사의 무책임한 칼질에 숲 속 나무들이 베어져 나가는 동안 그 동물들에게도 시나브로 미래의 불행들이 조금씩 번져갔을 뿐이다.

처음 이 책의 서포터즈 모집 피드글을 보고 세계적인 작가 다비드 칼리의 작품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독자로써 구미를 당겼지만 그보다는 ‘함부로 휘두른 칼’이라는 소재에서 ‘책임론’을 두고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 두 번의 고민없이 신청댓글에 글을 남겼더랬다.

책이 도착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자마자 아이는 책을 펼쳤고 필기구 까지 옆에 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진하게 그림책을 함께 읽었다. 아이는 전사가 나무를 베는 장면이 강하게 인상에 남는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것이 고개를 하늘을 향해 빳빳히 들고 몸 길이보다 더 긴 뾰족한 큰 칼을 짚고 땅에 늠름하게 선 전사의 모습에서 시선을 빼앗겼는데 다음 장으로 넘어가자 그 커다란 칼이 가볍게 휘둘려지며 나무들이 힘없이 쓰러져간다. 그 장면에서 아이는 ‘잔인하다’라는 느낌과 ‘사람의 목을 베는 듯한’ 느낌을 동시에 받았다고 이야기 한다. 그만큼 숲의 중요성을 보는 아이도 진즉에 알았으리라.

책의 주제가 ‘책임’이었던 만큼, 책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지아가 전사라면 숲 속 친구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수 있었을까? 라고 물으니 진심어린 사과와 책 속 전사처럼 원래대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라는 물음에는 식목일에 씨앗을 심어 나무를 가꾸고 환경을 소중히 생각해야 한다며 환경이야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나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환경까지 이야기가 닿으니 이 책이 ‘책임’뿐 아니라 ‘환경’문제까지도 두루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의 시선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나오니 같이 책을 읽으며 어른으로써 내가 느끼지 못했던 부분인데 아이에게서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사실 잘 모른다. 자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얼마만큼의 파급력을 지니고 있는지. 한권의 그림책 속에서 나는 최소한의 행동 속에 담아가야 할 기본을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었고 또 나로 인해 일어난 그 어떤 일에는 어떻게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작은 메시지를 얻었다. 지금 우리가 숲을 아끼고 환경을 생각하고 기후 위기에 잘 대처해서 다가올 미래에 맞이할 책임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며 어른으로써 내가 더 많은 것을 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