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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ㅣ 소설, 잇다 1
백신애.최진영 지음 / 작가정신 / 2022년 12월
평점 :
이 책은 출판사 작가정신에서 ‘소설 잇다’라는 시리즈로 출간 된 첫 번 째 소설로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 작가의 만남을 통해 한국문학의 과거, 현재 또 그 너머를 함께 바라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매우 색다르고 의미 있는 소설집이다.
첫 단편 「광인수기」는 1938년 쓰여진 소설로, 근대 대표 여성 작가 중 한 명인 백신애 작가의 글이다. 첫 소설이 너무나도 파격적이라 독자로 하여금 단박에 책속으로 빠져들게끔 만드는 마력을 내뿜는다. ‘히히히’, ‘호호호’와 같은 괴기한 웃음소리가 아무런 문장 부호 없이 나열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여 이건 무슨 글인가하는 호기심이 강하게 일었다. 책을 읽어나갈수록 “이게 100년전에 쓰여진 글이라고?”라는 물음이 자꾸만 튀어나왔고 책을 읽다 말고 찾아본 그녀의 프로필에서 ‘아, 그래 보통 분은 아니셨구나’하는 생각이 미치자 그녀의 글들이 너무나도 새롭고 또 대단하게 느껴졌다.
(어느 순간부터 신여성과 여성마력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나에게는 심시선인데, 이 작가분에게서 심시선에게서 느껴졌던 어마어마한 카리스마가 느껴졌다)
뒤이은 「혼명(混冥)에서」와 「아름다운 노을」 (둘다 1939년작)에서 작가님은 여성의 삶을 보다 세밀하고 솔직하고 대담하게 그려낸다. 30대에 췌장암으로 생을 마감한 작가님이 작고하시기 몇 해 전 폭풍같이 써 내려간 글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갈라진 틈 없이 온전히 독자의 가슴에 가 안길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했고, 그때의 여성의 삶이 지금 여성의 삶들과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데에 생각이 미치자 안타까운 마음이 일기도 했다.
백신애님의 3가지 단편이 끝나면 이어지는 최진영님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백신애 작품 중 「아름다운 노을」을 최진영 작가님의 눈높이에서 해석한 ‘좀 더 친밀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담고 같은 주인공들의 이름을 끌어다 재창조하였다.
두 작가들이 만들어 낸 여러 글들을 하나로 이어보면 하나의 메시지가 동그마니 떠오른다. 여성이 안고 있는 연약하고 열등한 사랑의 감정이 여성의 삶을 광인이 되기도 하게 하고, 상처를 입게도 하며, 이루어질 수 없는 바보 같은 사랑을 꿈꾸게도 하지만 결국 여성의 삶은 연약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100년전에도 지금도 여성들은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그런 사랑으로 세상이 원만하게 돌아가고 있으며 우리에게는 좀 더 친밀한 사랑을 할 권리가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