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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웨이 부인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42
버지니아 울프 지음, 손영주 옮김 / 을유문화사 / 2025년 8월
평점 :
런던을 걷고 있는 여인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 울프와 너무도 닮아 있어서 어디까지가 댈러웨이인지 어디서부터 울프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첫 문장에서부터 댈러웨이의 평범한 일상과 런던의 거리와 피카딜리에 가득한 꽃향기가 내게로 와서 이야기 속으로 금새 빠져들었다. 읽으면 읽을수록 버지니아 울프의 상념들이 떠올려져서 어떤 아득함에 머물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런 몽환적인 일상의 흐름이 좋았고 생각과 현실을 넘나드는 표현 또한 참 좋았다.
올해엔 더더욱 덥고 습한 여름날이 계속되었으므로 쇼파 한쪽에 냉보리차를 한 포트 준비해 두고 얼음잔에 따라마시며 책을 읽었다. 8월 내내 내가 그녀의 거실에,(물론 그녀의 하루는 6월이었다) 그녀의 거리에 같이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한 시절도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거리를 여유있게 걸으며 나만의 상념 속에 빠지기도 하였기에 책에 더 쉽게 가까워진 것도 같다. 물론 그때 난 그녀처럼 혼자는 아니었다.
빅벤의 종소리, 시곗바늘, 기도, 클라리사 댈러웨이의 상상, 육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그녀, 피터 월시를 바라보는 시선, 엘리자베스 댈러웨이가 웨스트민스터행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신문에서 읽는 크리켓 기사와 속보로 뜬 살인사건 기사. 이 모든 것들은 지극히 영국적이고 런던을 보여주는 복합적인 느낌이며 꽃잎 하나조차 섬세하게 묘사하면서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스토리들로 인하여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은 댈러웨이 부인이기도 하다.
전쟁에서 겪은 상처로 자기분열적 영혼에 휩싸여지내다가 결국은 창가로 뛰어내린 셉티머스처럼 버지니아 울프는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아왔고 두통, 불면, 환청에 시달렸다. 삶에서 갑자기 튕겨나가 사라진 그 처럼.
그래서 이 글은 댈러웨이 부인의 일과와 단상을 풀어냄으로서 울프의 일상을 우리에게 묘사해주고 있다. 그녀의 ‘삶의 한복판에 공허함이 놓여있다.’(46쪽) ’그녀가 사랑하는 것은 단지 삶이었다.‘(173) 그러므로, 온갖 불확실한 것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파티를 열어 사람들을 모으고 꽃과 접시들을 준비하고 이야기를 즐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야기할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라’(274) 고는 우리가 느끼는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 표현이 좋았다.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것, 습도 높은 더위와 차가운 보리차와 함께 입 안에 들어오는 얼음 조각들과 쇼파의 안락함과 댈러웨이 부인이 듣는다는 묘사를 통해 내 귓전에도 울리는 종소리에 집중되었다. 그녀는 빅벤이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의 종소리, 손님이 오셨다는 종소리를 들었겠지만 나는 송화강변의 새들을 강물위로 날아오르게 하는 하얼빈 소피아 성당의 종소리, 만주 벌판을 뒤흔들 용정 팔도성당의 종소리를 듣고 서 있을 뿐이다. 그녀의 시간과 하얼빈의 시간이 아주 비슷하기도 하다.
이 책을 나처럼 또 다른 I(MBTI) 들에게 권하고 싶다. 혼자 있는 시간에 문득 어느날 어느 한 페이지를 무심코 펼쳐 읽어도 새로운 한가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앞 뒤와 연결된 맥락이 없어도 우리는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런던 타임즈나 클라리사가 총리를 맞이하는 장면들의 묘사만으로도 몇페이지에 걸쳐 섬세하게 묘사되므로 하나하나 독립적인 장소를 그려지게하고 새로운 느낌으로 남겨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루는 이토록 무한한 이야기들과 씨줄 날줄로 엮여진 그물망 안에 들어있는 것이기도 하다. (25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