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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 삶의 무의미를 견디는 연습 ㅣ 철학은 바꾼다
서동욱 지음 / 김영사 / 2025년 10월
평점 :
<철학은 결말을 바꾼다>
’아직?!’ 책이 되지 못한 책을 받는다는 것, 그것이 내겐 특별한 희열을 준다. 그래서 교정을 돕겠다는 핑게로 자주 ‘가번역본’을 받아 읽고 가제본 책을 청해 읽는다. 아직도 사람이 되지 못한 나란 사람을 빗대어 읽기라고나 할까?
코로나 이전에 들뢰즈를 읽고 철학 책을 덮었던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 이후론 철학서에 관한 별다른 독서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서동욱 교수의 철학이 ‘날씨’를 바꾸는 이야기를 접하긴 했었으나 정리해두진 않았던 모양이다.
뭔가 빈 듯한 가제본을 받고 참참이 읽어나갔다. 흥미를 끄는 글들이 언급될때마다, 곁가지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도 보았다. 오래전에 시력이 약한이들을 위한 녹음봉사를 위해 녹음실에 앉아 있었던 시절의 낭독에 대한 추억이 되살아났다. 이번 읽기에서 가장 큰 수확이다.
저자의 표제어 ”삶을 바꾸는 생각은 어디서 오는가?“ 에 끌려서 서평단을 지원했다. 그것은 너무도 당연하게 ’뻔한 곳은 낯설게, 무거운 것은 가볍게‘ 라는 역설에 근거한다는 견해에 격하게 공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 사유와 삶의 역설이 변화라는 역동을 만들어내는 것을 역사 속에서 너무도 자주 보아왔었다. 그것은 우리를 어둠은 아니어도 어둡기만한 일상의 절망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도록 도와주는 지점이기도 하다.
책의 내용이 무척 방대하다. 고대 그리이스에서부터 근 현대까지 다수의 철학자들이 언급되어지고 시와 문학 분야에서부터 우주 과학까지 그 범위도 아주 넓다. 그러니 이 책은 서 교수의 지적 향연이 펼쳐지는 장이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철학 책인데 주제마다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이다. ‘권태를 여행으로 극복해볼까’ 또는 ‘웨이터의 세계’ 나 ‘출산의 의미’ 처럼 일상의 삶과 고통, 죽음을 통하여 철학의 개념들을 설명하니 이해하기도 쉽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에서 ‘우아하게 뻗은 손가락’을 프루스트나 샤르트르가 묘사한 접시를 들고 손님에게 다가오는 웨이터의 우아함, 그 손길에 비유하는 기발함도 보인다. 아마도 철학교수인 저자가 강단에서 소개했던 내용들이기도 할것 같다.
다 다룰 수는 없지만 내게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몇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인간에게만 있고 다른 종들은 없는 독특한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부끄러움, 바로 수치심이 그것이다.“ (43)
”셀링의 자유로운 정신을 보여주는 멋진 작품 -나는 바보짓을 하기보다는 무신론자로 남고 싶다.“(53)
“친구와 악수하는 것, 그것은 그 친구에게 자신의 우정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70)
”학문은, 그리고 글쓰기는 세계와 인간이 그대로 있도록 놓아두지 않는다. 그를 파괴하고 달라지라고 요구한다. 즉 세계와 인간을 재창조한다.“ (131)
“우리는 경험을 통해 실망을 겪으며 과오를 넘어서고 깨달음을 얻는다.” (141)
“가족은 바로 ’죽은자의 매장‘ 이라는 ‘의무’ 를 통해 가족이 된다….가족이란 공통의 죽은 조상이 연결해주는 사람들이며, 죽은 이는 연결자로서, 가족 안에 계속 인격으로 머문다.” (157)
“학문은…인간이 삶을 연습하는 방식이다…‘공부는 삶의 연습’” (172)
”구역질을 위해 온몸을 바치는 자들…온몸이 쏟아져 나오려고 한다…근거 부재에서 유발되는 것이 구토이다. 우리는 속에서부터 메스꺼워한다…구역질은 통제할 수 없고 맹목적이다. “(180-185)
무엇보다 좋았던 부분은 <무위의 철학>이었다.
“‘무위’는 ‘존재하게 내버려 둠’…사물이 자신의 본성에 맞추어 출현하도록 그냥 놓아두는 것을 뜻한다.(193)
고대 그리스인들의 철학에서 만물의 원천, ’피시스’는 ‘스스로 펼쳐지는 자연’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을 기능이나 용도로서 파악하지 말고 “인간이 본성대로 존재하는 모습을 존중하는 시선으로 바꾸는 것, 그것이 현대의 과제”라고 보는 견해가 따뜻해서 좋다. 삶의 거친 소용돌이에 어지러워질때마다 틈틈 꺼내어 아무곳이나 펼쳐 읽어도 좋을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