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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이 모르는 개들의 삶
엘리자베스 마셜 토마스 지음, 정영문 옮김 / 해나무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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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학자인 저자가 자기 집에서 개들을 10마리 쯤 키우면서 최대한 객과적으로 관찰한 것을 썼다. 그녀는 개들을 훈련시키려 하지 않았고 집을 떠나 동네를 싸돌아다니는 것을 괘념치 않았으며, 같이 산책에 동행하며 만 시간 이상을 관찰했다고 한다. 그녀가 기른 개는 허스키와 퍼그, 그리고 딩고였다. 
 

최대한 자유롭게 풀어 키운 개는 활동범위가 무척 넓어서 3, 40 평방킬로에 달했다고 한다. 저자가 보기에 개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관계를 맺는 것이라고 한다. 그 넓은 면적을 끊임없이 돌아다니지만 먹이를 구하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고, 서열을 정하고 관계(친밀한 관계가 아니고)를 맺는 것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한 집안에서는 특히 서열이 중요한데, 으뜸 암컷이 아니면 임신(교미)도 하지 않는다.(개들끼리의 압력 및 스스로도) 심지어 으뜸암컷이 아닌 개가 새끼를 낳은 경우는, 다른 개가 그 자식을 죽여도 어미가 반항하지 못한다. 개는 주로 정보를 후각으로 알아내기 때문에, 밖에 갔다 온 개가 있으면 다들 모여 냄새를 맡는다. 어떤 개들은 일부일처제를 고수하며, 그 관계가 깨질 때 슬퍼하고 외로워하는 것 같다고 한다. 또 근친혼도 흔한 일이다.

저자가 보기에, 개는 어느 정도의 학습능력은 물론이고, 감정도 확실히 가진다. 전에 로렌츠의 책에서도, 개는 생각보다는 멍청하고, 생각보다는 훨씬 감정이 많다고 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개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되면, 인간과 같이 보다는 개들끼리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건 말하자면 질적 연구라 할 수 있을 텐데, 개와 그렇게도 친한 인간이, 왜 여태까지 애완견으로서의 개가 아닌, 그냥 개 자체에 대한 연구가 없었는지 놀랄 일이라 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이 연구는, 개가 충분히 돌아다닐 만한 주위환경(가령 허스키가 눈썰매를 끌 수 있었던 환경, 넓은 마당)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아파트에 사는 개들, 하루에 산책 한 번도 변변히 못하는 개들이 학대받고 있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진다.

난 언제쯤 넓은 마당과 산이 있는 곳에서 개와 함께 달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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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 시간의 강을 건너온 생명들
칼 짐머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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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가 서문을 썼다는 사실이 눈에 단박에 띄어 산 책이다. 이 책은 WGBH/NOVA사의 사이언스부문과 클리어 블루스카이 프로덕션이 공동으로 추구하는 <진화>프로젝트의 한 부분이다. 그 프로젝트에는 TV시리즈 7부작, 웹사이트, 멀티미디어 라이브러리, 교육 프로그램등이 포함되어 있다 한다. 지은이 칼 짐머는 과학저널리스트로 ‘Natural History'를 비롯 여러 잡지에 꾸준한 기고 활동을 하고 있으며, 많은 상을 받고 과학강의 및 저술활동, 라디오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굴드는 서문에서 “왜 우리가 진화를 알아야 하는가?”에 대해 두 가지 대답을 하고 있다. 하나는 실용적인 목적인데, 질병치료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진화의학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나를 빙그레 웃음짓게 만들었는데- ‘자연을 탐구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알아내야하는 부담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라고 했다. 다시 말해 도덕과 의미는 과학과는 전혀 별개라는 말인데, 그 말이야말로 지금 다시 다윈이 살아난다면 우리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일 것이다.  

 

이 책에는 다윈이 어떻게 자신의 이론을 세우게 되었는지, 그 진화론을 둘러싼 찬반논쟁 및 관련 이론들의 발전, 진화론의 의의, 진화의 관점에서 본 생물의 역사 및 사회생물학, 그리고 질병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460쪽이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저자의 탁월한 글솜씨와 압축된 문장, 정곡을 찌르는 유머 등으로 잠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또 적절한 곳에 배치된 칼라사진들은 내용의 이해를 도움은 물론 그 자체의 아름다움만으로도 충분히 보는 맛이 있다. <진화>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나온 후 2년간을, 남아프리카의 사막, 이집트, 멕시코, 하와이의 구릉지대, 결핵환자가 있는 러시아의 감옥, 터키와 남프랑스의 동굴, 히말라야 산기슭, 에콰도르의 열대우림 등 세계 곳곳을 발로 뛰며 준비하였다고 하더니, 과연 그 성과가 책에 그대로 녹아있다. 이 책은 그 동안 내가 읽은 몇 권의 진화관련 책들의 훌륭한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진화공부가 나에게 준 가장 큰 기쁨은, 내(‘나’)가  단지 지금의 내 한 몸뚱아리가 아니라. 장구한 지구역사 속의 한 부분, 전 생태계 속의 한 부분임을 항상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글쎄, 그건 매우 다양하고 아름다운 친구를 1000명 쯤 새로 사귄 기쁨과 비슷한걸까? 또 다른 말로는 ‘인간’이라는, 또 '특별한 나’라는 교만을 버리게 되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마치 ‘아내’나 ‘결혼’이라는 엄청 왜곡된 이데올로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상처받고 헤어지듯이, 우리는 ‘인간’이라는 이데올로기에 갇혀 무익한 싸움과 소비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리 청소를 깨끗이 해도 그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거지 실제로 생물들이 다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단지 크기가 큰 생물들이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는 얼마나 애쓰는가?(병원에서도) 도대체 ‘깨끗함’이니 ‘질서’같은 것들은 언제부터, 왜 우리에게 중요한 것으로 되었을까? 학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가치 가운데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스트레스를 받고 돈과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가? (그러면서 지저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위안한다)  

 

비단 이 책 뿐이 아니라, 과학책을 읽다보면 자연계에서 통하는 유일한 진리(?)는 오직 다양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흔히 얘기하는 약육강식이라는 말도 틀렸다. 생물계에서 가장 큰 지위(시간적, 공간적으로)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박테리아를 ‘강자’라고 인정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모든 생물은 자기가 처한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려고 하며 그 과정에서 다양해진다. 굴드는 그 다양성의 증가, 적응방법의 진보(가치를 함축한 진보가 아니다)를 진화라고 이야기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게 되면, ‘미’의 기준이 흐려지며 오히려 감상할 수 있는 세계의 부분이 무한대로 확대된다. 더럽고 추한 것이라고 생각되었던 것들까지도, 이젠 여유를 가지고 감상할 수 있게 된다. 남편과 싸울 때도, 학생들이 미워질때도, “왜 그럴까?”라는 생각에,(성의 분화와 암수의 사회생물학, 인간의 유태성숙을 생각하며) 감정에 한 박자 여유가 생긴다. 
 

진화는, 고등학교 이후로(난 고등학교 공부도 꽤 재밌었다) 내가 아주 푹 빠져서 재밌게 공부한 부분이다. 아마 대학 가기 전에, 혹은 대학에서라도 진화를 접했다면, 아마 과감히 전공을 바꿨으리라. 아니, 대학교 입학 이후로 워낙 공부란 것과 담쌓고 살아온 내가, 모처럼 열심히 공부를 하며 (주제와 상관없이) 공부의 기쁨을 깨닫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환경운동을 해야겠다고 막연히 마음먹고 있던 내게, 참 선택을 잘했다는 확신을 주었다. 좋아하는 생태학 공부와, 이론을 넘은 실천까지 담보할 수 있는 활동, 그리고 교사로서 지금 이 시기에 아주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 그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게 바로 환경운동, 그 중에서도 특히 환경교육이었다. 그리고 그 환경교육이, 지금처럼 도덕적 덕목이나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지구의 역사, 생태계에 대한 통합적 이해, 그리고 여러 가치관을 인정하고 타협할 줄 아는 태도 등을 길러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내가 지구와 탯줄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이 기쁨을 학생들도 느낄 때, 그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환경교육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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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오르다 - 김웅서 박사의 심해탐사기
김웅서 지음 / 지성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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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오르다, 김웅서, 지성사, 2005

지은이 김웅서는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이다. 북태평양해양과학기구 등 국제기구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여러권의 저서와 역서가 있다. 이 책은, 2004년 4월하순부터 약 50여일간 프랑스 국립해양연구소의 연구선 아탈랑트를 타고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동안의 일기를 사진과 함께 펴낸 것이다.

아탈랑트는 과학자(프,미,영,독,일 한국 등) 20명, 의사 1명, 잠수정 기술자 8명, 그리고 선원 서른명 정도를 태우고, 멕시코의 만사나요항을 출발, 태평양을 동남쪽으로 가로질러 누벨칼레도니의 누메아에 도착할 때까지 심해환경을 탐사하였다.(해수, 퇴적물, 망간단괴 등 채집, 생물포획과 촬영 등)  3천 600톤 규모의 아탈랑트는 유인잠수정인 노틸(수심 6천미터까지 잠수가능)과 무인잠수정 빅터6000의 모선이다. 노틸은 무게 20톤, 길이 8m, 높이가 약 4m인데, 티타늄으로 만들어졌고 조종실은 지름 2m의 구형이라고 한다. 노틸에는 광물이나 생물을 채집할 수 있는 로봇팔과 여러 개의 조명장치, 비디오카메라와 사진기, 그리고 추진장치인 프로펠러와 수중음향탐지기가 달려있다. 이번 탐사에서 김웅서는 한국과학자 최초로 수심 5000미터 아래로 잠수정을 타고 내려갔다왔다.

노틸은 조종사 두 명과 과학자 한 명 씩을 태우고 잠수하는데, 보통 한 번 잠수하는 시간이 약 10시간이다(오르내리는 시간 약 3시간 반) 내부가 매우 좁아 일어설 수도 없고(나중엔 다리에 쥐가 났단다) 오줌도 플라스틱통에 누어야 한다.(여자과학자의 경우는 깔때기도 준비해야 한다고 함) 오줌 때문에 잠수 중엔 물론이고 그 전부터도 물 먹는 것을 자제해야한다고 한다. 산소측정기로 산소의 농도를 조절해서 산소가 공급되고, 숨을 내쉴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수산화칼슘을 이용해 제거한단다. 만일을 대비한 비상식량으로 사탕과 과자 등이 있는데,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식수를 절약하기 위해 물먹는 양이 정해져 있다한다(처음 24시간은 마시지 않고, 그다음 24시간은 0.5리터 이하, 며칠 후부턴 0.1리터 이하) 심해저의 수온은 1.4도, 조종실 벽은 얼음처럼 차가운데 안에 세 사람이 내쉬는 숨 때문에 벽에 물방울이 맺히고, 끝날 때쯤엔  물받이에 물이 흥건히 고인다고 한다. 탐사 중엔 비디오카메라가 돌아가고, 모든 대화가 블랙박스에 기록된다고 한다.

노틸이 내려가기 전에 먼저 모선에서 시료회수기를 떨어뜨린다. 그 속에 들어있는 채취기를 가지고 퇴적물 샘플을 채취해서 다시 시료회수기에 담는다. 그런 다음 수중음파분리기를 작동시켜 시료회수기에 붙어있는 추를 떼어내면 시료회수기는 저절로 수면으로 떠오른다. 퇴적물을 채취하는 이유는, 그 속에 살고 있는 미생물을 추출해서 배양하기 위해서이다. 그 미생물을 연구해서 약을 만들 수도 있다. 망간단괴는 그 자체도 연구대상이지만, 거기에 붙어있는 생물들도 역시 실험대상이다. 이렇게 채집해서 위로 올려진 샘플들을 가지고 심해저와 온도가 비슷한 저온생물실에서 관찰 및 실험에 들어간다. 생물을 관찰하고 사진을 찍은다음에는 포르말린과 함께 보존하거나 냉동한다. 이후 DNA를 추출해서 분석하기도 한다.
심해저에 사는 생물로는 여러 가지 색깔의 해삼과 불가사리, 말미잘, 바다나리, 해면, 그리고 망간단괴에 붙어사는 갯지렁이, 유공충, 히드로충 등이 있는데, 물론 이름도 모르는 것들도 많다. 지은이 김웅서가 채집한 생물 중에는 눈이 없는 물고기가 있어 모두의 주목을 끌었다한다.
망간단괴는 분쇄기에서 갈린 후 동전처럼 생긴 펠릿으로 만든다음 원소분석기에 넣어서 망간, 구리, 코발트, 니켈 같은 원소가 얼마나 함유되어 있는지 측정된다. 잠수하며 탐사한 내용에 대해서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바로 선상의 세미나에서 발표한다.

과학시간에 어울리는 이상의 지식 외에도, 이 책에는 재밌는 내용이 많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바다를 늘 벅찬 심정으로 대하는 저자의 열정적인 모습이 매우 부럽고 보기 좋았다. 해양생태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국가적 차원의 중요성을 떠나 개인적으로도, 이번 탐사가 얼마나 신나는 경험이었을까? 악천후 때문에 노틸에 타는게 거의 불가능해졌을 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그러다 다시 동전던지기로 없어질 뻔한 기회가 다시 찾아왔을 때, 종교의 유무를 떠나 틀림없이 그는 감사의 기도를 드렸을 것이다.

좋아하는 일이 있다는 것 자체도 기쁘고 감사한 일이지만,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또다른  문제다. 신체적, 경제적 제약도 제약이겠지만, ‘운’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번에 대학원 입학시험(이라기보다는 면접)을 보며 다시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외의 것 때문에 나의 미래가 결정되는 일이, 사실 얼마나 많겠는가? 대학원 가는 게 아무것도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나도 이번에 합격하고 나서 얼마나 기쁘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던지-. 그런 점에서 저자는 거의 행운아라고 불러도 될듯하다.

물론 책을 쓰기 위함에서이기도 했겠지만, 그는 참으로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올리고 자료를 정리하고 동료과학자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한다. (나중엔 거의 아탈랑트의 공식사진사로 여겨지는 듯 하다) 신기한 음식을 먹으면 음식에 대한 정보를 얻고, 여러 나라의 과학자들에게 말도 배우고, 침대에 장난을 치면 침대의 구조를 조사한다. 잠깐씩 머무는 항구에서도 관광서를 섭렵한 다음 관광(이라기보다는 견학, 공부)을 한다. 42일간의 여행 동안 네 권의 책(그냥 가벼운 소설책이 아니다)을 읽고, 독후감을 쓰고, 동아일보로 기사를 써 보내고, 한국의 연구소와도 끊임없이 연락을 주고받는다. 배 안이라 운동을 잘 못하니 비좁은 선실에서 매일 윗몸일으키기와 체조를 하고, 프랑스요리를 좋아하면서도 고기섭취량을 염려해서, 아침은 바게트 한 조각과 커피정도로 절제한다. 그는 매일 해 뜨는 것과 해지는 것을 보곤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는 매사에 호기심이 많고 부지런하며 감수성이 풍부하다. 한 마디로 말해 학자의 자질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활을 잘 관리하며 절제할 줄 안다. 이는 단지 행운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란 걸 나는 안다. 호기심, 부지런함, 감수성, 이런 것들도 충분히 노력의 산물이 될 수 있음을 난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점에 감사드린다. 학자의 자질을 타고나지 않아도, 반복과 연습에 의해 그런 것들을 충분히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학자인 남편을 옆에서 보며, 소위 지적활동이라는 게 얼마나 단순노동이 많이 필요한 일인지를 날마다 느낀다. 아이디어는 순간 떠오를지 모르나,(물론, 쌓여있는 지식과 성찰이 없으면 그것도 없다) 그것을 구체화시켜 하나의 결과물로 내놓기까지는 소위 ‘짜증나는’ 시간들이 얼마나 많이 필요하던가? 문장 하나하나를 몇 번에 걸쳐 다듬고, 표 하나를 조금이라도 보기 좋게 고치고, 단지 표현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것인지를 고민한다. 난 예전엔, ‘형식이 아니라 내용’이라고 주장하며, 그런 ‘보기 좋게’ 만드는데 들이는 시간이 아깝다고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령 이 책이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단지 내용만이 아니라 지은이의 글솜씨, 적재적소에 깔끔하게 삽입된 사진들도 크게 한 몫 하는 게 아니던가? 여기 나오는 한 컷의 사진을 위해, 저자는 비숫한 사진을 적어도 다섯 장 씩은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낭비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부지런함과 꼼꼼함이라는, 아주 중요한 학자적 자질이 없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과학자들이 벌이는 천진한(?) 장난이 없었으면, 42일간의 탐사는 다소 지루했을 것이다. 심해잠수정에 처음 타본 사람은 소위 신고식을 해야하는데, 진흙양동이에 엉덩이을 깔고 앉아 이상한 음료를 먹고 이상한 가면을 쓰고 얼굴에 진흙범벅, 시궁창범벅이 된 후 찬물세례를 받는 것이다. 또 배가 적도를 통과할 때는 바다의 신 넵튠에게 고사를 지내고 통과허가증을 받아야하는데, 물세례를 받고 넵튠부인의 발에 묻은 구역질나는 액체를 핥아야 한다. (근데 죄인들은 가슴에 ‘반넵튠해방전선’이라고 쓴 티를 입고 있다)

서양인들은 장난을 참 좋아하는 것 같다. 메이져리그에 진출한 우리나라 야구선수들이, 팀원들의 장난에 적응 못해 힘들어한다는 기사도 보았다. 이들의 장난은, 말하자면 유머의 다른 모습, 여유의 다른 모습일 것인데, 우리나라는 이런 것들이 참 드문 것 같다. 교수는 근엄해야하고 나이 먹은 사람은 점쟎아야 하고 등등의 고정관념, 휴식의 가치는 거의 인정되지 않고 일만 중요시하는 풍토, 미학적 표현을 비롯해 ‘미’에 대한 교육의 전무, -- 아마도 이런 것들 때문이 아닌가싶다.

프랑스의 떠벌림과 자기과시는 역시 이 책에서도 빠지지 않았다. 프랑스과학자들 역시 자국의 탐사선에 대한 자랑을 빠뜨리지 않았다 하고, 탐사에서 찍은 사진은 허락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고, 특히 노틸에서 찍은 사진은 프랑스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로고를 넣고 노틸에서 찍은 것이라고 명시해야한다고 한다.(앗, 그런데 이 책에 나온 사진들은 로고가 없다!) 디스커버리채널에서 과학다큐를 보면, 프랑스에서 만든 것은 금방 알아보는데, 하도 자랑이 심하기 때문이다. 세계최초로 잡은 화면이라느니, 이걸 찍기 위해 아주 대단한 가시광선증폭기(정확한 이름은 기억안남)를 사용했다느니,--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화면은 얼마 안된다) 사실 다른데서 찍은 다큐도 그 정도는 다 기본인데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노틸은 20년 전에 만들어져서 그 동안 세계 곳곳의 심해를 누렸지만, 우리나라는 이제야 유인잠수정을 만들고 있으니, 뭐 기분 나빠도 자랑을 다 들어주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

심해 5000미터에도 여러 가지 생물들이 산다는 사실, 사실 이게 가장 신기할 일이지만, 나는 과학교사인 관계로 이미 비디오로 보고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탐사선 안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일들과 과학자들의 생활을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쓴 글은 또 다른 읽는 맛이 있었다. 외국에서는 자연과학자들에게도 글을 잘 쓰는 훈련을 필수로 시킨다고 하던데, 학술논문도 논문이지만, 이런 대중적인 글이 많이 나와서,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나이의 학생들이 과학에 대한 꿈을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과학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문제해결의 짜릿함보다는, 첫째는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신기함을 느껴서가 아니던가? 지금 우리나라 학생들이 직접체험의 기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마당에, 이렇게 쉽게 재밌게 읽히는 좋은 책들은, 가장 훌륭한 간접체험의 수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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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반향초 2022-06-26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해생물 특히 해파리등을 좋아하는 7세남아를 위해 심해책을 찾다가 댓글을 보게되었어요. 해양관련책이 너무 없고(아이들이볼 용도로) 직접보긴 더 어려워서 댓글을 다 읽어보거든요 아이가 좋아할만큼 사진도 많은지 그사진이 찍힌과정또는 설명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지음, 류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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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누구보다도 과학교사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셔머는 회의주의 학회(Skeptics Society)의 설립자, Skeptics(저녈)의 편집장이다.(그런 단체와 그런 저널이 있다는 것을 안 것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살 가치가 있다) 굴드가 서문을 썼는데, 그는 ‘조직적인 비합리주의에 맞서는 이성의 선봉이 바로 회의주의이며, 따라서 인간의 사회적 시민적 품위에 이르도록 해주는 열쇠의 하나도 회의주의’라고 말한다. 내 과학수업의 두 가지 목표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다른 하나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과학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왜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을까에 대한 답은 마지막 5부에 나와 있다. 1부는 과학이란 무엇인가, 과학과 사이비과학의 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인데, 이 1부를 몽땅 떼내어 몇 시간 정도의 과학수업 교재로 삼고 싶을 정도다. 특정 지식이나 소재가 아니라 ‘방법’이 바로 과학과 비과학을 가르는 구분점이라는 것, 그리고 그 방법의 가장 핵심은 검증가능성, 그리고 언제든지 오류임을 인정할 수 있는 열린 자세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나머지 2, 3, 4부는 사례들로, 초능력, 외계인, 창조론, 그리고 홀로코스트 부정론 등을 다루고 있다.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을까? 셔머는 그 이유가, 불확실한 삶 속에서 사람들은 뭔가 기대고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을 원하는데 사이비과학이 바로 그것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게다가 그것들은 과학과 달리, ‘머리를 쓰는’ 노동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말하자면 배고플 때 싼 값으로 바로 사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식품, 영양과 깊은 맛은 전혀 없지만 엄청난 조미료와 지방으로 혀와 위장을 순간적으로 마비시키는 정크푸드라는 것이다. 이제까지 ‘희망’이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기쁨을 주는 요술지팡이처럼 여겨져 왔지만, 이미 이 세계는 그 희망을 값싼 상품으로 팔아치우고,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진짜 희망을 찾는 일(끝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알아나가는 것)을 할 능력 자체를 마비시킨다는 것이다. ‘과학은 차갑기만 하고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것은 과학 밖에 있다’ 라는 주문을 계속 걸면서 말이다. (굴드 역시, 종교나 윤리가 없으면 인간의 존엄함이 사라지는가, 오히려 그런 것들에 기대지 않고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인간의 존엄함이 있는 개 아닌가하고 말한 적이 있다-여기서의 종교나 윤리는, 영성이나 개인적인 믿음이 아니라, 어떤 ‘형식’-의례, 특정한 종교적 내용, 특정한 윤리 규범-을 얘기한 것일 게다)

사람들이, 자기가 믿고 싶어 하는 것만을 믿는다는 것은, 내 수업에서도 분명히 나타난다. 학생들이 가진 오개념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어떤 사실이 자기의 오개념과 충돌하는 경우, 그 오개념을 더욱 융통성있게 개선하거나, 아니면 사실 자체를 왜곡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패러다임처럼) 셔머의 책에 나온 사람들과 내 학생들의 공통점은, 그렇게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사람들은 그것 말고도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바로 ‘이야기(서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신경전달물질, 착시, 몸의 반사작용, 분자들의 결합, 확률보다는 신, 외계인, 창조가 훨씬 더 서사적이다.

내 생각엔, 바로 이것이 사이비과학을 판치게 하는 두 번째 요소인 것 같다. 과학자들은 반복가능성, 통제된 실험, 확률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사이비과학자들은 일화, 우연, 드라마틱함을 강조한다. 전자는 복잡하고 재미없고 훈련을 받아야 가능하지만, 후자는 단순하고 재미있고 쉽다. 일단 어려우면, 매력도 떨어지고 위로의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지 않은가? 과학적 방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보다는, 이야기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 훨씬 많지 않은가? 요새 읽고 있는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을 보면, 인간 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동물들도 여러 가지 즐거움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성적 흥분, 장난, 맛, 접촉의 즐거움 뿐 아니라 취하기, 미의식, 유머까지도!) 싼 값에 쉽게 위로를 주고 게다가 즐거움까지 준다면, 사람들이 사이비과학에 빠지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는가? 좀 과장해서 비유해보자면, 손에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쇼파에 앉아 연속극을 볼 것이냐, 아니면 시간과 돈을 들여 직접 준비한 밥을 먹으며 책을 읽을 것이냐의 차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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