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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 아옌데의 조로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스페인계 아버지와 인디언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디에고가 조로로 데뷰하기가지의 이야기.
조로의 가족사, 쌍동이처럼 자란 절친한 친구와의 우정과 모험,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이주해온 스페인인들(지배자들)의 갈등, 스페인에서의 소년시절, 검도스승을 만나고 비밀단체에 가입, 짝사랑, 숙적과의 긴 결투 등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대체로 담담한, 하지만 가끔가다 감정이 내비치는 어투를 통해 그려진다. TV에서 봤던 영화 '조로'는 조로의 데뷔부터를 다루지만, 거기까지를 다룬 이 책이 훨씬 재미있다. 조로의 폼생폼사 기질이 언제적부터 있었던 건지도 알 수 있다^^.
스스로 문명화됐다고 생각하며 인디언을 깔보는 서구인들을 직접 비판하고 있지는 않지만, 책을 읽다보면 그들이야말로 얼마나 문명화되지 못한 족속들인가를 느끼게 되는 부분이 많다. 조로의 정의로움과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지는 자유의 기질이, 자연과 함게 평화롭게 살아왔던 인디언의 핏줄을 통해 내려온 것임을, 또 그의 세련되고 신사적인 태도는 어릴 때부터의 엄격한 가정교육에서 비롯됨을 알 수 있다. 말없이 텔레파시만으로도 통하는(심지어 대양을 사이에 두고도!) 우정은 좀 과장된 게 아닐가 싶기도 하지만 같이 젖을 먹고 곰을 잡고 집안의 참사로부터 지하미로를 통해 도망쳐나온 사이라면 그럴 수 있을 것도 같다. 아름다운 여인 홀리아나를 사랑하지만 끝끝내 보답받지 못하면서도 언제나 그의 기사가 되어주는 조로의 사랑은 모든 여성들의 로망이리라-.
강인하면서도 인정있는 전형적인 귀족인 아버지, 인디언 약제사이자 예언가인 할머니와 그 피를 물려받은 어머니, 멘도사신부, 검도스승 에스깔란데, 숙적 몬까다, 대서양 횡단시 턌던 배의 선장, 해적 리피트 등 등장인물들 하나하나의 캐릭터도 모두가 흥미롭다. 캘리포니아 지하동굴의 축축한 이끼 냄새, 휘영휘영 휘어지며 공기를 가르는 칼 소리와 화약냄새, 바르셀로나 시내의 마차소리, 감옥의 지하실과 막사의 말냄새, 대서양 가운데서 흔들리는 좁은 선실의 희미한 등잔불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어렸을 적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를 읽을 때의 긴박감과 나도 바다를 지나고 저 넓은 세상으로 나가서 모험을 하고 싶다는 설레임이 다시 한 번 피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