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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에 다가서기
강영조 지음 / 효형출판 / 2003년 1월
평점 :
풍경을 어떻게 즐길것인가 하는 부담없는 얘기부터 시작해서, 풍경이란 무엇일까, 그것을 어떻게 이용할까, 왜 좋은 풍경이라고 느끼는가 등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풍경에 대한 미학적, 사회학적, 과학적, 실용적 고찰을 해 놓은 책이다. 우선,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한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쓴 책이 있다는 게 반가웠다. 자기의 전공이 아닌 뭐에 대해 말할라치면 '당신이 뭘 알아?'라는 항의를 들을까봐 지레 자기검열에 걸려 자유롭게 글쓰기가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곳이 우리나라 아니던가? 저자의 약력을 보니 일본에서 석박사를 하고 직장에도 있었던데, 우리보단 그런 점에서 더 자유로운 일본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저자는 좋은 풍경은 인간과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깝게는 화가들의 캔버스에서, 멀게는 인류가 나무에서 내려왔을 때 생존에 유리했던 풍경이 지금까지 이어내려와 우리에게 '좋은' 풍경이 된다는 것이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서 스티븐 핑거는 보기 좋은 것, 듣기 좋은 것(즉 예술)이란 우리의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것이라고 하고 있는데 저자도 그런 진화심리학적 주장에 동의하고 있는 것 같다. 저자는 풍경에 말에 결합할 때 비로소 의미있는 풍경이 된다는 예기도 하는데, 이역시 언어학 쪽에서 많이 듣던 주장이다.
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그런 과학적, 사회학적 설명이 아니라 옛 시와 함께 하는 풍경 감상, 그리고 풍경을 감상하는 자의 여유를 보는 것이었다. 특히 스러져가는 것의 아름다움(폐허 미학)을 짚고 넘어간 부분이 아주 좋았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무조건 새 것, 반듯하고 질서 있는 것만을 추구하는 것에 대한 참 흔치않은 미학적 비판인 것 같다.(환경측면에서의 비판은 많지만) 내가 환경을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다름아닌 미학적 이유다. 과학적,경제적으로야 이후 복구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한 번 훼손되어버린 것을 '미학적으로' 복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폐허의 아름다움'이란 '재건'과는 절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