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모비딕 현대지성 클래식 44
허먼 멜빌 지음, 레이먼드 비숍 그림, 이종인 옮김 / 현대지성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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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었네, 詩인 줄은
한 문장 문장 한 쪽 한 쪽이
이리 환상일 줄은

어려서 읽은 청소년용 '백경'
어른이 되어
미국인들의 최애 소설임을 알고
여기저기 인용돠는 몇 문장들을
가끔 귀동냥은 했지만

엄청난 분량과 뻔해보이는 주제
소설을 별 좋아하지 않는
메마른 취향 탓에 별 관심 없다가

드디어 이번 방학
한 번 읽어보자 가볍게 생각하고
그래도 딴 책들에 밀려
폰 속에만 있다가
남편 없는 며칠
혼자의 여행을 어디로 갈까
한참 궁리하다 결국
젤 좋아하는
산책과 독서와 맛있는 음식으로 싱겁게 낙찰

그래서 드디어
모비딕 뚜껑을 열었다




오메 오메 오메나
첫 장부터 이슈마엘은 나를 곧바로
휙 잡아채서 모가지를 덥썩 잡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 속으로 바다 속으로
마리아나 해구 속으로 안드로메다 속으로
빠뜨려버렸다!

밖은 봄날처럼 따뜻하고 새는 노래하는데
나는 배를 바닥에 붙이고
한 장 한 장을 침흘리며 탐닉한다

혼자의 정찬을 즐기러
롯데타워 스페인식당
내장탕에 와인 한 장 홀짝거리며
그리스인 조르바 같은 퀴퀘그를 껴안고 춤을 춘다
와인 한 잔 술기운을 주체 못하고
포경선 선창에서 비틀거리며

철학적 주제, 인생의 교훈 이런 것 말고
셰잌스피어처럼 디킨스처럼
한 문장 한 문장이 아름답단 걸
왜 아무도 안 가르쳐준거야?
소리없이 술주정을 해대며
책이 두껍다는 걸 너무도 좋아하며
헤 헤 헤 행복한 미소 짓는다

#자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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