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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심판
로스 킹 지음, 황주영 옮김, 강유원 감수 / 다빈치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면 도대체 무슨 책인지를 알 수 없는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저자 때문이다. 나를 피렌체로 이끈 책 '브루넬레스키의 돔'을 너무 재밌게 읽은 다음, 그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보니 이게 나왔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미술책, 그것도 인상파 화가들을 다룬 책이라니-
책의 두 주인공은 마네와 메소니에다. 마네야 너무 유명해서 그의 작품들이 금새 머리에 떠오르지만, 메소니에는 매너리즘 화가로 세부묘사에 뛰어난, 전쟁화를 그린 화가, 비슷비슷한 작품들 두세점 봤던 기억벆엔 없었다.
하지만 책은 위대한 메소니에와 초라한 마네로 시작한다. 당시 에콜 데 보쟈르의 영향력과 살롱전의 중요성은, 요즘으로 치면 유명대학 졸업장을 받고 직장을 잡기 위한 면허증(공무원 합격증, 변호사 자격증, 의사 자격증 등?)을 얻은 것에 비유할 수 있을듯 싶다. 그러니 나중엔 삐딱선을 타게 되는 미래의 인상파화가들도 당연히 살롱전에 목을 매달았다.
책에는 수많은 화가는 물론 나폴레옹, 비스마르크를 비롯한 정치가들도 시종일관 등장하는데, 바로 그 시대가 나폴레옹 1세, 2세, 3세,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 피의 일요일이 있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산업혁명, 증기기관, 철도의 시대이기도 했다.
저자는 메소니애의 왕홀이 어떻게 해서 마네에게 넘어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직접 말하고 있진 않지만, 정치경제문화의 격변기 속에서 일관된 철학이나 취향이랄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변덕이 심한 대중들의 지갑은 어디로든지 방향을 틀 가능성이 농후할 것이다.
마네가 후배 인상파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지만, 그것은 내가 알고 있던 소위 '시시각각 변하는 빛을 순간적으로 포착'하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그건 모네나 르노와르일 것이다) 마네는 현실을 이상화시킨 그림, 다시 말해 보기에 우아하거나 경건한 그림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추하고 지저분하기도 한) 모습, 정확성보다는 시의성 있는 그림, 그리고 참 고집스럽개도 심사위원이나 대중이 좋아하는 그림이 아니라 자기가 그리고 싶었던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다른 인상파화가들보다는 마네가 훨씬 부유해서 (금수저라서) 먹고 살 돈을 별로 걱정 안해도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예상치않게 재밌었던 부분은, 당시 살롱전에 출품한 그림들에 대한 신랄한 기사들이었다. 우리나라 전시회나 공연에 대한 리뷰에선 비판적인 기사를 본 기억이 없다. 띄워주기 일색이고 특히 현대미술은 도대체 본인은 알고나 하는 소리인지 모를 뜬구름 잡는 관념적인 단어의 나열 일색이라 때론 욕지기가 날 지경이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당시의 리뷰는 정말 노골적이고 대담하고 쉽고, 더 중요한 건 다양한 의견이 표출된다는 점이다. 기자나 평론가들은 자신의 의견에 자신이 있고, 독자들은 관용적이고, 사회 전체적으로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가능한 일이었을까? 하여간 부러운 구석이었다.
이 책은 절반은 미술책이고 절반은 역사책이다. 이름으로만 알던 화가들, 작가들의 성격이나 일화도 알수 있었고, 보불전쟁과 파리 코뮌 때의 보통 사람들의 일상도 알수 있었고, 두 나폴래옹(1세, 3세)의 인기와 처세술, 그림이 진지해서 사람도 그럴줄 알았던 쿠르베의 실제 모습, 들라크루와와 에밀 졸라의 영향력 등도 알 수 있었다. 화상이었던 뒤랑 뤼엘과 신흥 강국 미국이 인상주의파를 비로소 무대에 올려놓았다는 건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구체적인 과정을 더 소상하게 알 수 있었다. 두꺼운 책이고 너무나 많은 이름들이 나오고 중간에 나오는 그림들을 따로 찾아보느라 읽는데 오래 걸렸지만, 충분히 두 번 읽을만한 책이다. 역시 로스 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