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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평점 :


어슴푸레 알고 있었지만,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들을 마주할 용기를 내 봅니다. 누군가는 감당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 누눈가는 되고 싶지 않았던 노동에 대해 눈을 돌려요. 마음이 무겁고, 힘들지만 더는 외면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에 더티 워크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저자는 미국의 작가이자 탐사보도 전문기자입니다. 브라운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뉴욕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죠. <뉴요커>, <뉴욕 타임스>, <네이션>, <애틀랜틱 먼슬리>등 다양한 매체에 글을 기고했습니다. 1997년 월간지 <프로그레시브>기자로서 미국 정부가 인도네시아의 독재자 수하르토의 자국민 인권 탄압을 묵과하고 군사 지원을 도모한 정황을 폭로해, 그 공로로 제임스 애런슨 저널리즘상을 수상했어요. <더티 워크>는 그의 세 번째 저서로 출간 즉시 <시카고 트리뷴>등의 매체에서 주목할 만한 도서로 소개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책은 들어가는 글을 통해 더티 워크의 개념과 그 노동을 감당하는 노동자들의 감정적, 도덕적 내상을 간략하게 설명합니다. 이후 이어지는 글에서는 구체적인 더티 워크와 노동자들이 이어지고 있어요. 첫 번째로 교도소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비인권적인 폭력과 노동자들이 그려지고 2장에서는 간접적인 전쟁을 수행 중인 드론 조종사들이 나옵니다. 3장에서는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착취의 연결고리가 된 도살장 노동자들을 다루고, 4장에서는 시추선 생존 노동자를 둘러싼 모순된 시선들과 실리콘밸리의 어두운 이면을 다뤄요. 세계 최강 경제 대국 미국의 어두운 면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써도 되나 싶게 책은 사실적입니다. 하지만 또 그래서 아직 미국이 선진국이라는 말을 듣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닐 거라는 불길한 예감을 뒤로하고 책으로 더 깊이 들어갑니다.
‘불결하고 불쾌하지만 점잖은 사회 구성원들이 아주 모를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p18)
들어가면서 저자가 더티 워크에 대한 개념 정리를 해 줍니다. 여러 논문과 기사들을 인용하면서 개념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줘요. 홀로코스트, 유대인 말살을 휴스는 더티 워크라고 표현합니다. 즉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유대인들을 바라보는 관점과 유대인으로 인해 피해를 받는다는 의식이 유대인 학살을 묵인하고 동조하게 했다는 것이지요. 극단적으로 나타난 유대인 학살이 더티 워크였다면 현재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을까요? 우리 스스로 전혀 하고 싶지 않거나 심지어 아예 모르는 척하고 싶은 일을 그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위임하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평소에는 큰 문제 없이 굴러가다가 위기 상황이나(코로나 팬데믹) 사망사건 등을 통해 드러나요. 더티 워크를 감당하는 노동자들의 실상과 일반인들의 무관심이. 필수 노동자라는 말에 묶여서 잘 사는 사람들이 재택근무를 할 때, 수퍼카켓 계산원, 배달부, 물류 창고 직원 같은 수백만 명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얼마나 의존하고 있었는지 분명해졌죠. 고상하지 않다고, 혹은 불편하다고 사회의 이면에 숨겨 두었던 노동들이 선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희생의 노동 위에 살고 있었던 겁니다.
“사다리의 맨 아래층에 속했고” 사소하디사도한 불복종의 기색만으로도 위험을 자초할 수 있었다. 그러나 때로는 이것도 그저 합리화라는 생각이 들면서 죄책감 혹은 수치심이 엄습했다. (p85)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양형제도에 따라 정신 이상자들은 병원이 아니라 교소 도로 수감되게 됩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불편해하고 배척하는 본능을 갖고 있어요. 누군가 나와 다른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을 쳐다보는 것으로 불편함을 드러내죠. 미국의 경우는 사법제도의 개정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불편한 사람들을 교도소로 모두 보내게 됩니다. 물론 그들이 아무 죄도 없이 수감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정신병으로 인한 아주 사소한 경범죄를 저질렀지만, 병원이 아니라 교도소로 가게 돼요. 그곳에서는 이들에게 학대를 하거나 폭력을 당연하게 저질러요. 마치 그래도 되는 것처럼 당연하게요. 이곳에서 정신병 환자를 위한 전환 치료소에 상담자로 근무하게 된 해리엇을 인터뷰하면서 그 실상들을 낱낱이 알게 됩니다. 교도소의 정신병 전환 치료소 상담자는 흔히 말하는 좋은 일자리가 아니에요. 고학력에 재력 있는 집 자녀들은 절대 지원하지 않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죠. 해리엇도 경제 사정으로 상담사로 일하게 됩니다. 상담사는 재소자와 교도관 사이에서 누구 편을 들어야 할까요? 당연하게 재소자 편에서 정신 건강을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재소자들을 학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교도관들을 제지하거나 상부에 보고하지 못해요. 그럴 경우 은근히 재소자들만 있을 때 교도관이 자리를 비우거나, 상담사가 재소자와 함께 있을 때 감옥문을 천천히 열어서 위축되거나 공포를 느끼게 합니다. 이런 일들이 해리엇에게도 나타났다고 해요. 교도관들이 재소자를 폭행하고, 식사를 주지 않는 행태에 대해 상관에게 보고 했기 때문이죠. 이런 상황에서도 해리엇이 일을 그만 둘 수 없었던 것은 경제적인 사정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사정으로 인해 부당함과 폭력을 목격하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을 향해 죄책감을 갖고 자책하거나 폭력에 무감각해집니다.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버티더라도 도덕적인 상처와 수치감은 몸에 남아 흔적을 남기죠. 사다리의 맨 아래 있는 사람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함께 자신이 비겁하다는 생각이 힘들게 했다고 합니다. 더티 워크는 단순히 일이 힘들고 불결한 것을 떠나 그 일을 감당하는 노동자에게 감정적이고 도덕적인 상처까지 남깁니다. 이 상처는 혼자만의 몫이 아니라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치죠.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는 상처가 많아요. 손에, 팔에, 심장에, 마음에, 영혼에. 회 사는 날 일꾼이 아니라 폐물로 취급해요” (p291)
미국은 세계 최대 육류 소비 국가라고 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육류를 제공하기 위해 정육 공장과 도축장은 쉬지 않고 돌아가요. 이곳의 노동자들은 대부분 이민 노동자들입니다. 이주민들은 언어의 장벽과 학력으로 인해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힘들죠. 그래서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육체노동, 그것도 현지인이 하지 않는 노동에 종사합니다. 그들이 주로 하는 일은 닭 가공 공장입니다. 살아 있는 닭이 라인을 따라 해체와 발굴이 이루어지는 도축 공장입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육류를 생산하려면 임금은 적게 주고 일은 더 많이 해야 하죠. 그래서 노동자들은 화장실 가는 시간도 허락받아야 합니다. 쉬는 시간은 오전 오후 30분씩이고, 그 시간에 화장실이 넘쳐나서 화장실을 가지 못해 병이 생기고, 기저귀를 차는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이 도축 공장의 문제점은 일이 고되다는 것도 있지만, 중간 관리자들이 노동자들을 학대한다는 것이죠. 막말은 기본이고, 성추행도 빈번히 일어납니다. 그 외에도 살 있는 생명을 죽인다는 힘겨움이 있습니다. 닭은 우리가 먹기 전에 깨끗한 상태로 공장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닭을 가공하는 과정에는 피가 튀고, 내장을 긇어내고, 목을잘라야 합니다. 이런 노동의 연속은 노동자들에게 상처를 많이 남기죠. 인터뷰에 응한 그녀처럼요.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는(불안이 젖은 옷처럼 달라붙어 있을 때) 다정한 타인으로 인해 불안이 치유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더티 워크를 감당하는 이들에게는 누구도 다정한 타인이 되어주지 않아요. 심지어 회사까지 동요. 우리가 지금 누리는 편리하고 깔끔한 세상은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동위에 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465페이지에 달하는 책은 양이 많기도 하지만 내용의 무게로 인해 쉽게 읽히지 않습니다. 미국이 우리에겐 절대적이고, 미국이 하는 것은 다 옳다는 식의 사고가 만연한 우리나라에서 이 책은 쉽지 않습니다. 집 주위에 정신병원이 들어선다고 하면 시위를 합니다. 그러니 정신병원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해요. 그럼 정신병을 앓는 환자가 줄었느냐? 그건 또 아닙니다. 그러니 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미국의 경우는 교소 도로 갔다고 해요. 교도소는 죄를 지은 범죄자들이 수감되는 곳이니 정신병 환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적은 교도관들은 정신병 환자들을 일반 범죄자보다 더 하등 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폭력을 행사해요. 이런 일을 해결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자는 시스템의 문제라고 합니다. 경제논리와 정치논리로 약자들이 자꾸만 불행해지고 힘들어지는 것이. 그리도 또한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이 약자들의 아픔에 눈 돌리고 마음을 닫기 때문이라고 해요. 시추선에서 죽어간 노동자보다 기름을 뒤집어쓴 페리칸이 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하면서 울먹이는 시추선 생존자 가족의 이야기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화면으로 가득 찬 조도가 낮은 방에서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드론 전투사들은 어떤가요? 사이버 전쟁, 희생을 최소화하는 이상적인 전쟁이라는 광고 뒤에 누군가는 폭격으로 해체된 부모의 시신을 보자기에 싸는 아이들을 봐야 합니다. 같은 군인이지만 실전에서 투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도 천대받는 그들은 자신들이 본 화면으로 인해 일상생활도 힘든 지경이 됩니다. 미국이 선진국이 아니라는 명백한 사실들을 읽으면서 이것이 비단 미국만의 일일까 생각했어요. 몇 해 전 뉴스에 나왔던 청소노동자들. 사람들이 보기 싫어한다고 새벽에 청소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 생각났습니다. 또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기 위해 교육을 책임지는 대학교에서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를 어떻게 대했는지도요. 지금도 음식물 쓰레기차는 새벽에, 청소차도 새벽에 다닙니다. 시스템의 문제라면 시스템을 정비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시스템을 정비하기 위해선 인식이 필요하겠지요? 모두가 필요하다는. 일단은 이 책을 읽어 볼 일입니다. 그 인식도 인지에서 시작되지 않을까요? 책을 펼치고 힘들고 아프더라도 꼭 끝까지 읽어 볼 것을 권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희생의 노동위에 깔끔한 집을 짓고 살고 있으니까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만의 책임이 아닙니다. 이제는 우리가 응답할 때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