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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평점 :
절판


“외로움이란 자신만의 사적인 언어로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작가들의 외로움에 관한 고백이라는 책 소개가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외로움은 단순히 혼자라는 얄팍한 생각을 했는데, 작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썼는지 엿보고 싶었지요. 여성작가들이 거의 대부분인데, 남자들은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나 엉뚱한 생각을 하며 빈 의자에 슬며시 앉아 봅니다.
책의 저자는 무려 22명의 현직 작가들입니다. 이 책을 편집한 나탈리 이브 개럿은 자신의 외로움 경험을 서문에서 밝히면서 외로움을 통과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위로받기를 바란다고 했죠. 40대이며 아이들을 키우고 편두통과 사투를 벌이면서 편두통을 통해 외로움과 익숙해졌다고 합니다. 22명의 저자들은 각자의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간단하게 작가 소개가 나옵니다. 현직 작가이면서 화려한 이력을 소유한 그들의 탄탄한 실력이 외로움이라는 큰 주제로 묶여있죠. 작가들은 때로는 고독 속에 깊이 몸을 담그기도 하고, 때로는 소외감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자아를 발견해 갔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책이 아니라면 이렇게 다양한 작가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 행운을 누리다니. 종합 선물 세트 같은 책을 펼칩니다. 사적인 자신의 언어로 외로움을 얘기하는 그들을 만나러 가보실까요?
아무리 많은 남자들이 당신에게 자신을 그들의 언어로 설명해 보라고 요구할지라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삶이다. (p36, 홀로 걷는 여자, 에이미 션)
편집자는 왜 이 이야기를 책의 처음에 실었을까요? 누군가의 아내로, 어머니로 살면서 여성이 온전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선 얼마나 외로움을 견뎌야 할까요? 저자 에이미는 홀로 걸었던 릴리언 올링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삶을 다듬었던 순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릴리언 올링은 동유럽에서 추방당한 후 시베리아에 있는 약속의 땅을 찾아 떠난 고향 사람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 기나긴 여정을 시작했어요. 거의 3년에 걸친 여정은 보는 사람들에 따라 다르게 평가되지만, 저자 에이미는 릴리언의 여정을 보면서 자신도 자유롭기를 꿈꿉니다. 설거지를 하면서 그녀의 기록을 유튜브로 찾아봅니다. 남편은 TV를 보면서 식기세척기에 그릇들을 잘 넣으라고 잔소리를 해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요. 그 남편과 작별을 고하는 힘도 릴리언 올링의 여정을 보면서 혼자 감당해 낸 외로움의 결과입니다. 여전히 자신의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지만, 오늘도 자신만의 시간을 꿈꾸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갈구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시간들이 공간을 온통 채우고 있는 저에게는 생소한 느낌이 들어요. 혼자인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그녀를 보면서 배워요. 배우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면서요.
혼자 사는 삶은 언제나 머릿속으로 밀려들던 온갖 소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었고, 내가 더 책임감 있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 (p127, 기묘하고도 힘겨운 기쁨, 헬레나 피츠제럴드)
결혼하기 전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던 작가는 남편이 출장을 가면 기분이 좋다고 해요. 그 이유는 단순하게도 침대를 혼자 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넓은 침대를 크게 사용하면서 잠드는 것이 좋다고 해요. 그럼에도 남편과 함께 사는 것을 선택한 것은 혼자 보낸 시간들 덕분이라고 합니다. 책임감 있고 친절한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사소한 불편들을 감수하면서 남편과의 삶을 유지할 수 있다고요. 하지만 제목에서 외로움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완벽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기묘하고도 힘겨운 기쁨이라니? 정말 외로움에 대한 적절한 표현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할까요? 아니 나는 무엇을 하는지 돌아봅니다. 혼자 있지만, 혼자 있지 않습니다. TV를 틀어놓거나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스크롤을 끊임없이 올리죠. 그러면서 쉰다고 생각합니다. 온전히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고, 해본 적 없어서 불안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녀처럼 머릿속의 온갖 소음들을 차분하게 가라앉혀주는 경험을 위해 TV를 끕니다. 스마트폰을 멀리 둡니다. 아... 시간이 참 안가네요. 저 혼자인 자신에게 다정할 수 있을까요?
마음이 살아남으려 발버둥 치는 시기에 언어가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어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다. 우리의 생각은 마치 노예처럼 언어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P295, 두 개의 언어, 이윤 리)
어릴 때 베이징에서 살다가 미국으로 이민 온 저자의 말입니다. 자신이 가졌던 두 개의 언어와 그 언어를 통해 느꼈던 외로움이 나타나 있죠. 이제는 너무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서 잠꼬대도 영어로 하고, 작품은 처음부터 영어로 썼습니다. 사람들은 중국을 버린 것에 대해 질문하지만 2개의 언어를 쓰는 자신은 여전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받는다고 해요. 결혼 후에 베이징에 가서는 물론이고, 현재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발버둥 치는 마음을 갖고 살아내기 위해 언어로 글쓰기를 했죠. 잘되지 않는 글과 말로 자신의 생각들을 종속시키면서요. 언젠가 인문학자의 강의에서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만큼의 세상을 사는 것이라고요.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가 적으면 자신의 세상도 그만큼 작아진다고요.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기 위해 언어를 폭넓게 사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가 쓰는 단어는 몇 개나 될까 생각하다가 멈춥니다. 정말 작은 제 세상을 생각하고 웃어요. 그 안에서 잘난 척하고 있는 저를 깨달아요. 자신에게 다정하기 쉽지 않네요.
작가들의 글에는 솔직한 삶이 들어 있습니다. 여성 작가로서의 어려움들이 실려 있기도 하고, 코로나 팬데믹을 지나며 뉴욕이 텅텅 비어가던 시기도 나옵니다. 모두가 떠나갈 때 갈 곳이 없어 그곳을 지켰던 외로운 경험담이 솔직하게 실려 있어요. 또 글쓰기 지원 프로그램으로 가족들을 떠나 혼자 지내면서 글을 쓰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와의 추억, 아이들과 지내는 일상들이 소소하게 실려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우리와 다른 정서를 느끼기도 했고, 주제넘게 이런 것도 글이 된다고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한 무한의 경외심이 조금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그들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하지만 솔직하게 쓴 글들이 주는 힘은 강력했습니다. 자꾸만 꾸미고 화려하게만 쓰려는 저를 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어요. 그리고 살짝 부럽기도 했죠. 작가에 대한 지원이 많아서요. 글쓰기 지원 프로그램이 많았고, 그런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은 문화에 대한 인식이 높고 지원이 많다는 것이니까요. 사소한 것들이 글이 된다는 것을 또 한 번 깨닫는 시간이었죠. 혼자 있는 시간에 좀 더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냥 쉰다면서 스마트폰을 보는 일은 줄이고, 자신에게 조금 더 집중하고 들여다보기로요. 그래서 그들처럼 외로움이 나를 키우고 성숙시키는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단지 살짝 아쉬운 점은 그들의 정서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조금 생뚱맞은 느낌이 들었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런 책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도 가져봤지요. 사람 사는 거 어디나 다 비슷합니다. 누구나 외롭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들이 있어요. 그 시간들을 어떻게 만들어 가는지는 자신의 선택입니다. 당신이 혼자 있는 시간에 이 책을 읽어 보는 건 어떨까요? 자신에게 좀 더 다정하게 대하고 싶어지는 자신을 발견할 겁니다. 고요한 빈 의자에 따뜻한 담요를 덮고 앉아 보실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