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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자들의 죽음 -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ㅣ EBS CLASS ⓔ
고미숙 지음 / EBS BOOKS / 2023년 12월
평점 :

일상의 철학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 중입니다. 철학자들의 책을 읽다가 잠시 쉬어가는 느낌으로 읽은 책이죠. 소크라테스에서 붓다까지 현자들의 죽음에 대한 탐구가 실려 있다고 해요. 어렵지 않을까를 고민하다가 ebsbooks라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펼칩니다.
저자 고미숙은 고전 평론가입니다. 강원도 함백 출신으로 고려대학교에서 고전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현재 감이당 & 남산강학원에서 ‘밥과 친구와 생사의 비전’등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하고 탐구하고 있죠. 그동안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을 비롯한 열하일기 3종 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풍푸스>를 비롯한 달인 4종 세트, <동의 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를 비롯한 동의 보감 4종 세트, 근대성 3종 세트, 그 외에 <고미숙의 로드 클래식, 길 위에서 찾기>,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몸에서 자연으로, 마음에서 우주로 with 동의보감 & 숫타니파타>등 다수가 있습니다. 가장 최근에 낸 책으로는 <청년 붓다, 바람과 사자와 연꽃의 노래>가 있어요.
책은 죽음을 거의 다루지 않는 현대에 죽음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삶을 살아간 현자 8명의 죽음과 삶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첫 번째로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죽음의 연습으로 삼았고, 두 번째 장 장자는 천지라는 큰 집에서 편히 쉬는 것으로 죽음을 해석해서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도 슬퍼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세 번째 등장하는 마하트마 간디는 마지막 순간에도 성구를 외며 죽음은 영광스러운 해방이라고 봤고, 아인슈타인은 한 번의 생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으로 이생에 최선을 다했어요. 다섯 번째는 연암 박지원으로 어려서부터 죽음을 목격하며 죽음은 도처에 있다는 생각을 하죠. 여섯 번째는 정약용은 먼 훗날 역사가 증언해 줄 것을 믿으며 저작 활동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일곱 번째 예수님의 수제자 사리뿟따는 윤회를 끝내는 마지막 죽음으로 다시는 오고 감이 없는 완전한 마무리를 해요. 마지막 붓다는 삶이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용맹정진하는 표본을 보이며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전수합니다. 어떤 죽음을 맞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현자의 죽음을 따르고 싶나요? 저는, 간디의 죽음과 붓다의 죽음이 마음에 남습니다. 물론 죽음을 선택하여 담담히 걸어가는 소크라테스도 멋있지만요. 현자들의 죽음을 통해 오늘 내 삶을 비추러 떠나볼까요?

우리는 여전히 죽음에 대해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 말은 죽음 앞에서 진정으로 슬퍼할 줄 모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지금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제대로(!) 슬픔을 겪고 그 애도의 힘을 길어 올려 죽음이라는 심연과 마주하는 담대함일 것이다. (P66)
우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막연한 두려움이 더욱 두려움을 키우고 두려움으로 인해 죽음을 더 말하지 않는 악순환이 된다고 해요. 죽음을 세분화하고 속속들이 알아서 두려움을 없애는 것. 두려움에 잠식당하지 않는 온전하고 담대함으로 죽음을 똑바로 보고 마주하는 것을 통해 애도하는 것. 그 힘으로 남은 삶을 잘 살아내는 것이 죽음을 공부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죠. 완전한 이별, 다시는 볼 수 없는 죽음으로 가까운 사람을 보내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깨닫지 못했을 때, 아버지를 보낸 경험이 있습니다.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어 집에 가라고 했던 위암 말기였죠. 벌써 40년 전이니, 암에 대한 두려움도 죽음만큼이나 컸던 시절이었습니다. 이제 자신이 죽은 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의 일상이 어떠했는지 저는 기억하지 못해요. 한참을 안타까운 눈으로 어머니를 보던 시선, 아픔으로 힘겨워 할 때도 우리를 곁에 두려고 했던 마음이 빛바랜 사진처럼 흐릿합니다. 다시는 아버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당하듯이 맞았던 죽음이죠.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안타까움만 가득 안고 아버지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채웠을까요? 암이라는 사실, 지독한 통증, 차라리 통증이 없는 곳으로 가고 싶은 유혹이 들 때마다 어린 자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견뎠을 겁니다. 이제 나도 암과 죽음을 마주해요. 아버지의 죽음은 이제 나의 죽음으로 다가와 있죠. 소크라테스처럼 담담하게, 장자처럼 웃으면서 죽음을 맞을 수 있을지 묻습니다. 나 자신에게요.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은 순간에서 순간으로, 어제에서 오늘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설령 늙고 병들어 육체가 소멸한다 해도 ‘내적 성장’은 멈추지 않겠다는 것이다. 한없이 겸손하되 단호한 결기가 느껴진다. (p112)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저항 운동의 대명사이자 정치적으로 단식을 처음 시도한 사람. 인도의 아버지. 많은 수식어가 있지만 간디를 잘 알지 못했어요. 이번 책을 통해 만난 간디는 자신의 삶을 무서우리만큼 절제하고 통제하면서 하루하루 내적 성장을 향해 나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 초인 같은 사람이었죠. 자신에게 철저하면서도 타인에게는 사랑으로 대하는 간디의 삶은 어쩌면 현자라기보다 성자에 가깝습니다. 비폭력으로 폭력에 맞서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을 희생하고 괴롭히는 것뿐이었죠. 약 320킬로미터에 달하는 대장정의 길을 24일간 걸으면서 삶을 이야기하고, 물레를 한 시간씩 돌렸습니다. 메시지는 영국의 소금세에 저항하라는 것이었죠. 간디가 이렇게 걸으면서 한 시위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고, 영국을 떨게 했어요.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굶기, 단식입니다. 최초의 정치적 단식은 1918년 아마다바드시의 공장 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켰을 때 시작되어 노동자와 회사 양측 교섭에 상당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이후의 목숨을 건 대단식도 불사하면서 자신의 비폭력 저항을 이어가요. 이런 힘과 능력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육체가 병들고 늙어도 내적 성장은 멈추지 않겠다는 결기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요? 느리지만 꾸준하게 계속 나아가는 것, 그것도 성장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건 대단식 도중 암살자의 총에 쓰러집니다. 총을 가슴에 세발 맞고 간디가 한 말은 “오, 라마”(신이시여) 였죠. 평소 읊조리던 마트라였어요. 육신이 늙고 병들고 심지어 소멸한다고 해도 멈추지 않는 내적 성장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말이 아니었을까요? 근데 육체가 소멸해도 내적 성장을 멈추지 않을 방법이 있을까요? 간디가 아닌 평범한 저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암살자를 향해서 “오, 라마”를 외칠 수 있는 간디가 죽음을 뛰어넘은 것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
죽음을 선택한 소크라테스의 마음과 생각을 우리는 정확히 알지는 못합니다. 단지 그의 남겨진 말들을 통해 유추하고 생각할 뿐이죠. 다른 현자들의 죽음도 그렇습니다. 아내의 죽음에 장구를 치고 웃었다는 장자, 가까이 죽음을 경험하며 살았던 박지원, 거듭되는 윤회의 마지막 죽음을 향해 가는 붓다와 사리뿟따, 천주와 군주 사이를 오갔던 정약용. 유일한 구원은 유머뿐이라던 아인슈타인과 내적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삶이 자신의 메시지라던 간디. 죽음은 없는 것처럼 살아 간 현자들이 아니라 죽음에게 질문하고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죽음과 함께 살아간 사람들이죠. 이들의 죽음 중 어떤 죽음으로 최후를 맞을지를 생각해 봐요. 저는 다른 사람들처럼 뛰어나지 않으니 소크라테스처럼(이분도 엄청 뛰어난 분이신데?) 어제처럼, 늘 그랬던 것처럼 죽음을 맞고 싶어요. 죽음이 다가왔다고 유별나게 행동하거나 호들갑 떨지 않고, 늘 그랬던 어제의 루틴으로 평상시와 똑같은 하루 중에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두려움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상을 지켜가면서 죽음에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남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요. 주위 사람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감사한지를 고백하듯 말하면서요.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붓다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제자들을 가르치고 일깨우는 사명도 해보고 싶습니다. 마지막까지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전하며 다른 사람들을 도우는 삶이 되고 싶어요. 가진 것이 없어서 나눠줄 것도 작고 보잘것없겠지만, 천하보다 큰 한 사람으로 천하보다 큰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죽음 앞에서든지, 하루의 일상에서든지. 비로소 희미하게 깨닫습니다. 삶을 더 잘 살기 위해 죽음을 배우고 마주한다는 말이 무엇인지를요. 죽음은 박지원에게만 도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도처에 있어요. 그 죽음을 자신만의 정의로, 개념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두려움에 휘둘려 죽음을 모른척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닥치는 쓰나미처럼 되지 않으려면요. 당신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