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펜하우어의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38가지 기술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최성욱 옮김 / 원앤원북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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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신을 참지 못하는 날이 있습니다. 방학이라 집에 있는 아이들 챙기고 돌아서면 밥, 돌아서면 밥하는 일상을 보내다가 무료함이 덮치는 날이죠. 서평 카페에 들어가서 서평단 모집글에서 책들을 살펴봅니다. 자세히 읽지도 않고, 제목만 보거나 저자만을 보고 신청을 해요. 발표까지 기다리면서 설레기도 하고, 책을 배송받을 때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내죠. 분량도 착하고 아주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 쇼펜하우어의 기술을 전수받으러 떠나봐요.


저자 아르투어 쇼펜하우어는 베를린대학교 재직 시절, 젊은 강사로서 헤겔에 맞서 강좌를 개설했다가 처참하게 실패하자 대학 교수직을 포기하고 연구와 집필에 몰두한 채 28년 동안 프랑크푸르트에서 은둔 생활을 했습니다. 말년에는 저작을 손질하며 지내다가 1860년 생을 마감했죠. 헤겔을 중심으로 한 독일 관념론이 맹위를 떨치던 19세기 초반 이에 맞서 의지의 철학을 주창한 철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어요. 칸트의 인식론과 플라톤의 이데아론, 인도철학의 범신론으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그의 사상은 독창적이었으며 니체를 거쳐 생의 철학, 실존 철학, 인간학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책은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38가지의 기술이 4부에 나뉘어 실려있어요. 1부는 강하게 공격하는 기술로 첫 시작은 동기부여를 통해 의지에 호소하는 방법을 시작으로 12가지가 실려 있습니다. 2부는 더 강하게 반격하는 기술로 상대방의 주장을 최대한 넓게 해석해 과장하도록 한다는 13번째 기술로부터 상대방의 궤변에는 궤변으로 맞서라는 23번째 기술까지 실려 있죠. 3부는 결론을 이끌어 내는 기술로 상대방이 자신의 결론을 미리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24번째 기술부터 몇 가지 전제들에 대한 시인만으로도 얼른 결론을 내려 논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30번째 기술까지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 4부에서는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술로 반격당한 부분을 세밀하게 구분해 위기를 모면하는 31번째 기술부터 최후의 수단인 인신공격을 하는 방법까지 실려있죠. 옮긴이의 말에서는 논쟁에서 이기는 것을 최우선으로 다루고 있어 비겁한 공격이나 상대를 화나게 하는 방법, 인신공격까지 실려 있어 조금은 불편할 수 있다고 해요. 논쟁이 싸움이 되지 않을까 살짝 염려하면서 머리로 하는 검술인 토론을 쇼펜하우어의 비결을 가지고 입장합니다.


논쟁이 어렵고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상황에서 자기 의견을 정확하면서도 분명하게 전달하려면, 상대방에게 질문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p51, 7-상대방의 대답을 근거로 자기주장의 진실성을 확보한다)

논쟁에서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상대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공감과 경청의 첫걸음입니다. 잘 듣고 있다는 사인이기도 하고, 상대의 말을 잘 이해하기 위한 적극적인 듣기인 거죠. 논쟁에서도 상대방에게 질문함으로써 상대방의 대답을 근거로 내 주장의 진실성을 확보해 우위를 점할 수 있습니다. 논쟁이 어렵고 형식적으로 진행될 때는 상대뿐 아니라 나도 논점에서 벗어나기 쉬워요. 핑퐁 게임처럼 주고받는 대화에서 조급함으로 아무 말을 하거나 전혀 상관이 없는 말을 할 수도 있죠. 그럴 때를 잘 포착해서 상대의 허점을 질문을 통해서 밝히고 자신의 진실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후엔 쉽게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게 된다고 해요. 무엇이든지 압도적으로 이긴다는 것은 상당한 유혹입니다. 그것이 말도 안 되는 논쟁이라고 해도 말이죠. 압도적으로 이기고 싶은 사람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혼자 웃습니다. 나는 당신이 모르는 비밀 병기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생각으로요.


즉 다치는 대로 아무하고 나 논쟁을 벌여서는 안 되며, 자신이 잘 알고 있고,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지 않으며, 어쩔 수 없이 그랬다면 매우 창피하게 여길 만큼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들하고만 토론을 해야 한다. (p168, 38-인신공격은 최후의 수단이다)

맨 마지막 기술입니다. 인신공격도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여 논쟁에서 이기라고 말하죠. 상대를 화나게 하는 기술을 읽었을 때까지는 괜찮았는데, 인신공격까지는 수용하기 힘듭니다. 논쟁이 뭐라고 인신공격까지 해 가면서 이겨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요. 그런 마음을 마지막에 조금은 달래 줍니다. 아무나 붙들고 논쟁을 해서 압도적으로 이기려고 기술을 쓰지 말라고요. 이치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하지 않고, 자신이 틀렸다면 매우 창피하게 여길 충분히 이성적인 사람과 논쟁을 하라고 말이죠. 권위로 내리누르지 않고, 근거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고, 상대방의 합리적인 근거에 대해서는 귀를 기울이고, 그것에 동의할 수 있는 사람과 논쟁을 벌이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랑 논쟁을 하려면 일단 내가 잘 분별할 수 있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분별력을 가지고 논쟁을 벌일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면 아마 최후의 수단인 인신공격까지는 가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말이 통하지 않는, 자신의 주장이 틀렸을 때도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과 논쟁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야 깨닫다니, 안타깝지만 앞으로의 무모한 논쟁은 줄일 수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봐요.


쇼펜하우어는 병적으로 우울증이 아주 심했다고 합니다.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듯한데, 의심도 많았지요. 불이 날까 봐 이층 침대에서 자지 않았고, 이발사한테도 면도를 맡기지 않았으며, 침대 맡에 항상 권총을 두었다고 합니다. 이런 성향을 가진 그여서 열등감도 크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메이저 급인 헤겔의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그의 주장을 헛소리며 사기극이라는 것을 밝히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메이저급인 헤겔을 이기지 못하고 보기 좋게 당해요. 베를린 대학의 강의를 헤겔과 같은 시간대로 했다가 수강생이 몇 명 없어 한 학기 만에 그만뒀죠. 이런 열등감으로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법이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철학자의 생각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떤 조건에서도 논쟁에서 압도적으로 이기는 방법이 나오거든요. 자신에게 유리한 비유를 신속하게 택하고, 말싸움을 걸어 무리한 주장을 유도하고, 상대방을 화나게 만들어 올바른 판단을 방해하라고 하죠. 상대가 뜻밖에 화를 낸다면 그 부분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전문 지식이 부족한 청중을 이용해서 반박하기도 하고, 틀린 증거를 빌미 삼아 정당한 명제까지도 반박하라고 하죠. 그리고 마지막에는 인신공격까지 말해요. 이 책은 정말 논쟁에서 어떤 상황과 여건을 막론하고 압도적으로 이기는 방법 38가지가 실려있습니다.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뻔뻔한 주장도 하면서 논쟁에서 이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요. 이렇게까지 해서 이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읽으면서 불쑥불쑥 들기도 했지만, 쇼펜하우어의 병적인 우울증을 감안하면 조금은 이해됩니다. 논쟁을 통해서라도 이기고 싶은 것은 쇼펜하우어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욕망이니까요. 그 방법이 어떠했든지 이긴 후의 성취감과 우월감은 아주 달콤하고 자존감을 올려놓죠. 약간 찝찝하지만요. 몇 가지 거슬리는 것들을 빼고 나면 실제로 논쟁에서도 유용하게 쓰일 기술들이 많습니다. 위기에서 탈출하는 법을 다른 4부의 내용들은 실제로 사용하면 효과가 좋을 것 같아요. 어떤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결국 읽은 독자의 몫입니다. 이성적으로 부끄럼을 아는 논쟁자가 되기 위해서 기술도 가려가면서 써야겠지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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