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화가
미셸 들라크루아 지음 / 좋은생각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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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머리가 복잡하게 생각으로 얽힐 때 잠깐 멈추는 심정으로 펼친 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기획 전시에 맞춰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사실 잘 몰라요. 작가도 그림도. 하지만 어떤가요. 말로 꼭 짚어 말할 순 없어도 그림이 말을 걸어오리라 믿습니다. 문득문득 복잡한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오는 멈춤을 줄 거라고요. 90년이 넘는 인생을 살아오며 영원히 화가로 남겠다는 작가의 온화한 미소에 눈을 맞추며 아름다운 파리로 떠납니다.


미셀 들라크루아는 1933년 파리 14구에서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파리에서 보낸 파리지엥 화가로, 현재는 노르망디의 도빌 근처 전원 주책에서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1941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 미셸은 일곱 살이었고 이 시기에 친척들이 살고 있는 시골 마을 이보르로 피난하여 전쟁을 겪어냈죠. 그는 이 시기를 가장 행복했던 유년의 기억으로 꼽아요. 미셸은 1970년 37세부터 미술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그 무렵 전쟁 이전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리고 지금의 화풍을 성립했습니다. 그는 1990년부터 40여 년간 전업 화가로서 지금까지 작품을 그려오고 있죠.

책은 4장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1장은 파리의 아름다운 시절을 그린 벨 에포크의 그림이 실려 있고 2장은 여름방학의 가장 행복했던 어린 시절이 담겨 있어요. 3장은 파리를 배경으로 아름다운 연인들의 모습이 담겨 있고, 4장은 영원히 화가로 살아가고 있는 그림들이 실려 있죠. 말하듯이 실린 그의 글은 과하지 않게 그림과 함께 아름다운 또 하나의 작품처럼 책을 이루고 있습니다. 파리가 가장 아름답고 평화로웠던 그때, 벨 에포크의 그림 속으로 천천히 마음을 모읍니다.


누군가 인생이 아름답냐고 묻는다면, 저는 아니라고 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림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책의 맨 처음 문장)

박제된 찰나의 화려한 행복을 과도하게 먹고사는 요즘입니다. 누군가의 화려한 한때가 sns 속에는 영원할 것처럼 반짝이죠. 그런 일상들을 살다 보면 인생은 아름다운데, 나만 불행한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무언가를 잘 못한 것 같고, 잘못 산 것 같은 생각이 들죠. 90년을 넘게 산 화가는 말해요. 인생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고요. 단지 아름답게 보이는 어떤 일이 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림이 있었기에 아름답지 않은 인생도 견디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거죠. 2차 세계대전을 경험했고(비록 어렸지만), 경제 성장과 위기를 경험해 오면서 그림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고, 아름다운 한때를 발견하고 남길 수 있었던 겁니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난의 연속이고 각자의 고난과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죠. 나만 힘들거나 불행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가, 인생 자체가 고난인 겁니다. 처음 개념이 잘못 잡힌 건지도 몰라요. 인생은 원래 아름답지만은 않은 거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견딜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여정인지 모릅니다. 작가는 감사하게도 일찍 그림을 만났고, 재능을 발견했으며, 오래도록 해올 수 있었어요. 꼭 찾지 못한다고 해도 너무 자신을 탓하지는 말자고 아름다운 파리의 그림을 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합니다.


(파리의 심장)

파리의 심장이라 불리는 에펠탑의 야경입니다. 전체적으로 푸른빛이 감도는 밤 풍경인데도 중하고 아늑하게 느껴져요. 그림의 맨 왼쪽 테라스에는 연인이 키스를 하고 있어요. 이런 디테일이 미셸의 따뜻한 마음처럼 느껴져서 좋았죠. 파리의 센 강의 다리도 세어보고, 등대처럼 빛나는 에펠탑의 불빛도 눈으로 따라가 봅니다. 한 번도 직접 본 적 없는 파리의 풍경이 이국적이라기보다는 포근하고 따뜻하게 다가와요. 지나가는 배, 점점이 박힌 불빛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가장 평화롭고 문화적으로 융성했던 벨 에포크 시기의 파리가 마음에 별처럼 새겨집니다.


평생을 그림과 함께 해 온 작가의 기품이 느껴지는 책입니다. 그림을 잘 모르는 제게도 그림은 따뜻하고 포근해서 복잡한 머리와 마음을 가만히 덮어주는 흰 눈 같았죠. 어린 시절 산골 마을의 겨울 풍경이 그림과 함께 떠오르기도 하고, 사람 사는 곳은 프랑스의 파리나 우리나라의 시골이나 비슷하다는 생각도 했어요. 하긴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겠지요. 먹고살고, 사랑하고 자고, 좋아하는 일과 의미 있는 일을 하고요. 건강이 좋지 않았다는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전시가 잡히자 작업실을 새롭게 마련하고 그림을 왕성하게 그렸다고 합니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그림에 집중하는 작가의 모습을 사진으로 만나는 것도 좋았어요. 요즘은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변하고 어제 좋았던 일이 오늘은 아닐 수도 있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오래도록, 아니 영원히 화가라는 사람의 그림과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오래 시간과 공을 들인 일들이 가치를 잃어가는 요즘, 미셸의 그림은 말해요. 오래도록 봐도 좋은 것이 있다고요. 표시 나지 않는 일상을 오래도록 가꾸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는 책입니다. 인생은 아름답지 않아도 당신으로 인해 누군가는 행복하고 아름다울 거라고요. 당신이 그리는 일상의 그림 위에 이 책을 가만히 놓습니다. 아름답다는 말 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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