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2의 건축가’들
김광현 지음 / 뜨인돌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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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건축을 약간 다른 시점으로 보게 된 것은 유현준의 인문기행을 읽고 나서부터입니다. 제게 집은 그냥 생활하기 편리한 곳, 쉴 수 있는 곳 이상의 의미는 없었죠.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나서는 건물의 외향들을 찬찬히 보기 시작했고, 사소한 디테일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만남에서 이 책까지 오게 된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600쪽이 넘는 분량은 알지도 못한 채로요. 건축의 시작은 건축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깁니다.


저자 김광현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명예교수님입니다.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거쳐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죠. 2018년까지 42년 서울시립대학교와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건축의 공동성에 기초한 건축위장과 건축 이론을 가르치고 연구했어요. 한국건축가 협회 건축상을 두 차례 수상했고, 대한 건축 학회상(2002), 가톨릭미술상 본상(2005), 서울대학교 훌륭한 공대 교수상(2012), 대한민국 생태환경건축대상(2013), 한국건축문화대상 ‘올해의 건축문화인상’(2018) 등을 수상했습니다. 저서로는 <한국의 주택-땅에 새긴 주택>,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 <건축 강의>,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들>, <건축, 모두의 미래를 짓다>, <성당, 빛의 성작>등이 있습니다.

책은 건축가와 건축물에 비해 소외되어 있는 건축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모두 36개의 건축물과 건축주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실려있습니다.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은 명작은 행복한 신화였는가라는 제목으로 사보아 주택의 가족들이 행복했는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요. 2장은 근대 주택의 원점을 지은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기쁨, 내부, 거주, 정원, 생활이라는 주제에 맞는 건축물과 건축가, 건축주에 대해 실려 있습니다. 3장은 역사에 남은 ‘제2의 건축가’들이라는 주제로 4개의 명작 건축물과 건축주에 대해 나오고 4장은 루이스 칸의 건축주와 사용자들이라는 제목으로 5개의 건축물과 건축주가 실려 있죠. 5장은 공간은 생산된다는 주제로 건축 공간이 거주자와 함께 생산되는 것을 말하고 6장은 미래를 짓는 지붕이라는 제목으로 건축의 시작이 되는 지붕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마지막 7장은 모든 이들이 지은 건축이라는 제목으로 건축가와 건축주 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지은 건축의 나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요. 그럼 20세기 가장 위대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사보아 주택으로 떠나 보실까요?


그렇게 된 더 큰 이유는 르코르뷔지에가 그레이의 놀라운 재능에 질투를 느끼며 이 주택을 역사에서 지워버리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E.1027’은 오랫동안 르코르뷔지에의 작품으로 오인되었다. 탁월한 여성 건축가에 대한 거장의 질투, 그녀를 무시하는 계산된 행위, 그리고 고루한 남성우월주의 때문에 ‘E.1027’이라는 걸작은 결국 건축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P103)

20세기 건축의 문을 연 르코르뷔지에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사보아 주택의 건축주와는 오래도록 마찰을 빚어 소송까지 진행했고, 하자 보수도 잘 들어주지 않아요. 갈등 사항에서 르 코르뷔지에의 태도는 무례하기 짝이 없어요. 그런 르 코르뷔지에가 탁월한 여성 건축가를 질투해서 상식에 벗어난 무례를 저지르고(집주인의 동의도 없이 거실의 흰 벽에 동성애를 연상시키는 그림을 그리고 선물이라고 함), 자신이 설계하지 않은 건물이 자신의 설계로 오해받도록 유도하면서 밝힐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인간성을 가진 르 코르뷔지에이니 그가 지은 건축물에서 사는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았을 겁니다. 자신의 건축가로서의 명성과 건물에만 신경을 썼으니 건축주가 편안하거나 행복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과거부터 지금까지 남성은 항상 우월한 지위를 갖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적 모든 면에서요. 그런 힘을 갖고 있는 남성이 여성을 함께하는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한다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겁니다. 실력으로 말하는 건축분야에서도, 칭송받는 거장이라는 사람도 쉽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지금이라도 아일린 그레이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바라간은 평온한 감정과 안식을 주는 집, 마음이 머무는 집이 되려면 반드시 정원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정원이야말로 공격적인 현대 생활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정박지(碇泊地)이기 때문이다. (p192)

정원을 건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루이스 칸의 마지막 작품이 된 길라르디 주택에는 자카란다 나무가 담장 안에서 집을 지키고 있습니다. 루이스 칸은 저택 설계를 의뢰받았을 때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해요. 하지만 건축주인 길라르디가 멋진 자카란다 나무가 있다고 설득을 하고, 직접 나무를 본 루이스 칸이 승낙을 했다고 합니다.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 할지라도 작은 중정을 만들어 정원을 만들었고,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건물에 진심이었죠. 마음이 머무는 집이란 어떤 집일까 생각해 봅니다. 거의 대부분이 아파트인 요즘엔 정원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법으로 의무적으로 조경을 하도록 하지만 공공의 정원과 법으로 정해진 정원은 나만의 정원이 아니죠. 땅이 자산이 되는 우리나라에서 정원은 너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닐지. 그래서 우리가 더욱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은 아닌지 묻습니다. 정원이 제 가치를 갖게 되기를 바라봅니다.


학교에서 얻은 물을 집에 가져갈 때는 예전처럼 무거운 물통을 들지 않고, 50리터의 물을 쉽게 옮길 수 있도록 고안된 도넛 모양의 ‘큐(Q) 드럼’을 신나게 굴리면서 갔을 것이다. (p488)

건축의 시작은 지붕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지붕만 있는 빗물 코트는 학교 학생들을 더 열심히 공부하게 하고, 출석률을 높여주고, 컴퓨터도 배울 수 있게 해줍니다. 케냐 중앙의 고원 지대 니에리에 있는 음웨이가라는 시골 마을이죠. 빗물 코트를 통해 빗물을 모아 식수를 해결하고, 태양광을 이용해 전기까지 생산합니다. 코트 아래는 농구 코드로 조성되어 아이들의 체력 단련에도 쓰인다고 해요. 주민 모두가 빗속에서 환호를 지르는 사진을 저자는 가장 아름다운 사진이라고 합니다. 건축이 인간을 생각하고 쓰는 사람들과 자연환경을 최우선에 두면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다고 하면서요. 건축은 무엇인가?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적합한 지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6개의 건축물들과 건축가, 건축주의 이야기가 실린 책은 분량이 어마어마합니다. 주석을 빼고 630여 페이지에 달하고 컬러풀한 사진과 도면까지 실려 있어 건축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참고서 같은 책이 될 것 같아요. 물론 일반인들도 건축가와 건축주 사이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는 재미와 세기의 명작이라 불리는 건축물을 감상하는 재미를 선사하죠. 생활하는 집으로서의 임스 주택의 아름다움, 낙수장의 주인은 사는 내내 보수하고 수리하면서 행복하게 낙수장을 만들어 가죠. 그래서 건축물은 건축가만의 작품이 아니라고 알려줍니다. 건축주는 건축가에게 건축을 의뢰하는 사람 이상으로 건축에 참여하고 함께 만들어가야 해요. 건축가에 대한 신뢰와 건축물을 완성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 건축가의 열정과 재능이 합쳐져 명작이 탄생합니다. 하지만 굳이 명작이 아니라도 생산하는 공간으로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공간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은 다름 아닌 나이니까요. 거실의 텅 빈 벽면을 바라보며 생각해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봐야겠다고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내 공간을 향한 애정과 열정을 가지고서요. 이렇게 시작된 나만의 집을 위하여! 함께 해 보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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