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말 공부 - 사람과 삶, 마음을 잇는 어휘의 힘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 지음 / 상상정원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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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예리하게 벼린 칼날 같은 마음이 수시로 상처를 받습니다. 예민하기 때문에 모를 수 없고, 모를 수 없어서 상처받아요. 그런 마음을 단단히 하고 싶은 마음에 펼친 책이죠. 자신의 행동에 책임지는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말을 공부하는 심정으로요. 어른이 된다는 건 살수록 어렵고,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단순히 나이만 먹는 어른이 아니라 진정한 어른이 되고 싶어 말을 공부해요. 이 선택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저자는 권재우, 김강수, 박길훈, 윤승용, 이정수, 조배식입니다.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에서 다수의 저자와 함께 만든 책이죠. 이오덕김수업교육연구소는 우리말과 살을 가꾸려 했던 이오덕. 김수업 선생님 뜻을 이어가고자 학교 현장에서 실천하는 모임입니다. 아이들 삶을 가꾸고 북돋는 교육, 말과 글과 삶이 함께 이어지는 교육을 위해 애쓰고 있어요. 지은 책으로는 <온작품읽기- 우리 교실 책 읽기의 시작>, <온작품읽기와 온배움씨>, <교사, 읽고 쓰다>가 있고, 엮은 책으로는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가 있습니다. 책은 일상적인 말의 말밑(어원)을 찾아가며 쓰임새까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죠. 많이 들었고, 익히 쓰고 있던 말이 전혀 다른 뜻이라는 것도 보여주고, 잘못된 쓰임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자연과 상황에 따른 말들, 사물을 떠나 사람에게까지 적용되는 흐름까지 짚고 있어요. 친절한 설명을 듣는 듯한 아름다운 우리말 속으로 떠나 봐요.


아름답다는 ‘알밤’과 ‘답다’가 나란히 이어진 말입니다. 우리 겨레 사람들은 알록달록 겉으로 드러난 빛깔이나 크고 우람하다 떠벌리는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았지요. 티 없이 새하얀 빛깔, 시원하고 달달하며 고소한 맛, 무엇보다 깊숙이 숨어 있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알밤이야말로 아름다움의 참 모습으로 여겼습니다. 우리 겨레가 만든 말 중에 가장 아름다운 말인지도 모릅니다. (p47)

아름답다는 말을 품고 살았던 적이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아름다울 것 없는 시간과 상황들 속에서 아름다움을 갈망했었죠. 가진 것이 없어서, 혹은 보이는 것이 없어서 더 아름다움이라는 것에 집착했는지도 몰라요. 그러다가 우연히 책에서 읽었던 아름답다의 말밑이 마음에 새겨졌어요. 아름답다는 것은 앓은 다음이라고요. 이 책을 읽으니 그 말밑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작가의 문학적인 표현을 사실이라고 믿고 있었을 수도 있고요. 크게 보면 알밤과 답다가 나란히 이어진 말이라는 설명과 앓은 다음이라는 말이 다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둘 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니까요.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아름다움은 어떻게 빛을 발할까요? 사람의 태도에 담기는 것 같습니다. 어떤 상황이나 여건이 아니고, 그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의 태도에 아름다움이 담기는 것 같아요. 아주 바쁘고 분주한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누군가의 어깨를 치고 그냥 갈 수도 있고, 그렇지만 미안하다고 말할 수도 있죠. 복잡하고 마음 아픈 일이 마음을 온통 채우고 있어도 누군가를 향해 웃어 줄 수 있는 태도 말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알밤 다운 아름다움을 갈망하고 있지만, 조급하지는 않아요. 대부분 드러나지도 않고, 알아차리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나는 내 태도에 아름다움을 담을 겁니다. 때로는 지치고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 알밤의 아름다움을 기억하면서요.


덜 여문 것을 말리다 보면 오그라들기 쉽습니다. ‘오그랑쪽박’입니다. 부엌에 두고 쓰지만 거기서도 천대받습니다. 사람 형편도 그럴 때가 있지요. 오그랑쪽박 신세라며 절망합니다. 오그라들어도 바가지는 바가지입니다. 언젠가 쓰임을 생각하며 끈을 놓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p119)

전시된 찰나의 행복 같아서 sns는 하지 않습니다. 과정의 힘겨움과 지난한 노력들이 모두 삭제되고 오로지 찬란한 결과만 남아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거든요. 그 반짝임을 보면서 나는 왜 안될까 자책하게 되고 마음이 심란해집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도 충분히 오그랑쪽박 같은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왜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사람 같을까요? 그 사람은 그 사람, 나는 나인데 예외나 다름을 줄여 성공이라는 공식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실패자가 되거나 오그랑쪽박신세가 되는 거죠. 오그랑쪽박신세여도 바가지는 바가지라고 합니다. 덜 여문 것을 말리면 오그라들고 오그라든 바가지 중에서도 작은 바가지여서 오그랑쪽박이죠. 너무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는 조급함을 다스려야 합니다.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비교를 통해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해야 하는 거죠. 말은 쉽지만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가끔은 포기하고 싶고, 편법을 쓰거나 반짝하고 빛나고 싶은 유혹도 많아요. 그렇지만 오그랑쪽박이 되지 않으려면 충분히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오그라들지 않습니다. 지금 현실에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한 번 더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오그라졌어도 바가지는 바가지이듯이 나는 나의 쓰임이 있을 겁니다. 그 쓰임이 어떤 것인지, 나의 본질이 무엇인지 오그랑쪽박을 읽으며 생각합니다.


바람이 불어보는 방향에 따라 이름이 다릅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밑말을 알게 되고, 밑금이 사라진 자리에 밑줄이 자리 잡은 이유를 배워요. 시간을 나타내는 말 ‘제’를 만나고, 이제는 거의 사라진 올제(미래)도 새롭게 만납니다. 생선을 뜻하는 ~치, 맛이나 모양이 떨어지는 것에 붙이던 ‘개’, 곤충의 움직임을 보고 이름을 지었던 메뚜기, 방아깨비, 나비도 만나요. 이런 뜻이 있었구나 하고 깨닫고 이렇게 써봐야지 생각도 했죠. 당연히 한자 말일 거라고 생각했던 말이 순우리말인 경우도 있고, 우리말이라고 생각했던 말이 한자 인 경우도 있었어요. 책에서 특히 좋았던 것은 그 말의 쓰임을 예를 들어 설명해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러이러한 경우로 쓸 수 있다고 설명을 해놔서 단순히 말을 알리려는 것이 아니라 말을 살리는 책 같아요. 말에도 생명이 있어서 사람들이 쓰지 않는 많은 죽습니다. 죽은 말들 중에는 사람과 삶, 마음을 잇는 어휘들도 많고요. 당연한 듯이 영어를 섞어 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말을 좀 더 써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알아야 하고요. 한 권의 책이 당장 무엇을 바꿀 수 없을지는 몰라도 읽은 한 사람은 변화 시킬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오늘 이 책을 읽은 나부터 우리말을 조금 더 쓰고 정확한 의미를 사용한다면 최소한 나를 아는 사람들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겉으로 드러난 알록달록한 화려함이나 크고 우람하다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숨겨져 있어서 발견하기 어려운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을까요? 어른의 말에 의해서. 봄바람 같은 말씨에서 신바람 나는 삶이 펼쳐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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