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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 내가 생각하는 것들 -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인터뷰집
애덤 바일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평점 :

소설을 쓸 때 작가들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 단순한 궁금증으로 신청한 책입니다. 혹시나 이 책을 읽고 나서 소설 비슷한 것을 써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노림수가 깔려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글쓰기의 길은 그렇게 쉽지 않았어요. 여러분도 함께 스무고개 같은 스무 명의 작가들을 함께 만나 보실래요?
엮은이 애덤 바일스는 파리에 거주하는 영국 작가이자 번역가입니다. 20세기부터 제임스 조이스, 어니스트 헤밍웨이, 에즈라 파운드, 앙드레 지드, 폴 발레리 등 당대 거장 작가들이 모여들었던 주요한 장소이자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문화적인 상징으로 자리 잡은 사리의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문학 디렉터로 일하고 있으며, 매주 팟 캐스트를 진행하고 있죠. 책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에서 2012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진행되었던 작가와의 대화중 최고의 인터뷰를 엄선한 대담집입니다. 퍼시벌 에버렛의 <나는 시드니 포이티어가 아니다>를 시작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에니 아르노의 <세월>과 대미를 장식하는 제프 다이어의 <로저 페더러의 마지막 날들과 다른 결말들>에 대한 작가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요. 나름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작가도 작품도 거의 없어 당황하며 책을 넘깁니다.

말이 안 되는 말을 말이 된다고 생각하도록 속이는 게 목표니까요. 그렇게 만드는 게 바로 리듬, 구조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말이 되는 난센스를 쓰는 것입니다. 제게 행운을 빌어 주세요. (p36-퍼시벌 에버렛, 나는 시드니 포이티어가 아니다 중)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도 비슷한 말을 했어요.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도록 하는 것이 소설가라고요. 이 책에서도 퍼시벌 에버렛이 하는 말이죠. 가령 이 소설의 내용처럼 미국 사회가 엄청나게 부유한 흑인 남성을 만났을 때 경험하는 인지 부조화를 탐구하면서 말이 되도록 하는 말이죠. 말이 안 되는 말을 말이 된다고 생각하도록 속이는 것을 목표로 하려면 우선 쓰는 자신을 먼저 속이거나 설득 시켜야 합니다. 처음에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읽을수록 말이 되는군 하게 생각하게 해야 하는 것! 그것이 소설가입니다. 말이 안 되는 현실이 수시로 일어나는 요즘. 차라리 말이 되는 소설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시간은 결코 같은 속도로 경험되지 않습니다. 빨리 흐를 때도 있고 천천히 흐를 때도 있죠.(p226-카를로 로벨리,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중에서)
우리는 다른 속도의 시간을 경험하면서 시간은 일정하게 똑같이 흐른다고 굳게 믿고 있다고 합니다. 카를로 로벨리는 시간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새롭게 해석한 소설을 선보였어요. 인터뷰에서 작가가 하는 말이죠. 그러고 보면 그렇습니다. 어린 시절 잘못을 저지르고 혼날까 봐 마음 졸이며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은 정말 천천히 갔고,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먹는 아이스크림은 강렬하게 달았지만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었죠. 그건 독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미있는 책은 밤을 새워 읽고, 시간이 금방 지나지만, 꼭 읽어야 해서 읽는 재미없는 책은 시간이 정말 안 가요.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하는 것인데, 그걸 글로 써서 확증하는 것이 작가인 듯합니다. 누구나 생각은 하지만 쉽게 글로 써서 그 느낌이나 깨달음을 주지는 못하는 것을 하게 하는 것이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제시간은 어떻게 흘렀나 생각해 봐요. 어떤 부분에서는 턱턱 걸려서 시간이 느리게 가기도 했고,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하느라 순식간에 시간이 가기도 했죠. 시간이 다르게 경험되는 바탕에는 지극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상대를 보고, 책을 읽는다면 시간이 좀 더 다르게 경험되지 않을까요? 당신의 시간은 어떻게 경험되고 있나요?
책과 문학, 쓰기와 예술에 관한 깊이 있고 진지하며, 때로 유머러스하기까지 한 생기 넘치는 대담들은 페미니즘, 인종 차별, 계급 및 정체성과 같은 동시대 주요 담론에 관한 빛나는 통찰을 엿볼 수 있어요. 작가들을 잘 모르지만, 인터뷰를 통해 제가 받은 느낌은 이런 겁니다. 작가란 시대와 깊이 공감하며 고민하고 대안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것. 사소한 현상이나 불편함, 거부감을 그냥 넘기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라 느낌이 들었죠. 그래서 작가는 아무나 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도 했지요. 모두가 작가가 될 수는 없지만, 삶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소설가이자 작가입니다. 이 인생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을 곁에 둘지를 소설가처럼, 작가처럼 선택하고 만들어가 갈 수 있어요. 어제와 같은 오늘이, 눈에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현실이 의미 없어 보일 때 읽어 보면 좋을 책입니다. 삶이라는 시간 위에 나만의 소설을 쓰는 용기를 만나게 될 겁니다. 그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이 나를 일으켜줄 거니까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