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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의 수집가들
피에르 르탕 지음, 이재형 옮김 / 오프더레코드 / 2024년 12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밥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밥이 이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시 취업하기 위해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도 책의 언저리를 서성거렸죠. 좋은 책들이 나온 것을 보면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심한 갈등을 겪었고, 선정되신 분들을 부러운 눈길로 바라봤어요. 이제는 맘껏 책을 읽어보리라 다짐하던 때 만난 책입니다. 6살 큰아이와 1살 둘째를 업고 참소리 박물관을 다녀온 적이 있어요. 수집이라는 것이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경험했던, 한참 시간이 지나서도 좋은 느낌으로 남아있는 추억이죠. 그 기억에서부터 시작된 선택일지 모릅니다. 파리의 수집가들은 어떤 것들을 모았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것은요. 조금은 사적인 그들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실까요?
작가 피에르 르탕은 1950년 베트남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평생을 파리에서 살았어요. 베트남 출신의 화가 아버지 덕에 어려서부터 동양적인 예술품과 미술에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7세에는 <뉴요커>의 표지 그림을 그리며 화려하게 데뷔했습니다. 평생을 흥미로운 것들을 보고, 찾고, 욕망하고, 획득하는 수집가로 살았어요.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꼭 소유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작가입니다. 2019년 그가 타계한 후 그의 아파트의 400여 점의 애장품들은 경매를 통해 그의 취향을 존중하는 새로운 주인을 찾았다고 해요. 이 책은 그토록 아름답고 고집스러웠던 ‘수집하는 마음’을 기록한 유일한 회고록이자, 르탕이 직접 그리고 쓴 마지막 책입니다. 책은 컬렉션이란 “매료되었으나 경험할 수는 없었던 시대와 나를 이어주는 살아있는 연결고리”임을 여실히 보여줘요. 그의 수집 열정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첫 이야기를 살짝 들춰볼까요?
브리오니 왕녀로부터 지금은 사라진 이 컬렉션 이야기를 듣고 나는 한 가지 교훈을 얻었다. 열망해서 얻은 것들은 결국 우리의 손을 떠나버린다는 것을. (P20)
어린 시절부터 아름다운 것을 열망했던 작가는 아버지의 배려로 브리오니 왕녀 집에 심부름을 갑니다. 그녀의 벽에는 사각형의 얼룩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수집한 미술품이 오래 걸려있던 자국이었죠. 생계를 위해 하나씩 팔다 보니 벽에 사각형 얼룩만 남았다는 브리오니 왕녀의 설명을 들으면 작가는 생각했다고 해요. 열망해서 얻은 것은 결국 우리의 손을 떠나버린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열망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아요. 아무리 뜨거운 것이라고 해도, 충족되거나 계속 미뤄지면 옅어지기 마련이죠. 어쩌면 열망 그 자체보다 소유에 더 집착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소유에 집착하기 때문에 무언가를 수집하고, 놓지 못하고. 그건 비단 예술품이나 사물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아요. 사람과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토록 열망했던 사랑도 언젠가는 우리 손을 떠나요. 알고 있어도 쉽지 않은 놓아줌! 작가는 어린 시절에 이런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에 평생을 수집가로 살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호지킨이 모은 이 작은 수집품들은 비록 아름답기는 해도, 의심할 바 없이 욕심과는 거리가 멀었다. 호지킨의 머릿속엔 투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그는 겸손하고 진지했으며, 때때로 호텔 숙박부에 자신의 직업을 ‘조련사’라고 적는 장난스러운 사람이었다.(P56)
수집가 호지킨은 화가로서 자신의 경력을 발전시킴과 동시에, 빼어난 안목으로 컬렉션을 구성한 사람입니다. 작가는 종종 호지킨의 컬렉션이 담긴 작은 카탈로그를 펼쳐보며 아름다움과 그의 안목과 태도에 감탄한다고 해요. 호지킨의 컬렉션은 경제적 이익을 위한 투기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겸손하고 진지했다고 합니다. 겸손하고 진지한 사람의 컬렉션은 어떠했을지 직접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요. 컬렉션이 담긴 작은 카탈로그를 보고도 수집가의 겸손과 진지함을 읽을 수 있어야 진정한 수집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결국엔 사람이 남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욘 포세의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소설에는 사람은 가고 그 사람이 쓰던 물건이 남아 주인을 대신하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사물을 보며 그 사람을 추억하는 것도 그 사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기 때문이겠지요? 내가 쓰던 작은 만년필 하나가, 샤프 하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미소 짓게 할 수 있도록 잘 살아야겠습니다. 분주히 움직이던 손가락을 멈추고 노트북의 자판을 오래 들여다봅니다.
수집과 미술, 예술에 문외한인 저는 책을 온전히 읽지 못한 것은 아쉬움이 느낍니다. 파리의 유명한 수집가들과의 추억과 그들의 컬렉션에 관한 부분을 거의 이해하지 못했으니까요. 수박 겉핥기 식으로 느낀 책에서는 파리는 과연 예술의 도시였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에도 자신만의 아틀리에가 있었고, 사람들이 대부분(작가가 만난 사람들) 열려 있어 사적인 자신의 아틀리에를 보여주고 공유해요. 수집해서 나만 보고 즐기고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자신의 취향을 존중받는 문화 같은 것이 느껴졌죠. 예술의 도시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작가는 자신의 수집 품들을 팔아서 다른 수집품을 사기로 했는데, 가치를 알아보는 다른 주인에게 가는 것이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인에게 판매한 것이라 필요할 때는 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고 했어요. 수집품을 소유하기 위해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간에 자신에게 잠시 머무르는 것처럼 대하는 자세가 그를 오래 수집가로 살게 한 모양입니다. 어린 딸아이를 업고 큰 아이의 손을 잡고, 욕심 가득한 시선으로 에디슨을 설명했던 일이 이제는 아름답게 남았어요. 어쩌면 수집가란 예쁜 추억들을 모으는 사람이 아닐까요? 당신 주위에 아름다운 추억 하나 모아 보실래요? 이 책을 길잡이 삼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