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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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이 살아계실 때 그분의 책을 읽지 않았던 것을 이제야 후회합니다. 이어령이라는 이름만 보이면 무조건 읽어야지 다짐했어요.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으로 처음 만났고, <눈물 한 방울>로 공감했으며, <별의 지도>를 보면서 해박함과 통찰을 느꼈습니다. 교수님이 15년 전에 젊은이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지금은 어떨지 기대하면서 책을 펼쳐요.


저자 이어령 교수님은 1933년 11월 13일 충남 아산에서 태어났으며,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어요. 문학평론가이자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이화여대 교수, 각종 신문사 논설위원, 88올림픽 개폐회식 기획 위원, 초대 문화부 장관, 새 천년 준비위원장, 한중일 비교문화 연구소 이사장을 역임했습니다. 2021년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 한 공로를 인정받아 문화 예술 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했죠. 저서로는 논문. 평론 <저항의 문학>, <공간의 기호학>, <한국인 이야기>, <생명이 자본이다>, <시 다시 읽기>가 있고, 에세이 <디지로그>, <젊음의 탄생>, <지성에서 영성으로>외 수십 권이 있어요. 2022년 2월 26일 별세했습니다.

책은 교수님이 생전에 했던 10개의 강의와 축사가 실려있어요. 서울대학교의 졸업식 축사가 프롤로그처럼 실려있고, 그 후로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강의하고 질문과 답변한 내용들이 대화체 그대로 실려있습니다. 한편의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교수님의 생생한 육성이 들리는 강의를 듣는 것처럼 생동감 있는 문장 속으로 이끌리듯 들어가 봅니다.


신체성을 가진 것, 38억 년을 살아온 생명의 노하우를 가진 지혜에 호소할 것이냐, 2백 년 내지 3백 년밖에 안 된 과학기술, 산업 기술에 여러분이 의지할 거냐,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P143, 2010년 한국선진화 포럼 제42차 월례 토론회)

지하자원 500억 톤을 채취하면, 산업화하여 사용하는 동안에 90퍼센트 이상이 폐기물로 전락해 버린다고 합니다. 쓰레기로 바뀌는 거죠. 제품을 쓰고 나면 또 쓰레기다 되니 두 번 쓰레기가 되는 거죠. 인풋 해서 아웃풋이 되는 과정에서 90퍼센트 가까운 것이 폐기되고, 만들어진 것이 또 폐기되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내구성 제품들은 1퍼센트밖에 되지 않고, 그중에 재생, 재제품화되고 재유형화되는 것은 겨우 0.02퍼센트 정도라고 해요. 그러니 과학 기술이 가져온 산업화가 결코 좋은 것이 아닌 겁니다. 교수님은 대안으로 신체성을 강조하시면서 생명의 노하우를 가진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해요. 그 대안으로 바이오미미크리를 말하는데, 바이오미미크리는 생물 및 자연의 형태나 기능을 모방하고 과학 기술에 접목하여 인간이 사용하는 도구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죠. 대표적으로 바이오미미크리를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을 바퀴벌레라고 합니다. 바퀴벌레는 생명력도 엄청나지만 몸 밖으로 자신의 배설물을 전혀 배출하지 않아 오염을 시키지 않는다고 해요. 늘 반질반질 깨끗하게 윤기가 흘러 보는 사람을 질겁 시키지만 정작 바퀴벌레 자신은 아주 깨끗하다고 합니다. 인간이 움직이고 생활하는데 넘쳐나는 쓰레기를 바퀴벌레는 완벽한 리사이클링을 통해 전혀 배출하지 않는 거죠. 혐오스럽다고만 생각하는 바퀴벌레에게도 배울 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려는 발상의 전환을 하기만 한다면요. 14년 전부터 생명과 기술의 결합을 말해 오신 교수님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흘러도 전혀 옛날 생각 같지 않은 것은 시대를 앞질러 생각하신 때문이겠지요.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나니 바퀴벌레가 그렇게 혐오스럽지는 않아요.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고, 다르게 보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창조적인 사람을 따돌리고 못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P202~203, 2009년 세종대학교 특별강연)

학교에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배웠지만, 이렇게 자세하고 가슴 벅차게 배우지는 못했어요.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사마정신과 눈물 끝에 피어난 창조에 대해서 말할 때는 가슴이 벅찼습니다. 우리에게는 세종대왕이 있는데 왜 노벨상 하나를 못 받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잘 보지 않는 걸까요? 그 해답이 위의 말씀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나와 다른 사람들을 적대시하는 문화가 있어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봐도 그렇습니다. 그들은 몸이 불편할 뿐이지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사람들인데도 우리는 차별하죠. 그런 시선들 때문에 그들은 더 고립됩니다. 비단 이런 현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일어납니다. 나와 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불편해하고 튄다고 표현하며 따돌리죠.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아야 조직도 학교도 발전할 텐데 우리는 시키는 일만을 잘하도록 너무 오랫동안 교육받아왔어요. 이 책의 첫 부분이 학으로 시작되는 것은 의미가 큽니다. 배우는 자를 중심으로 한 교육이 아니고, 가르치는 자를 중심으로 한 교육은 발전이 없어요. 늘 하던 대로 시키는 일만을 무리 없이 해내는 사람들만 공장처럼 찍어낼 뿐이죠. 창조적인 발상을 하도록 하는 교육은 학교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가정에서도 창의적인 발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막막해요. 배운 적도 없고, 해본 적도 없고, 심지어 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제는 늦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창조적인 발상을 하도록 아이들을 자유롭게 해줄 생각입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었고, 대학교 4학년이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더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 보라고 추천할 생각입니다. 쇼츠와 릴스, 아이돌에게 밀릴 테지만 끈기 있게 추천해 볼 생각입니다.


책은 강연을 묶은 것이다 보니 약간씩 중복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퀴벌레 이야기고요. 바이오미미크리에 대한 발상 전환적 이야기가 그렇지요. 대표적인 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컴퓨터공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도 뛰어난 지식과 견해를 말씀하셔서 놀랐습니다. 경계를 두지 않는 융합의 학자시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그러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금 더 살아계셨더라면 우리나라와 젊은이들에게 많은 비전을 제시해 주셨을 테니까요. 그렇지만 안타까워만 하고 있기엔 교수님이 살아생전에 하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그분의 책을 읽고 비전을 품고 창조적인 발상을 통해 흐름을 바꾸어나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퀴벌레에게도 배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배운 것을 소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대단하지도 않은 짧은 배움을 꼭 붙들고 있으니 발상의 전환이 어려워요. 일등이 되려고 하지 말고 넘버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없는 온리 원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라고 하죠. 바퀴벌레에게 배우려면 일단은 바퀴벌레가 어떤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퀴벌레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하는 거죠. 잘 모르면서 안다고 대충 넘기는 많은 것들을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이오미미크리의 선두 주자가 세종대왕의 후예인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배우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가르치는 부모님들, 학교의 학생과 교사, 직장의 상사와 부하직원. 모두가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읽고 나서 자신의 머리로 묻고 생각하며 온리 원이 되어야 합니다. 이어령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실 준비가 되셨나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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